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삼
(국내작가. 아동작가)
1. 들어가는 말
동시의 첫 번째 독자는 누가 뭐라 해도 어린이이고 어른은 두 번째 독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어른 독자(*동시인, 동화작가, 평론가, 교사, 출판사 종사자, 글쓰기지도 교사, 학부모, 도서관 종사자, 일반인 등)가 첫 번째 독자인 어린이를 대리해 매우 중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연하면 동시의 두 번째 독자인 이 어른 독자가 동시의 으뜸 독자인 어린이를 대신해 검열관 노릇을 하고 있는 동시에 어린이에게 줄 시를 전달하는 전달자의 막중한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독자로서는 이차 독자에 불과한 이 하위 어른 독자가 실제로는 두려울 정도로 막강한 자리에 있기에, 이들의 결정에 따라 힘없는(?) 독자인 어린이 -사실은 가장 막강한 자리에 있는 어린이- 에게 주어질 시들이 결정되고, 어린이는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 어른이 골라주는 시에서 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선택의 자유가 꽉 막힌 불행한 처지에 있는 것이다. 단지 어리고 구매권이 없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데 이 막강한 어른 권력자가 어떤 고정관념이나 편향성에 빠진다면 어떻게 될까? 어린 독자는 불행하게도 편식을 해야 하고 종내는 영양실조에 빠지든지 아니면 시란 음식을 아주 멀리하는 길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방향의 여러 가지 동시를 읽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교과서에 수록된 동시가 어린이에게 주는 영향은 크다 하겠고, 한 방향에만 치우친 동시를 게재할 때에는 의외의 폐단을 가져 올 우려조차 있을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무엇보다도 내용이 될 소재의 다면 다양을 권해야 하겠다. 감각적인 시, 사유적인 시, 유희에서 얻은 시, 노동에서 얻은 시……그 외 온갖 방면에서 시를 찾아내게 할 일이다. 절대로 어느 한 종류의 시만 시로 알게 해서는 안 되겠다.’ (이원수 아동문학전집 28권. 아동문학입문 317쪽)
이원수가 위의 글을 발표한 것이 1961년이니 이원수야말로 식견을 지닌 우리 동시문학의 선각자요, 어린이를 배려한 훌륭한 시의 교사라 하겠다.
우리 동시의 역사를 보면 늘 정치, 사회적인 영향에 의해 어느 한 방향으로만 흘러간 불우한 환경에 있었다고 본다. 이원수가 ‘어느 한 종류의 시만 시로 알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한 것도 이와 같은 사정과 무관치는 않다고 하겠다. 따라서 어린 독자들에게 다면 다양한 시를 주려면 시에 대한 일차 검열자요, 선택권을 지닌 어른들이 편향성에 빠지지 말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동시를 보는 눈을 넓힐 필요가 있다.
2. 여러 빛깔의 동시 읽기(알기)
⑴ 사물을 소재로 한 동시(사물동시 -이미지 동시)
사물동시(이미지동시)는 시인이 시심(동심)으로 어린이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세계의 사물을 심상으로 표현하거나 또는 묘사한 시라고 하겠다. 이런 유형의 시에서는 시적 발견을 볼 수 있다.
가. 사물을 동심으로 보고 형상화한 것
추녀 끝에
물고기 한 마리
죽었을까?
살았을까?
바람이 살짝 건드려 봅니다
땡그랑 땡그랑
물고기는 잔잔히
물결을 일으키며
맑고 고운 소리를 냈습니다
땡그랑 땡그랑
죽은 물고기를
바람이 살려놓고 갔습니다.
- 최새연,풍경 소리
소나무에 피어도
눈꽃
싸리 가지에 피어도
눈꽃
억새 줄기에 피어도
눈꽃
색깔도 하나
이름도 하나
백두산에도
한라산에도
똑같이 피는 겨울꽃
눈꽃.
