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울고 있네요
정순옥
파도가 울고 있네요. 처~얼~썩 철썩! 소리를 내며 울고 있네요. 지금은 캄캄한 밤인데 파도는 무슨 사연이 있어서 저리도 슬피 울까요. 아~아 알겠네요. 세찬 바람이 파도를 바다에서 갯바위로 밀어붙이는데, 갯바위는 품어 주기보다는 밀쳐내 버리니 서러워서 울고 있나 봐요. 바다 수면 위에서 잔물결로 평화롭게 살고 싶은데 세찬 바람이 휘몰아대니, 의지할 곳을 찾아 갯바위에 계속 부딪쳐 보는 거겠죠. 파도는 산산이 부서져 흰 물거품이 된 몸을 다시금 일으켜 갯바위를 향해 또다시 달려가나 봅니다.
성난 파도는 찬바람이 원망스럽겠네요. 아~니, 모든 것을 품어주는 넓은 초록바다는 왜 파도를 품고 있지 않고 갯바위로 밀어낼까요. 아름다운 산호초 해초 물고기들과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 보라고 권장하고 있는 걸까요? 파도는 정말 포근한 넓은 바다 위에서 조용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할 거예요. 그래서 파도는 바람을 멈추게 해줄 따스한 햇볕이 비출 때까지, 갯바위에 부딪혀 몸이 부서져서 하얀 물거품을 내고 흔적으로 모래톱을 만들면서 인내해 낼 것 같네요.
파도가 울고 있는 소리를 가만히 다시 들어보니, 친구의 울음소리가 섞여서 들리네요. 친구도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함께 울고 있나 봐요. 어느 날 세파에 시달려 서럽게 울던 친구의 모습이 나의 가슴에 후벼가며 박혀서 아프게 하네요. 파도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는 나의 눈에서도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 밤은 파도 친구 나 그리고 슬픔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울고 있는 듯합니다.
내 친구는 참으로 예쁜 사람이에요. 외모도 예쁘고 마음씨도 예쁘답니다. 친구를 낳아준 부모님은 인물이 좋다는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서 많이 들었다는군요. 어머니는 보기 드문 미인이셨고, 아버지는 사람들이 장군감이라면서 나라의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추겨주었다고 하네요. 그~런~데~요, 그런데 말이죠--- 그런 아버지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 나라가 어지러울 때, 빨치산이라는 누명을 쓰고 총살당했다 하네요.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일입니까. 나라가 혼돈상태여서 하룻밤 자고 나면 애국자가 되었다가 또 하룻밤 자고 나면 공산 게릴라인, 빨치산으로 낙인이 찍혀 버리기도 했답니다. 죄 없는 민간인 친구 아버지가 역사적인 희생양이 된 것이죠. 그 억울함을 몇십 년이 지나서야 후손들이 사실을 밝혀내,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보상을 해 준 일이 있었다고 하네요.
친구는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추억도 없는 아버지 때문에 ‘빨치산 후손’이라는 굴레 속에서 고통스럽고 슬프게 어린 시절을 살아왔데요.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역사의 비극이 상처가 되어 가슴에 흔적으로 남아 있어, 생각할 때마다 온몸에 통증을 느낀답니다. 동족 간의 상쟁인, 한국전쟁 때문인 역사적인 아픔을 안고 살아온 사람들.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이며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또렷이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때때로 친구는 허공을 향해 누군가에게 묻는 답니다. 사람들은 아직도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휴전상태에 살아가고 있는데 이념 갈등은 끝이 없는 듯합니다.
한국전쟁 후 초등학교에서는 반공교육 시간이 있어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로 시작되는 군사혁명공약을 설명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나네요. 학우들 간에는 누구는 아버지가 빨치산이라고 하면서, 가까이하면 안 된다고 쉬쉬하며 수군거리던 시절이었죠. 참으로 어이없고도 슬픈 역사적인 비극 속에서 살았던 친구가 왕따를 당하여 언제나 혼자 지내면서 몹시 외로웠데요. 그 상처가 지금도 남아 있어 여럿이 함께 일하는 것보다 혼자서 일을 하는 게 편하다는 친구의 우울증에 가까운 행동을 나는 이해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국가적인 제도에 얽매여 할 수 없었던 젊은 시절을 보내고 나니, 인생살이가 자기 마음대로 안된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답니다. 기막힌 영향으로 신앙인의 삶을 갖게 되니 앞날에 대한 꿈과 희망의 끈이 보였다고 하네요.
인간의 삶은 참으로 복잡미묘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간만 있으면 바닷가에 나가 일렁이는 물결과 대화하면서 살아온 친구는, 이제는 파도소리만 들려도 슬프고 눈물이 나와 바다를 멀리한다네요. 파도가 부서지면서 내는 하얀 물거품을 바라보면,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삶을 보는 것 같아 싫은 느낌이 든답니다. 친구는 가난하고 슬프게 살았던 서러운 세상을 잊고, 아무런 고통도 없고 사랑만 가득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살고 싶다네요. 근래에 얻은 평화로운 마음은 하늘이 준 선물이라는 생각에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해서 가슴이 벅차답니다. 찬란한 햇빛을 맞으며 하루를 살아가는 작은 즐거움으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어두운 밤을 은혜롭게 견딘다고 합니다.
지금 같은 캄캄한 밤이 지나고 찬란한 햇빛이 떠오르면, 몹시 파도를 성가시게 굴던 바람도 어느새 사라지고 말 거예요. 그러면 파도는 그리도 원하던 잔잔한 물결 되어,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넓은 초록바다 품속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겠죠. 역사적인 트라우마 탓인 상흔을 품고 세파에 휘둘리면서 살아온 친구도, 아픈 가슴을 달래며 어두운 세상을 지내고 나면 따스한 햇볕으로 사랑이 가득한 환한 새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거예요.
파도가 철썩! 처~얼~썩 슬픈 소리로 울고 있네요. 또다시 들어보니 친구의 울음소리도 섞여 있는 것 같네요. 저도 울고 있어요. 웬일인지 이 세상에서 슬픈 사람들이 온통 울고 있는 느낌입니다. 때가 되면 따스한 햇볕이 빛나는 새로운 세상이 되어 행복하게 웃을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