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서 바로 뜯는 상추를 키운 방법
-수용성 비료와 물로 식물을 재배하는 수경재배기 개발
입력 2022.02.08 06:00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인플레이션 압박이 나날이 거세지고 있다. 2021년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2.5% 올랐다. 10년 만에 상승률 최고치를 기록했다. 집밥이든 외식이든 만만치 않은 가격에 소비자들의 한숨이 꺼질 날이 없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집에서 직접 채소를 키워먹는 사람이 많다. 유명 연예인이 지상파 뉴스에서 ‘파테크족’(대파와 재테크족의 합성어)으로 소개된 적도 있다. 닥터플랜츠의 ‘실내 수경재배기’는 집에서 직접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제품이다. 최병만(43) 대표의 식물 재배기 개발 노트를 엿봤다.
◇연간 10억원 이상 실적 낸 ‘가전 판매왕’의 결정
-닥터플랜츠 수경재배기 안에서 다 자란 식물을 재배하는 모습. /닥터플랜츠
닥터플랜츠는 수용성 비료와 물만 보충하면 되는 식물 재배기다. 흙 대신 인공토양(미네랄 그로단)에서 식물을 키운다. 기기의 외형은 사방이 뚫려 있고 모서리가 곡선으로 된 직육면체 모양이다. 내부 하단엔 수조가 있고 그 위에 씨앗이나 식물이 든 인공토양을 꽂을 수 있는 재배 포트 판이 있다. 재배기 상부에 달린 식물 채광 LED가 햇빛 역할을 해서 발아와 식물의 생장을 돕는다. 온라인몰(https://bit.ly/332WjnL) 에서 한정 공동 구매를 하고 있다.
제품 구매 시 인공토양과 함께 이 인공토양을 담을 수 있는 12구의 플라스틱 통, 청경채 씨앗, 수용성비료(하이포넥스)가 든 스타터 키트가 제공된다. 우선 플라스틱 통 안에 인공토양을 넣고, 그 안에 씨앗을 심어 발아가 되기 전까지 키운다. 7~10일 후 발아가 되면 수경재배기 포트로 옮겨 담으면 된다. 기기의 작동 버튼은 전원 버튼 하나다. 한번 켜놓으면 알아서 12시간마다 껐다 켜진다. 재배 포트는 총 11개로 동일 식물 혹은 여러 종류의 식물을 취향대로 심을 수 있다. 기기하단 수조에는 수돗물 3L와 수용성 비료(하이포넥스)를 희석해 넣어 준다. 물은 3개월에 한 번씩 교체해주면 된다. 단순 식물 재배를 넘어 인테리어용으로 찾는 사람도 많다.
최병만 대표는 전주대 경영학과 중퇴 후 2003년 하이마트 영업직으로 입사했다. 파견직으로 입사했지만 영업 실적이 좋아 정직원으로 전환됐다. “가전제품 정보를 외워서 고객에게 설명하고 그게 판매까지 이어지니까, 영업이 적성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해 10억원 이상 판매 실적을 낸 직원에게 주는 우수 영업 사원상을 받은 적도 있어요.”
2013년 아빠가 된 후 가정에 더 집중하기 위해 퇴사했다. 2년 정도 사업을 하다가 2014년 유통 회사에 입사했다. “오프라인 브랜드 총판권을 갖고 하이마트, 전자랜드, 홈플러스 등 오프라인 매장에 가전 입점을 제안하는 일을 했어요. 회사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여러 업무를 동시에 했어요. 신제품 분석 및 판매 제안, 영업 등 안 해본 일이 없죠. 이때의 경험이 사업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어요.”
◇식물 키우기 실패, 좌절하는 아내보고 수경재배기 개발 확신
닥터플랜츠 수경재배기 안에서 다 자란 식물을 재배하는 모습. /닥터플랜츠
2020년 10월, 새로 판매할 신제품을 알아보다 ‘수경재배기’를 접했다. 수경재배기는 수경 재배를 할 수 있도록 물을 담는 수조와 햇빛 역할을 하는 LED가 장착돼 있는 전자 기기다. 호기심이 가서 알아보니 가정에서 취미로 수경 재배를 하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었다. “수경재배기를 오프라인 매장에 입점시키기 위해 제조사와 가격 조정을 시도해 보니, 재배기를 만든 중국 공장의 단가가 생각보다 높아서 거래가 성사되지 못했어요. 수경재배기에 눈뜨고 나니 차라리 직접 만들어 팔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수경재배기의 사업성에 확신을 얻다(2020년 11월~)
집안의 화분을 잘 가꾸지 못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수경재배기의 사업성에 확신을 얻었다. “아내가 집에서 식물을 키우기만 하면 마르거나 얼어 죽더라고요. 세심하게 온도 조절을 해주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그래요. 뿌리가 썩어 죽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흙에 식물을 심는 토경 재배 방식은 흙의 과습(지나치게 건조하거나 습함)을 조절하는 게 무척 어렵기 때문이었죠.”
화분을 대체할 수경재배기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 시장 조사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수경재배기 대부분이 중국에서 제조된 것이었어요. 우리나라에 들여오는 과정에서 웃돈이 붙어 유통되고 있었죠. 제품성을 제대로 갖춘 것은 거의 없었고요. 개척할 여지가 많다고 판단해 직접 만들기로 최종 결심했습니다.”