-이경애, 눈꽃
이 2편의 시들은 시심 혹은 동심의 순수한 눈으로 대상인 사물을 이미지로 형상화한 시다. 화자는 결코 어린이가 아니다. 시인 자신이다. 다만 시인이 동심의 눈으로 새롭게 발견한 사물을 단순소박하게 표현했기에 화자가 어린이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할 뿐이다. 이처럼 사물을 그린 사물동시에선 꼭 화자가 어린이일 필요는 없다. 시의 대상이 된 사물을 어린이들도 눈앞에 떠올릴 수 있도록 또렷하게 형상화만 잘하면 된다.
물총새가 날아간다.
비가 줄줄 쏟아지는데
물총새가 쪼꼬맣게 날아간다.
언덕 밑 둥지엔
아가들이
입을 쫙 쫙 벌리고
엄마한테 먹이를 받아먹는다.
빗줄기가 줄줄 쏟아지는 날
엄마 물총새가
물고기 먹이를 입에 물고
쪼꼬맣게 날아간다.
-권정생, 물총새
이 시는 앞서의 2편의 시와는 다르게 시적 대상인 사물을 발견한 것이라기보다 사물을 동심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한 것이다. 화자는 어린이가 아니라 시인 자신이다. 이처럼 사물의 모습을 관찰 묘사할 때에는 화자가 굳이 어린이일 필요는 없다.
나. 사물을 동심으로 의인화하여 형상화한 것
어, 어
나뭇잎에 떨어졌네!
그럼
또르르
구슬 되어 굴러가지
어, 어
전깃줄에 걸렸네!
그럼
어디 한번
매달려 볼까?
대롱대롱대롱
아이고
힘 빠졌다
톡―.
-권오삼,빗방울
이 시는 화자가 분명하다. 바로 빗방울 그 자체다. 시인이 대상인 사물에다 동심을 입히고 말을 하게 한 것이다. 즉 대상에다 자신을 투사(投射)시켜 의인화한 것이다. 이런 유형의 시는 시적 대상에다 자신을 투사, 또렷하게 이미지화하지 않으면 시가 유치해지거나 무미건조하게 될 우려가 있다.
⑵ 생활이나 삶을 소재로 한 동시(생활동시, 삶의 동시)
생활이나 삶에서 소재를 얻어 아이 눈으로 표현한 유형의 시가 생활동시, 또는 삶의 동시라 하겠다. 이런 동시는 비유나 이미지보다 시가 지닌 진정성, 진실성 -즉 생활감동이 중요하며 표현은 진솔한 게 특징이다.
가. 시 속에 삶을 담은 것
달 달 달 달……
어머니가 돌리는
미싱 소리 들으며
저는 먼저 잡니다
책 덮어 놓고.
어머니도 어서
주무세요, 네?
자다가 깨어 보면
달달달 그 소리.
어머니는 혼자서
밤이 깊도록
잠 안 자고 삯바느질
하고 계셔요.
돌리시던 미싱을
멈추시고
"왜 잠 깼니?
어서 자거라
어머니가 덮어 주는
이불 속에서
고마우신 그 말씀
생각하면서
잠들면 꿈 속에도
들려옵니다.
"왜 잠 깼니?
어서 자거라
어서 자거라……."
-이원수,밤중에
아버지 밥상 펴시면
어머니 밥 푸시고
아버지 밥상 치우면
어머니 설거지하시고
아버지 괭이 들고 나가시면
어머니 호미 들고 나가시고
아버지가 산밭에 옥수수 심자 하면
옥수수 심고
어머니가 골짝밭에 감자 심자 하면
감자 심고
고무신 두 짝처럼
나란히 나가셨다가
나란히 돌아오시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서정홍,고무신 두 짝처럼
위의 2편의 시는 삶의 한 단면을 말의 수사 없이 그냥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시는 생활감동을 잘 담아내지 못하면 평범한 생활 주변의 밋밋한 이야기로 되어 시가 평범한 일기문, 혹은 산문처럼 될 수 있다. 따라서 시를 선택할 때 신문기사 같은 시냐, 아니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나. 시 속에 아이 마음이나 심리를 담은 것
아침마다
할아버지 요강은 내 차지다
오줌을 쏟다 묻으면
더럽다는 생각이 왈칵 든다
내 오줌이라면
옷에 쓱 닦고서 덕도 집어먹는데
어머니가 비우기 귀찮아하는
할아버지 요강을
아침마다 두엄더미에
내가 비운다
붉어진 오줌 쏟으며
침 한번 퉤 뱉는다
-임길택,할아버지 요강
어젯밤
번개 치고 천둥 쳐서
우리 식구 모두
큰방에서 잤어요
형아가
내 자리 자꾸 샘내서
엄마 옆에
꼬옥 붙어 잤어요
-김은영,시준이 그림일기
이 두 편의 동시는 어른인 시인이 짐짓 아이가 되어 아이 마음이나 심리를 표현한 것이다. 시인 자신이 경험한 것이거나 아니면, 아이의 말이나 행동을 보거나 들은 간접 경험을 시화한 것이라고 본다. 이런 유형의 시는 직접이든 간접이든 경험 없이 쓰면 어색하거나 유치할 우려가 있다.
