공지영 인터뷰 기사

조회 수 1912 추천 수 1 2017.08.13 18:01:13


                         공지영 "내게 가장 큰 적은 '게으름'.. 시국 상관 없어"
                                  한국일보    이윤주 입력 2017.08.14. 04:42 수정 2017.08.14. 07:31


 

        '5년 만에 도가니' 100쇄 돌파'


새 장편소설 ‘해리’ 집필에 들어간 공지영 작가는 “도가니의 배경이 된 ‘무진’을 다시 한번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소설은 한국의 문화상품 중 가장 완전경쟁에 가까운 시장에서 거래된다. 작가는 출신, 학력, 나이를 가린 블라인드 테스트로 데뷔하고, 전작의 상업적 성공과 무관하게 책값의 10%를 인세로 받는다. 해외 상품(번역된 외국 소설)과 똑 같은 환경에서 경쟁하는 거의 유일한 문화상품이다.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시장에서 30년간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가 있다. 장편소설 11권 중 6권이, 산문집까지 포함하면 도합 7권이 100쇄를 넘긴 공지영이다. 그의 ‘100쇄 에디션’에 한 권이 더 추가된다. 2009년 첫 출간해 83만부가 팔린 장편 ‘도가니’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실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2011년 영화로 만들어진 후 일명 ‘도가니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 장애인, 아동대상 성폭행 범죄 공소시효 배제를 골자로 장애인 성폭력에 관한 처벌을 대폭 강화했다)의 발판이 됐다.


11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창비 사옥에서 만난 공 작가는 “작가로서 완전 복”이라며 “신문에서 ‘OO판 도가니’라고 하는 것처럼, 단어 뜻을 새로 만들게 된 기쁨이 있다”고 말했다.


-100쇄 출간 소감은

“100쇄 낸 책을 세 봤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착한 여자’, ‘봉순이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즐거운 나의 집’, 에세이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이 책이 여덟 번째인데 100쇄를 기념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100쇄가 드물어졌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다른 책들은 출판사 옮겨 다니며 100쇄 찍었는데 이 책은 한 출판사(창비)에서 나왔다.”


-100쇄는 개정판으로 나온다. 다시 손본 데 있나?

“책 내고 나면, 보기 싫어 이번에도 다시 안 읽었다. 쓸 때 1,000번도 넘게 읽어서 외운다. 내 작품 4,5줄 읽어주고 어떤 상황인가 물어보면 다 맞출 수 있다. 아무리 오래된 소설이라도. 괄호 넣기도 할 수 있다. 근데 이런 걸 표절하면 너무너무 화가 나는 거다. 1,000번도 넘게 읽어가며 고칠 게 있나 고민한 걸 뚝 떼다가 자기 거라고 쓸 때, 엄청 화가 나는 거다”


-최순실 국정농단 때 류철균 이화여대 교수 연루된 거 보고 감회가 새로웠겠다(류 교수가 1992년 이인화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는 공지영,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일었고, 류 교수는 의혹 제기 이후에야 자신의 소설은 다른 작품을 2차 텍스트로 만든 ‘혼성모방 기법’이라고 주장하며 원작을 밝혔다).

“그래서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14년째 사형수 면회 가지 않나. 그 사형수 옆방으로 (류철균 교수가) 왔다고 하더라. 진짜 신기했다. 사형수가 잘 해줬나 보더라. 집행유예로 바로 나가고 나서 며칠 후에 너무너무 고마웠다고, 면회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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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년 ,소설 도가니 110쇄 출판한 작가 공지영씨가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빌딩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이 작품 반향이 컸다.

“피해자들이 어리고 장애인이라서 심하게 당했지만, 회복도 빠르다. 키가 1년에 16㎝씩 큰다. 오늘 기쁜 소식 들었다. 피해자 중 3명이 1급 바리스타 시험 보기 위해 공부한다고. 이 책 나오고 ‘카페홀더’라는 사회적 기업 만들었는데 개업, 기념식 때마다 간다. 갈 때마다 애들이 잘생겨지고, 반듯해진다고 할까. 난 이것만으로도 천국에 갈 거 같다(웃음). 다른 나쁜 짓 해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인데 취재는 어떻게 했나.

