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나들이

조회 수 1533 추천 수 3 2015.07.13 07:3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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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나들이

                                                                                   

                                                                                                                                                             남중대

 

 

  고향!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하고 가슴이 저려 오는 그리운 곳이다.
  타국 멀리에서 눈물 나게 그리워하던 고향은 더욱 그러하다. 미국 이민 후 처음으로 고향으로 가던 그날, 나는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참을 수 없었다.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비행기는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서울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아시아나 항공 213편입니다.”
  기내 아나운서의 안내방송과 함께 200여 명의 승객을 실은 거대한 여객기가 맑고 높푸른 창공을 날기 위해 서서히 조심스럽게 날갯짓을 시작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사람, 작은 객실 창 밖으로 멀어지는 활주로를 따라 이별의 아쉬움을 보내는 사람, 저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약 12시간 후의 만남을 위해 설레는 마음을 달래며 견디고 있을 것이리라.
  지금부터 잠깐 아니면 영원한 이별 앞에 마음을 닫을 수 없는 것일까. 과연 이 비행기가 목적지까지 이 많은 생명을 무사히 잘 대려다 내려줄까. 긴 시간 동안 한가족이 되어 나들이를 떠나는 이들의 이런저런 모습을 마음으로 그려보고 있는 것이리라 싶다.
  30여 년 전 나는 내 인생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첫발을 내 디딘 곳이 산호세다. 나에게는 동생으로부터 넘겨받은, 비틀거리다 넘어져 버릴지도 모를 나의 달구지 중고자동차 한 대가 있었다. 이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허약할 대로 허약해져 버린 내 육신을 담고, 약 40마일쯤의 몬트레이 바닷가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헤엄쳐 갈 것만 같아 보이는 고향 쪽 태평양 바다를 바라보며, 막혀 가던 나의 숨통을 시원하게 뚫어내곤 했다.
  도망자처럼 떠나왔고, 다시는 돌아갈 수가 없을 것 같은 아득하기만 한 고향. 지난 세월은 모두 다 잊고 가슴 깊이 묻어둔 채 반갑게 맞아 줄 이들이 과연 있겠는가. 전해 줄 수도 없는 심중의 메시지를 바람결 파도에 실어 보내 보았다. 갈매기들이 종종걸음으로 우르르 몰려 왔다가는 또 어디론가 떠나가 버릴 때는 허전한 마음에 차가운 외로움이 몰려왔다. 친구가 되어 위로해주기를 바랐던 나의 어리석음일까. 멀어져 가는 갈매기들을 혼을 놓쳐버린 바보처럼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나였다. 언젠가는 나도 태평양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저 갈매기처럼 멋진 날갯짓으로 고향 나들이를 할 것이라는 갈매기의 꿈을 꾸고 있었다.
  긴 나들잇길이 힘이 드는 듯 비행기가 가끔 몸부림을 쳤다. 깊은 잠이 들어있던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옆자리의 여인네가 악몽이라도 꾼 듯 놀란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먼저 말문을 열었다. 생긴 모양도 쓰는 말도 같은 한국인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기가 오랜만에 궁금했던 친구를 만난듯했다. 잘난 것도 크게 내세울 것도 없이 살아온 세월이지만, 여인은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낸 것이다. 그래도 따가운 눈총 속에 손가락질받으며 잘못 살지는 않았다며 나를 칭찬 해 주었다. 어느새 나의 두 어깨가 올라가고 가슴이 넓어졌다. 잘 익은 벼는 고개가 숙인다고 했다. 반백이 된 지 언제인데 난 아직도 덜 익은 풋과일일 뿐이다. 어둠 속의 시계가 고향이 지척임을 알려주었다. 긴 시간 어둡고 답답했던 알 속에서 깨어나는 병아리처럼 여기저기서 기지개를 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초조와 불안을 잘 견디며 날아온 비행기가 내 고향 넓은 뜰 안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아직은 어둠이 오지 않은 늦은 오후의 고향 하늘이다. 마중 나올 이가 없다는 내 형편을 아는지 잔뜩 찌푸린 날씨가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말로만 들어온 세계 최고의 국제공항이다. 어디로 어떻게 나가야 하는 건가? 길 잃은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헤매다 겨우 나를 데려다 줄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달리는 버스 차창밖에 그려지는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국 생활에 찌든 이방인이 잊고 지냈던 지난날의 추억들이 눈앞에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내가 이민 보따리를 짊어지기 전까지 삶의 둥지를 틀었던 곳을 찾았다. 동해의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텅 비었던 내 가슴속으로 잔잔한 파도가 밀려왔다. 소리 없는 뜨거운 눈물이 나도 모르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임문자

2015.07.13 08:46:10
*.208.232.242

안녕하십니까?

여기에서 뵈오니 더욱 반갑습니다.

북가주에 사시는 여러분들이 Monterey 바닷가에서 향수를 달랬겠죠?

고향에 가는 마음은 모두 같은가 봅니다.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이금자

2016.02.19 00:18:03
*.17.30.152

고향의 그리움이 글 속에 절절하네요.

마음이 아파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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