⑶ 정서를 표현한 동시(서정동시)
시가 이미지나 메시지가 배제된 채 오로지 정서로만 물들여진 동시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시에서 시인이 아이가 아닌 어른의 감정을 삐죽 내밀게 되면 어른의 감정 흘림이 되어 비동시가 되거나 어린이 독자에게 정서적 거부감을 줄 우려가 있다. 시점 설정과 감정 통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주정적인 동시라고 하겠다.
말 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누나도 잠이 들고
엄마도 잠이 들고
말 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나는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강소천,눈 내리는 밤
새 한 마리
하늘을 간다.
저쪽 산이
어서 오라고
부른다.
어머니 품에 안기려는
아기같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아가는구나!
-이오덕, 새와 산
「눈 내리는 밤」은 시인의 정감이 주된 색조로 짜여 진 시이고 「새와 산」도 대상을 보는 시인의 눈이 이지적이라기보다 역시 정감에 닿아 있기 때문에 두 편 모두 서정동시라 할 수 있다.
⑷ 메시지를 담은 동시(메시지동시)
시인이 아이의 자리에서 아이처럼 말하든, 시인 자신이 직접 말하든 관계없이 시인의 관념(사상이나 윤리도덕, 가치관, 계몽, 가르침 등)을 은연중 표면에 드러낸 게 바로 메시지 동시라고 할 것이다. 서경에 詩言志란 말이 있다. 志 는 뜻이니까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시에서 메시지는 사회성을 띤다. 그러니까 가르치려는 의도가 있다. 독자를 자기 사상(관념)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주의할 것은 그것이 강요가 아닌 설득의 목소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서 자라
어른 되면은
지금 어른 부끄럽게
만들 터야요.
같은 형제 동포끼리
총칼질커녕
서로 모두 정다웁게
살아갈래요.
-권태응,우리가 어른 되면
사람들은 참 아무 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 것은 없다.
하느님도
‘내’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되고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권정생,밭 한 뙈기
「우리가 어른 되면」은 아이의 자리에서 아이가 되어 말하고 있다. 이에 반해 「밭 한 뙈기」는 시인이 직접 말하고 있다. 다만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눈높이를 낮추어 말하고 있을 뿐이다. 두 편 모두 계몽의 의미를 둔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으나 강요가 아니라 설득의 목소리여서 무난하다.
⑸ 생각이나 사색, 성찰에서 나온 동시(사유동시 / 의미동시)
생각에서 나온 동시도 생활 속에서 얻은 것이기에 그냥 머릿속에서 추상적, 개념적으로 쓴 관념시와는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흔히 보면 이런 생각에서 나온 시를 관념시와 동일시하는 감상자들이 많다.
나무도 나무도
혼자 살면
심심해서
숲에 모여 산단다
햇살도 햇살도
혼자 피면
쓸쓸해서
꽃들과 함께 핀단다
달님을 봐 달님을 봐
밤하늘 혼자 뜨면
무서워서
별들과 함께 뜨잖니
사람도 마찬가지야
먼 길 혼자 가면
외로워서
길동무들 찾잖니
-김은영,세상
여름 가뭄 때
물 한 통이라도 준 일 있니?