2.디자인 설계는 제품 완성의 시작과 끝(2021년 3월~)
디자인 전문가는 아니지만, 디자인을 직접 했다. 심미성과 실용성을 고려해 시중에 있는 다른 제품의 디자인부터 살폈다. “삼성의 큐브 공기청정기에서 착안해 곡선 형태로 디자인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각진 모서리보다 둥근 형태가 부드러워 보여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더 주더라고요. 색 처리 할 때는 담백하지만 세련되게 흰색이나 미색 계열로 했죠. 아이팟이나 샤오미 제품처럼요.”
제품 구조를 설계할 때는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조건을 고려했다. “재배 포트의 구멍은 총 11개예요. 다다익선인 것 같지만, 무조건 많이 심는다고 능사는 아니애요 식물끼리 너무 붙어 있으면 성장 과정에서 서로 간섭하면서 잘 안 자랄 수도 있어요.”
관건은 기기 속 ‘작은 태양’이 돼 줄 LED 조명의 배열이었다. “햇빛 역할을 하는 LED는 배열에 따라 발열이 달라져요. 발열은 너무 세도 약해도 안됩니다. 엔지니어와 계속 논의하면서 샘플만 수십개 만들었어요. 적합한 배열을 찾아 최적의 발열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별도로 ‘스타터’ 키트를 구성했다. “새싹이 자라기 전까지 쉽게 재배할 수 있도록 스타터 키트를 따로 고안했습니다. 새싹이 자랄 때까지 키트 안에서 키운 후 재배기로 옮기면 돼요. 모내기 과정과 유사합니다.”
인공토양은 ‘그로단’으로 정했다. 천연 미네랄 광석을 1600도 이상에서 녹여 만든 인공토양이다. “그로단은 네덜란드 회사인 그로단에서 만들어요. 네덜란드 본사에 직접 연락해 공급받을 수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로단을 수입하는 국내 총판 회사와 공급 계약을 맺어 최대한 단가를 낮춰서 거래할 수 있었어요.”
3.최적의 공장 파트너를 만나 국내 제조로 승부 보기(2021년 7월~)
지인의 소개로 금형과 사출을 담당할 공장을 찾았다. “기기의 본체를 찍어내기 위한 틀을 만드는 과정이 ‘금형’인데요. 견적 잘 내주는 공장을 찾는 게 만만치 않고 가격 낮추기도 쉽지 않아요. 지인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현재의 공장 파트너를 만났어요.”
국내 제조를 고집했다. 양산 비용이 훌쩍 뛰었지만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중국 업체와 손잡으면 제가 원하는 대로 물건을 만들기 어려워요. 중국에서 만들어 가져오는 게 국내에서 제작하는 것보다 많이 저렴한 것도 아녜요. 중국-한국 구간의 운송료가 크게 올랐거든요. 무엇보다 기존 시장엔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제 손으로 만드는 게 목표라서 국내 제조를 고집했습니다.”
4.판매 준비 과정에서 제품 개선해 나가기(2021년 12월~)
홈쇼핑의 까다로운 검수 절차를 통과해 홈쇼핑 입점에 성공했다. “홈쇼핑 입점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홈쇼핑 MD(상품 기획 및 판매 관리자)를 만나 제품을 소개하는 거였어요. 낙하와 파손 테스트 등 깐깐한 검수 절차를 거쳤죠. 그 과정에서 재배기 결합 부위가 살짝 어긋나는 문제가 발견됐어요. 결합 부위를 더 튼튼하게 손 본 뒤에야 홈쇼핑 입점이 가능했죠. 녹화, 라이브 각 한번씩 송출됐는데 2021년 12월 말엔 60개가량 판매하고, 지난 1월엔 200개 정도 판매했어요.”
현재 월 200대 안팎으로 팔리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CS 문의에서 제품 사용법 같은 질문을 제외하고는 불편 접수 사항이 없어요. 재배기에 꽃을 꽂으면 관상에도 좋고 인테리어용으로도 활용 가능해 만족도가 높은 것 같아요.”
현재 온라인몰(https://bit.ly/332WjnL)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AS 원칙은 식물 재배기 특성을 고려했다. “AS 신고가 접수되면, 저희 쪽에서 우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새 제품을 보내드려요. 최대한 빠르게 식물을 재배기로 옮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무엇보다 재배기 자체의 불량률을 줄이는 것이 중요해요. 꼭 필요한 기능인 LED 전원을 제외하곤 모든 버튼을 다 뺀 이유죠.”
5.오프라인 입점으로 수경재배기 알리기
가전 제품 매장 등 오프라인 입점도 계획하고 있다. “수경재배기 자체를 알리는 것이 중요해요. 국내 시장이 아직 크지 않기 때문에 몰라서 못 쓰는 경우도 많아요. 오프라인 매장에서 자주 눈에 띄어서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첫 판매를 홈쇼핑으로 한 것도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어요. 기기 자체를 알릴 수 있도록 초기에 유입되는 소비자와 소통을 하는데 집중하고 있어요.”
창업을 시도할 경우 파트너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중국에서 제조한 제품을 유통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쉬운 길을 택해선 안됩니다. 저는 한국 공장에서 제품을 제조할 것을 권합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처음부터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어서, 만족할 만한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해 나가실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