“작가마다 다 다른데 나는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 전부 찾아 프린트한다. 온갖 관련 책도 다 사는데 보통 30~40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쓸 때는 150권 정도 읽었다. 그걸 다 읽으면 머릿속에 사건이 대충 그려진다. 거의 모든 사건이 여기서 나오고, 어떻게 소설 쓸 거 인가까지 나온다. 구술 서 말을 얻은 거다. 취재는 현장 냄새와 분위기를 보러 가는 건데, 현장에서 얻는 구술은 삼백 개가 안 된다. 물론 아주 중요한 거지만. 이걸 어떤 실로 어떤 모양으로 꿸지, 그러니까 누구를 화자로 삼고 어떤 방식으로 전개할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그게 제일 어렵다. 바늘 딱 들고 첫 구슬 꿸 때가. (‘도가니’는) 취재 다 해놓고 그게(주인공) 안 정해져서 살이 몇 ㎏가 빠졌던 거 같다.”


-스트레스 받으면 살이 빠지나?

“좋은 스트레스 받으면 살 빠지고, 나쁜 스트레스 받으면 살찐다. 다시 말해 일로 스트레스 받으면 살 빠지고 사람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생기면 먹어서 찐다(웃음). 우연히 그 학교에서 해고된 농아 선생님을 만났는데 기간제 교사라는 걸 처음 알았다. ‘이 기간제 교사를 비장애인으로 만들어 꿰면 되겠다’ 정하고 나서 굉장히 쉬워졌다. 몇 달 동안 하루종일 그 사건만 생각하고 있으면 하늘이 복도 내려주는 거 같다. 주파수에 따라 고음, 저음들을 수 있는 청각장애인이 있다는 것도 현장 가서 알았다. ‘연두(소설 속 피해자인 청각 장애인)가 법정에서 조성모 노래 들었다는 장면을 클라이맥스에 넣자’는 영감이 생겼다.”


-이 책이 독자의 어떤 지점을 건드렸다고 생각하나?

“영화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웃음). 가끔 영화 보다가 원작이 보고 싶어지지 않나. 영화는 금방 촌스러워지는데 원작은 향기가 있으니, 그래서 보는 거 아닐까.”


소설 '도가니' 속 강인호, 서유진 중 어떤 인물에 가깝냐는 질문에 작가는 서유진을 꼽으며 "앞에 나가서 열심히 싸우진 않았을지 몰라도, 못 떠났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작가가 14년 간 사형수들을 만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지 않을까.


햇수로 30년째 활동하고 있다. 그 사이 독자 취향 많이 바뀌었을 거 같은데.

“독자 취향이 바뀌었겠지만 나는 내 맘대로 한다. 다행히도 내 관심사가 사람들한테 어필하는 거 같다. 그 이유를 하도 질문 받아서 나도 생각을 해봤는데, 내가 권력 편에 안 붙어서 그런 거 같다. 권력 있는 어르신, 출판사하고만 놀았으면 완전 밥맛이었을 거 아닌가. 내가 그런 분들 기린아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맨 처음에는 안 만나주니까 그렇게 살았는데, 좀 있다 보니까 내가 행운아구나, 생각했다.”


-작가 개인의 관심사를 택하지만, 독자한테 잘 읽히게 써야 한다고 고민은 하지 않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걸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여기에 관심 많은데 그걸 사람들은 대중성이라고, 나는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예전에 내가 외국 있을 때 막내가 학원 안 갔다고 연락 와서 애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가 없을수록 네가 시간을 잘 지켜야... 네 자존심 아닌가?’ 이 말을 할 때까지 백 마디 잔소리를 참고 애가 자극 받는 말을 어떻게 한마디로 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나는 이런 게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5년 더 좁히면 문학시장이 줄어든 거 같다.

“체감한다. 올 봄 소설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내고 베스트셀러 1위 올라간 적 있는데 판매량은 굉장히 다르더라. 그리고 예전에는 한번 올라가면 쭉 베스트셀러 유지했는데 얼마 못 가더라. 읽는 방식이 달라져도 책은, 텍스트는 영원할 거라고 보는데, 문학은 위기 같다.”


-그 분야에서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고민은 없나.

“가장 큰 적은 독자나 출판시장의 흐름보다 내 게으름이다. 나는 정말 재미있는 소설 써보고 싶다. 이제 촛불집회도 그만하니까. 머릿속에 구상하는 장편이 4,5개 있는데, 구슬 꿸 시간이 없다. 노는 게 재미있어서(웃음). 체력도 떨어지고, 애들도 크고 하니 점점 게을러지는 거다.”


