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평 선생님과 만남과 이별

조회 수 1912 추천 수 2 2015.07.12 1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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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평 선생님과 만남 그리고 이별

 

 

                                                                                                                                                                        남중대

   

 “중대야. 내가 90살까지는 활동할 수 있겠제?” 선생님은 나와 책상머리에 앉을 때마다 나에게 묻고 확인하는 말이었다. 자신의 건강에 대한 불안함이었을까? 아니면 멈출 줄 모르는 연극과 문학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을까?
  1990년, 내가 이곳 산호세에 새로운 삶의 둥지를 틀기 위해 이민보따리를 풀면서, 주평 선생님과 숙명적인 만남은 시작되었다. 한국아동극의 개척자로, 수많은 아동극본을 발표하고 그 극본으로 한국 최초로 아역배우를 연극무대로, 영화스크린으로 배출해낸 아동극작가로서 연출가로 이름을 날리던 그분이, 연극무대가 아닌 작은 구멍가게의 계산대에 서서 독특하며 흉내를 낼 수 없는 그 진한 경남 통영 사투리 “중대야~!”로 나와 미국에서 첫 만남의 막이 올랐던 것이다.
  1993년 어느 날, “중대야. 우리 아동극 한 번 해보자!”

  이렇게 시작된 말은, 미국 최초로 아동극단 민들레 홀씨가 지역신문에 뿌려지면서 그 유명했던 아동극 ‘콩쥐 밭쥐’가 50여 명의 단원과 40여 명의 학부모가 미국을 시작으로 하와이, 한국(3회), 일본(2회)을 오가면서 막을 올렸다. 그런데 이때 어디를 가나오나 시도때도없이 “중대야~.”하고 불러주시던 선생님의 사랑 속에, 언제부터인가 나는 주평 선생의 오른팔로 불리면서 광대놀음판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회복되지 않는 세계적인 경제불황으로 3만 불의 제작비는 채워지질 않았다. 끝내 연극무대의 막은 다시 올라라지 못한 채 멈추고 말았다. 부모님의 모국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2세들에게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체험케 하는 교육의 무대를 중단해야만 했던 아픔과 고향산천을 떠나와 이민의 삶을 사는 이민 1세들에게 향수를 달래주는 울고 웃는 신 나는 잔치 한마당을 펼쳐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선생님은 얼마나 답답해하셨는지 모른다.
  자존심이 일등이요, 고지식한 성품은 대쪽 같은 선생님은 그 열정을 쏟아내지 못함인가, 점점 약해져 가시는 듯했다. “선생님. 글이나 재미있게 쓰시지요.” 나는 늘 이런 말로 위로해 드리면서 신문지면으로 발표될 수필 원고를 교정하고 정리한 뒤 연극대본을 외우듯 감정을 듬뿍 담은 목소리로 낭독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지그시 눈을 감고는 “됐다.”를 자신 있게 외치시던 모습은 ‘콩쥐 팥쥐’에 등장하는 꼬마군졸의 연기, 바로 그 장면이기도 했다.
  언제인가 나를 친동생처럼, 오랜 친구 같다면서 목이 쉰 소리로 자신의 지난 세월 앞에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이슬 같은 눈물을 찍어 내리면서 회고하시던 선생님의 85년 인생드라마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지난해 6월, 수필 제5집 《추억의 강에 띄우는 쪽배》의 출간과 대표작 《숲 속의 대장간》이 19년 만에 다시 초등학교 4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이를 본 선생님은 다시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갖기에 충분했다. 이 일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나도 커다란 보람이었다.
  이제 선생님은 “중대야~”를 부를 수도, 책상머리에 같이 앉을 수도 없는 영원한 이별을 길로 떠나가시고 말았다. 그러나 긴 세월을 함께 했던 수많은 흔적은 추억과 그리움으로 오래도록 높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나를 부르는 선생님의 쟁쟁한 목소리를 듣고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예. 선생님 알겠습니다. 알아서 잘하겠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쉬십시오.”

 
                                                                                                                                         2015년 2월 19일(목), 미주주간현대(제9년 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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