아―니요
비바람 몰아 칠 때
한번이라도 지켜 준 일 있니?
아―니요
그래도 가을되니
가져가라고
예쁜 열매 아낌없이 떨어뜨리는
밤나무 ․ 대추나무 ․ 도토리나무…….
-권오삼,아낌없이 주는 나무들
두 편 모두 생활 속에서 건진 생각을 사물에 기탁하여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생각은 교훈이나 계몽과는 또 다른 것으로 어떤 의미나 사유를 시 속에 품고 있다. 그 의미는 주로 통찰이나 성찰에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낡은 도덕적 교훈이나 추상적 의미를 담은 의미동시는 관념시로 떨어질 수 있다.
⑹ 회화적 표현의 동시(서경동시)
언어로 그림을 그리듯 사물의 모습이나 풍경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게 서경동시(회화동시)라 하겠다. 어린이 시에서는 사생시로 나타난다.
몹시 허리가 구부정한 한 그루 나무가
엉덩이를 불쑥 내밀고
다른 나무 사이에 생긴
그 초생달 같은 빈 틈에
파아란 하늘이 한줌 박혀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간들간들 흔들리는
조그만 나뭇잎 하나가
그 하늘을 잘랐다 붙였다 하고 있다.
-오규원,나무가 있는 풍경
가로수 위로 땅거미 몰려드네
새들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네
새하얗던 얼굴빛의 가로등들
호박처럼 발갛게 불을 켜고
높다란 아파트 창문마다
고양이 눈빛처럼 반짝이는 불빛들
하늘은 어느 새 문밖에다
작은 별 하나 촛불처럼 꺼내놓았네
-권오삼, 저녁 풍경
두 편 모두 주관을 배제한 체 객관적 묘사로만 일관하고 있다. 시 제목 그대로 나무가 있는 풍경이요, 도시의 저녁 풍경이다. 한 폭의 풍경화를 보듯 하면 된다. 이처럼 말로 그림을 그리 듯 쓴 시는 대상이 눈앞에 또렷이 떠오르게 이미지가 선명해야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할 때에는 어린이들에게 난해한 시가 될 것이다. 이런 회화적 서경동시는 우리 동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간혹 나타난다. 감상 대상은 고학년 어린이가 될 것이다.
⑺ 유희나 놀이적인 동시(유희동시, 놀이동시)
말 그대로 말유희 동시, 말놀이 동시라고 하겠다. 이런 유형의 동시는 발상이 기발하고 표현이 재미있어야 한다. 율동감이 있고 유머러스해야 한다. 아이들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운율을 지닌 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동서가 똑 같다는 게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보들레르는 그의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에서 ‘인생에는 단 하나의 매력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장난의 매력이다’라고 했는데, 나는 이를 아이들에게 적용시켜 ‘어린이의 삶에서 진정으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면 그것은 장난의 매력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 장난을 시에서 보는 것도 아주 매력적이고 흥미 있는 일이다.
이이는 누렁니
칠칠은 뺑끼칠
팔팔은 곰배팔
구구는 닭모시
어느새
구구셈을 다 외웠네
-김용택, 구구셈
숟가락아
나 배고프다
빨랑 밥 떠넣어라
젓가락아
밥 들어왔다
빨랑 반찬 집어넣어라
이빨들아
일감 들어왔다
싸게싸게 움직여라
알았다
밥통아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잖니!
-권오삼,밥 먹기
봄이 간다 뻐꾹
꽃이 진다 뻐꾹
알 낳았다 뻐꾹
남의 둥지에 뻐꾹
나는 아니다 뻐꾹
남의 둥지에 뻐꾹
알 낳지 않았다 뻐꾹
도리도리 뻐꾹
정말이다 뻐꾹
찾아봐라 뻐꾹
-안도현,뻐꾸기
⑻ 말 익히기를 위한 동시(말놀이동시)
유치원 단계에 있는 어린이를 위한 말 익히기 동시라 하겠다. 이런 동시는 내용이 엉뚱하고 난센스에 가까우며 운율이 있어 말 익히기 단계에 있는 어린 나이의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사자야 사자야
서커스 사자야
마술사 엉덩이를 왜 물었어?