-소설 안 나오는 이유가 시국하고 상관 없는 거였나.

“시국이 무슨 상관? 옛날에 시국 안 좋을 때도 돈 필요해서 썼는데(웃음). 시국이 뒤숭숭하니 독서가 분산되더라. 내 평생 처음으로 최순실 태블릿PC 보도 터진 날부터 대선까지 책을 거의 못 읽었다.”


-평소에는 얼마나 읽나?

“한 달에 50권을 넘게 사서, 거의 다 본다. 구술을 모으는, 직업적 투자다. 온갖 잡독을 하는데, 항상 빼놓지 않고 읽는 게 전문가들의 에세이다. 취재를 엄청 절약시켜준다.”


-2012년 대선과 지난 대선에도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문재인 정부 정책은 마음에 드나?

“믿고 맡기고 싶다. ‘교양 있는 시민’으로 관심 가지면서 편하게 내 일 하면 될 거 같다. 이 정부 인사로 들어간, 존경하고 친한 분들의 희생정신에 감사드린다. 그분들도 다 놀기 좋아하는 분들인데 얼마나 힘들까 싶다.”


-문재인 정부 인사로 발탁되면?

“이 정부가 나를 너무 잘 알아서 절대로 안 부른다. 걱정하지 마시라.”


-여성학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바람직한 가부장 모습을 보이는 한편 성소수자 결혼을 반대하는 등 성을 보수화시킬 거라고 본다. 김정숙 여사도 기자들한테 화채를 만들어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내조’하는 모습 엄청 보여주지 않나. 가부장제에서 여러 번 탈주한 공지영 작가는 대통령 부부 행보 어떻게 보나.

“대선 때 몸바쳐 (트위터에 문재인 후보 기사) 리트윗했다. 노무현 정부 때 뉴스 안 보고 정치에 관심 없었던 부채의식 때문이다. 그때 몇 가지 (기사 리트윗) ‘안 하는’ 원칙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후보 부인들에 관한 기사를 리트윗하는 것이다. 나는 (가족을 정치에 활용하는 것) 아주 싫다. 내 딸이라도 싫을 거 같다. 나는 물론 안하고. 그런데 이건 작가 개인의 생각이고. 이분들은 어차피 국민 과반수를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이라서, 어쩔 수가 없는 거 같다. 개인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의 여성관을 믿는다. 한 가지 진보한 건 마지막에 따님이 유세에 한번 나왔지만 아드님이 끝까지 안 나왔다는 거다. 이렇게 한발자국씩 가야 하는 거 같다. 그리고 그 나이에 남편 그렇게 좋아하면 인정해줘야 된다. 존경이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데, 이건 ‘~이즘’이 들어갈 문제가 아니다. 내가 그런 남편 안 만난 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대답은 노코멘트다. 김정숙 여사한테 우리나라 페미니즘을 위해서 남편 덜 좋아하고 당신 일을 가져라, 그럴 수도 없지 않나.”


-올 봄 소설집 출간 간담회에서 “이제 나이도 있고 점잖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위선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내가 1963년 1월 생이다. 건강하게 사는 게 20년도 안 남았다. 책을 그렇게 많이 썼는데도 지난 20년이 쏜살같이 지나가 화가 나는데, 어른들은 남은 20년은 더 빨리 지나간다고 한다. 난 내 맘대로 살 거다. 대통령 선거 나갈 것도 아니니까. 싫은 사람 싫다고 하고 좋은 사람 좋다고 하면서. 독자가 나한테 돌 던지면 그만 쓰면 되지. 애들도 다 키워놨는데. 위선을 떨겠다는 건, 이제 고소는 그만 당해야 할 거 아닌가. 아, 며칠 전에 무혐의 판결 나왔다. 2년 반 끌다가 정권 바뀌고. 꼭 써달라.”(공 작가는 2015년 7월 페이스북 자신의 계정에 전직 신부의 공금 횡령 의혹을 폭로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꿈이 있다면.

“좋은 동화를 꼭 쓰고 싶다. 어릴 적 그렸던 그림도 다시 그리고 싶다. 더 궁극적인 건 자유롭게 살고 싶다. 글 쓰든 안 쓰든. 얼마 전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무덤 갔다. 거기 써 있는 묘비명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처럼 사는 게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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