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1786∼1856)에게 글씨와 그림은 삶의 표현이었다. 여러 서체의 예술성을 아우른 서체는 추사체로 이름이 높다. 추사체는 굵고 힘찬 글씨로 강한 의지를 드러내거나 돌에 새긴 듯 절제 있는 글씨로 오묘한 변화를 보여준다. 외척 세도권력에게 밀려나 인생의 절정기를 유배지에서 보낸 안타까운 삶이 녹아 있다.
추사의 글씨엔 그림이 곁들여져 내면을 전하는 또 다른 수단이 된다. 검은 먹물을 찍은 붓이 한 가닥씩 솟아오르고 휘어지는 선으로 변하면서 낙락장송이 되기도 하고 바위가 되기도 한다. 추사의 삶은 난초 그림에서 개화한다. 보이지 않는 뿌리 다발에서 수많은 난초 잎이 피어났다. 추사는 이런 난초로 인생과 학문을 말하고, 예술을 이야기했다.
김정희 ‘난맹첩’의 ‘국향군자’.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김정희 ‘난맹첩’의 ‘국향군자’.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추사는 단 한 포기의 난 그림으로 ‘나라 제일의 향기인 군자(國香君子)’를 표현하였다. 중앙에 솟아난 성긴 난 잎들 속에서 솟구쳐 나온 두 줄기 잎이 교차하며 좌우로 뻗어나가 상과 하를 이룬다. 올라가든 내려오든 중앙에 굳게 뿌리내린 난은 군자의 삶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8월 30일까지 열리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간송문화전 제4부 ‘매·난·국·죽-선비의 향기’ 전시회에 7월 2일부터 교체 작품으로 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