엉덩이가 사과니?
엉덩이가 사탕이야?
사자야 사자야
마술사 엉덩이를 왜 물었어?
-최승호,사자
이 시는 ‘시옷’을 익히게 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시옷’이 들어간 단어를 동원하고 있다. 사자, 사과, 사탕, 서커스가 그러며 그 단어를 반복해서 쓰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의도를 밖으로 전혀 드러내지 않았기에 말놀이 동시로서 성공했다고 본다.
⑼ 이야기를 시의 그릇에 담은 이야기 동시(동화시, 우화시)
동화와 우화를 시의 그릇에 담은 것으로 이야기가 있는 시라 하겠다.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동화적 요소를 담은 동화시와 우화적 요소를 담은 우화동시로 나눌 수 있다.
가. 동화를 시의 그릇에 담은 것
개구리네 한솥밥 (백석) -창작동화를 시의 그릇에 담은 것
가래떡(위기철) -전래동화를 재구성하여 시의 그릇에 담은 것
나. 우화를 시의 그릇에 담은 것
털빛이 눈처럼 새하얀 고양이가 있었어요.
아이는 이 고양이를 무척 좋아했어요.
눈처럼 새하얀
나의 고양이
미로! 미로!
너는 나의 귀여운 친구
미로는 털빛이 새하얗다 보니
털이 금방금방 더러워졌어요.
아무리 물로 닦고 문질러줘도
본래대로 깨끗해지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내 고양이를
눈처럼 새하얗게 해줄까?’
아이는 혼자 곰곰이 생각했어요.
‘……아, 좋은 생각이 있네!’
아이는 곤히 잠자고 있는
고양이를 가슴에 안았어요.
그리고는 고양이를
세탁기 안에 넣은 다음
가루비누를 뿌리고
얼른 뚜껑을 닫은 뒤
살짝 스위치를 눌렀어요.
윙― 윙윙윙윙 윙윙윙윙
꿈나라에서
신나게 놀고 있던 고양이는
갑자기 온몸이 팽글팽글
머리가 어질어질
속이 능글능글
야옹! 야옹!
나 미로 죽어요 미로 죽어요
세탁기 안에서 죽는다고 울부짖었지요.
난데없는 미로의 비명소리에
아이 어머니가 달려왔어요.
어머니 아니었으면 빨랫감이 되어
죽을 될 뻔했던 미로
용케 목숨을 건졌어요.
그런 일이 있고나서
미로가 아이 보고 말했어요.
“나는 털빛 따위엔 관심 없어. 그건 사람들 맘이지. 그러니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둬. 그게 나를 위하는 거야. 까딱하면 하늘나라로 갈 뻔했잖아!”
“그래도 나는 네 털빛을 새하얗게 해주고 싶어.”
“애야! 너는 사람이고 나는 고양이란다. 그러니 나를 좋아한다면 제발 이 고양이가 바라는 대로 좀 내버려 둬. 알겠지, 응! 야옹!”
-권오삼,고양이 세탁
허둥지둥
언덕길 뛰어가던
산토끼가 글쎄
달팽이 보고 혀를 찼대.
너처럼 느릿느릿 가다간
언덕 너머 산비탈 뒤덮은
진달래꽃 잔치 못 보겠다.
달팽이도 글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대!
너처럼 빨리빨리 가다간
제비꽃 깽깽이풀 얼레지 족두리풀 매미꽃 봄까치꽃 애기풀 들바람꽃……
언덕길 따라 줄줄이 핀
풀꽃 잔치 하나도 못 보겠다.
-오은영,산토끼랑 달팽이랑
우화와 교훈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고양이 세탁」은 인간 생활을 배경으로 한 철리(哲理)우화에 가까운 것이라면 「산토끼랑 달팽이랑」은 동물과 자연을 배경으로 한 이솝 우화(원시동화)에 가까운 우화라 하겠다. 우화동시는 아무리 연과 행을 갖추어도 산문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우화동시는 걸음마 이전의 아주 낮은 단계에 있다고 하겠다. 보기 드물다는 것이다.
