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태주
  •  승인 2018.05.04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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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나태주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는 말씀이에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더불어 약과 더불어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장롱에 비싸고 좋은 옷도 여러 벌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는 여자이지요. 자기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귀퉁이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는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돈을 아끼느라 꽤나 먼 시장 길도 걸어다니고 싸구려 미장원에만 골라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잘 들어 응답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2007)

2007년은 나의 생애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한 해였고 가장 중요한 일이 많이 일어난 한해였습니다. 젊어서부터 신장결석으로 고생했으며 한 차례 개복수술을 하고 한 차례 내시경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몸이 불편하다 싶으면 신장 쪽만 살피고 고혈압 약만 챙겨서 먹었지 간장이나 쓸개 쪽은 관심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쓸개 줄에 1.7센티미터나 되는 돌이 생겨 그것이 쓸개 줄을 터트리는 바람에 쓸개 액이 몽땅 복강 사이로 쏟아져 나와 장기를 오염시키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중대사고였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도저히 살아나지 못한다는 것이 의학적 상식이었던 가 봅니다. 쓸개 액은 특히 췌장을 4분의 3이나 녹이는 괴사성 췌장염을 일으켰습니다. 수술불가, 치유불가가 그 당시의 진단내용이었습니다.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3개월 치료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속 시원히 수술이라도 한 번 해보자 싶어 옮긴 곳이 서울아산병원이었습니다. 진단을 하고 난 외과의사는 일언지하로 말했습니다. ‘이미 죽을 사람이 왔군요. 너무 진행되었습니다. 옛날 사람은 이렇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수술해봐야 건질 것이 없겠습니다. 어떤 의사도 이런 환자를 맡기를 원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막무가내기로 매달렸고 그 병원에서 내과로 전과하여 그야말로 기적과 같이 완치하여 퇴원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앞에서 ‘기적과 같이’ 라고 썼지만 그것은 분명 기적이었습니다. 그 복잡한 과정을 어찌 다 말과 글로 쓸 수 있다 하겠는지요.

병원생활 중 하도나 병의 차도가 없어 무작정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를 많이 드렸습니다. 기도라고 해야 화려한 기도가 아닙니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기도입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그 말만 몇 시간이고 반복하는 기도입니다. 아내 또한 같은 내용을 기도로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는 절대로 혼자서는 공주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결단코 저 사람을 살려주십시오.’

하나님이 얼마나 들으시기 힘들었을까요. 한 사람은 살려달라고만 말하고 또 한 사람은 혼자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차라리 같이 죽겠노라 고집을 부리며 떼를 쓰니 참 하나님도 곤란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끝내 하나님께서 그래 모르겠다, 너희들 맘대로 해라, 그러면서 우리의 기도를 슬그머니 들어주시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숨어서 기도하고 찬송 부르고 하는 동안 쓴 시가 바로 위의 시인데 독백체로 이야기체로 썼으니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작품입니다. 다만 읽어 이해와 느낌이 있으면 족한 문장입니다. 이 시를 붓펜으로 써서 면회 온 누군가에게 부탁하여 <시와 시학> 잡지사에 투고를 했는데 그 해 가을호에 발표되었습니다. 이 시에는 기교도 수식도 시적인 구도도 없지만 많은 독자들이 읽고 공감을 표시해주었습니다.

이 시를 읽고 이정록 시인이 우리 집사람이 답시 형식으로 쓴 양, 글을 써서 어느 잡지에 실은 적이 있는데 이 글이 정말로 우리 집사람이 쓴 것처럼 알려져 인터넷에 떠도는 걸 보는데 분명히 밝히거니와 그 글은 우리 집사람의 글이 아니고, 이정록 시인의 글입니다. 오해 없기를 바라면서 그 글을 옮겨 싣습니다.

이정록 시인이 쓴 글을 읽어보며 소름이 끼쳐지기도 합니다. 시인이 시를 쓸 때는 이 정도는 빙의(憑依)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서입니다.

 

너무 고마워요/ 이정록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 이제는 저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나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 온 남자예요. 

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에요.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처럼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나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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