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 김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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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 선우미디어 |
출판년도 : | 2014년 |
이방주 문학평론가의 서평 - 김애자 수필집 '숨은 촉'
삶이란 존재의 자리가 아니라 존재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
김애자 수필가의 수필집 《숨은 촉》은 존재의 의문을 명명백백하게 해결해 준다. 작가는 존재의 모습이 아니라 존재의 방법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숨은 촉》의 마지막 작품 <영혼의 성소聖所>에서 이렇게 밝힌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하는 존재론적인 자문은 하지 않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방법론이 더 중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방법론의 구심점은 글쓰기다.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내 삶의 부족함을 채우고, 세상을 애정의 눈길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그는 문학을 통해 세계의 '숨은 촉'이 되는 삶의 방향을 정한다. 서문에서 '산으로 들어와 흙을 만지면서 영혼의 닻을 내리게 되었다'고 토로한 것도 그의 문학이 흙의 진실을 담게 된 것과 일맥상통한다. 예술은 어쩌면 결핍의 소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핍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갖는 것도 문학을 선택한 작가의 존재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숨은 촉'처럼 '흙에 굽스려 살아온 산동네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수필집 《숨은 촉에 고스란히 스며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인생에서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인생은 탄생(Birth)와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우선 실존하고 그 후에 스스로 자유로운 선택과 결단의 행동을 통하여 자신을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이다. 우리 자신이 가진 고유한 삶의 성질을 구현시키고 인생 여정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하여 책임질 줄 알며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애자 수필가의 《숨은 촉》이 제시한 존재의 방법은 바로 인생의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숨은 촉≫은 256면에 주옥같은 수필 39편을 수록했다. '무죄, 풀 뽑는 여자의 변, 굼벵이의 열반, 산마을의 아이, 그 산에 가면' 등 5부로 나뉘어 실린 작품들은 '자연 속에 의미 있는 존재' '존재의 양면성'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미 있게 존재하는 방법' '그리움과 깨달음을 주는 존재들'에 대한 천착이 이루어진다.
수필문학은 체험과 사색으로 얻은 진리여야 한다. 이 책에 제시된 삶의 의문들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체험과 사색으로 시작하여 철학적 진리를 터득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것은 그의 개성적인 언어를 통하여 독자에게 전달된다. 작가가 세계를 향하여 던지는 시선의 방향에 따라 수필적 상상은 그려진다. 작가가 독창적인 시선에 의해 관찰한 세계는 내면에서 청국장처럼 발효되어 내면화된 다음 그의 언어로 형상화하여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었다. 그의 수필문학에 드러난 독창적 인식은 가슴을 울리어 독자는 마침내 활활 타오르는 예술적 불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표제 작품인 〈숨은 촉〉에 드러난 일상은 읽는 사람을 잠시 놀라게 한다. 건축 현장에서 발견한 '숨은 촉'을 보면서 '촉'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촉'이란 대들보를 받치는 기둥머리 한 부분에 깎아지른 쐐기를 말한다. 웅장한 건물에 비하면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건물의 균형을 잡아 주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이다. 여기서 촉과 함께 목공과 도편수의 존재 가치를 가벼이 할 수 없음을 작가는 깨닫는다. 결국 이 사회에 숨어 있는 촉과 같은 존재들의 소중함에 스스로 감동한다.
수필집 《숨은 촉》에 실린 39편의 작품 중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숨은 촉'이 된 것은 그의 시선 때문만은 아니다.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이로운 사실은 작가의 독서량이다. 작품 한편 한편에 담겨 얻어내는 지적 소득을 낱낱이 설명할 수조차 없다. 실제로 김애자 수필가의 고백을 들어보면 표제작인 〈숨은 촉〉이란 한편의 작품을 쓰기 위해 건축학개론을 독파했다고 한다. 그의 독서는 사서와 삼경, 문학, 고전, 역사, 축산, 음악, 미술 등 종류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내면화된 독서는 작품을 구성하는데 고스란히 수용된다. 작가는 짧은 글인 수필에 액자식 구성이나 병렬식 구성으로 많은 지적 정서적 소재를 담는데 효과를 보고 있다.
독서를 통한 풍부한 어휘력은 순수한 우리말을 적재적소에 살려 쓰는 문인으로서의 책무를 온전히 하는 데도 기여하였다. 눈에 띄는 것만 나열해도 '머루 덩굴 아래서 바장인다' '포갬포갬 쌓고' '손가락 하나 옴나위 못하고' '어마지두 겁을 먹었다.' '각단지게 맘먹고' '기둥머리 한 부분에 이에짬이 생기게 되면' '(고양이가) 자울자울 졸고 있는'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김애자 작가의 ≪숨은 촉≫은 우리에게 어디에 무엇으로 존재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 올바른 삶임을 일러 준다. 수필이란 어떤 가치를 지니는 문학 양식인가, 수필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의 의문을 풀어주는 문학의 숨은 촉이 되기에 충분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