⑽ 실험성이 강한 동시(상상력에 바탕한 동시)
지금까지 말한 여러 유형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실험성이 강한 동시로 상상력(이미지)에 바탕하고 있는 동시다. 우리 동시에는 실험성이 강한 작품이 드물다. 실험성이라고 하여 어린이의 이해를 무시한다든가 의미 전개에서 논리적 질서가 없거나 이미지가 선명하지 못하면 전달성에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단순히 말의 요설에 머문 것은 터무니없는 말장난 놀음이기에 거부감을 준다.
악어야, 악어야,
신발 속에 사는 악어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더러운 발.
발을 씻지 않는 아이가 신발을 신으면,
발을 꽉 깨물어 먹어라.
생쥐야, 생쥐야,
베갯속에 사는 생쥐야.
세상에서 가장 좋은 놀이터는 때 묻은 얼굴.
세수 안 한 아이가 잠을 자면,
얼굴에 올라가 춤을 추며 놀아라.
-위기철,신발 속에 사는 악어
우랄랄랄
오늘 나 혼자 시간을 만드는 공장에 갔다네
공장은 전체가 둥그런 하얀 건물이었다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첫눈에 띄는 게
큼직한 12개의 숫자와 작은 눈금들
그리고 마중 나온 세 명의 안내원
첫째는 땅딸보
둘째는 키다리
셋째는 말라깽이
공장 안으로 들어서니 공장안은 온통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 소리뿐이었다네
째깍째깍째깍 똑딱똑딱똑딱 땡땡땡땡
맞물려 돌아가는 복잡한 기계들과
가래떡처럼 쏟아져 나오는 제품들
기계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최신 자동 기계였다네
생산되어 나오는 제품을 보니
구겨지거나 찌그러지거나 금이 가거나
흠이 난 불량 제품은 하나도 없었다네
상표를 보니「명품 은빛시간」
(생략)
-권오삼,공장 구경 -시간을 만드는 공장에 가다
3. 맺는 말
내 나름대로 이런저런 동시들을 10가지로 분류하고 한두 작품을 예로 들어 보았다. 많은 동시들을 여러 빛깔로 분류한다는 게 사실 쉽지 않다. 어떤 작품은 작품 속에 빛깔이 겹쳐져 있어 경계가 모호하고 분류하기가 애매한 것도 있고, 또 어떤 작품은 보는 이의 눈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작품도 있다.
그리고 예로 든 작품 외에 다른 좋은 작품들을 더 많이 예로 들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한 것은, 이 원고가 동시에 대한 토론을 위한 자리에 쓰일, 제한된 시간에 맞는 분량의 원고여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어른들은 어른이라는 그 특권(?) 하나만으로 어린이가 직접 선택해야 할 동시를 어린이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자신들이 독점, 선택 ‧ 공급하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좋으나 잘못된 권력 행사가 늘 부작용을 낳듯 동시를 선택 ‧ 공급하는 과정에서도 독단적 권력 남용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독단이 없어지려면 여러 빛깔의 동시를 알아야 하며 또 제대로 감식하는 안목도 길러야 할 것이다. 시가 아무리 주관성이 강한 장르라 해도 경향성을 떠나 ‘시가 된 양질의 동시와 그렇지 않은 저질의 동시’ 쯤은 가려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러려면 여러 빛깔의 동시를 선입견 없이 두루 맛볼 필요가 있다.
저질의 동시든 고질의 동시든 자기 입맛에만 맞추려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완성도가 높은 동시라면 어떤 경향의 동시든 아이들에게 권하려는 소견 넓은 어른 독자, 안내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약력:
국내작가 > 아동작가 > 아동동화작가
출생지: 경상북도 안동. 출생: 1943년 01월 05일. 안동사범대학교. 작품집: 동시집 '강아지풀', '가시철조망', '물도 꿈을 꾼다' 등. 1975 월간문학 신인상. 1976 소년중앙 문학상. 2002 방정환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