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종어보' 드디어 고국 품에 돌아왔다.

조회 수 9592 추천 수 2 2015.04.02 18: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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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게 4.45㎏. 오른쪽 작은 사진은 도장을 찍는 면인 인판(印板)


시애틀 미술관장 "반환 요청에 만장일치로 돌려주게 돼 뿌듯"

  
미국으로 반출됐던 조선 덕종(1438~1457)의 어보(御寶)가 돌아왔다. 1일 오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덕종어보 반환식이 열렸다.

이 어보를 수집해 미국 시애틀미술관에 기증한 고 토머스 스팀슨(Thomas D Stimson)의 외손자 프랭크 베일리(Frank S Bayley)씨와

키멀리 로샤흐(Kimerly Rorschach) 시애틀미술관장도 참석했다.


  
  어보는 조선 왕실에서 국왕이나 왕비 등의 존호(尊號·덕을 기리는 칭호)를 올릴 때 만든 의례용 도장. 베일리씨는 "이 어보는 한국 미술을 사랑한 외할머니가 타계하기 전 마지막으로 미술관에 기증한 것"이라며 "시애틀에서 이 덕종어보는 한국에서 온 대사(ambassador)였고, 한국 문화의 상징이었다"고 했다. 키멀리 로샤흐 관장은 "지난해 한국 정부에서 반환 요청을 받고 우리 미술관 직원들과 이사회, 기증자 측과 논의한 결과 만장일치로 돌려주기로 했다. 기쁘고 뿌듯하다"고 했다.

조선 7대 임금 세조의 맏아들인 덕종은 20세에 요절해 생전에 왕이 되지 못했다. 경기 고양에 있는 경릉(敬陵)이 그의 무덤이다.

덕종어보는 그의 아들 성종이 9대 임금이 된 후 아버지 덕종을 온문의경왕(溫文懿敬王)으로 추존하면서 만든 도장이다. 황동에 금도금을 했고 무게는 4.45㎏, 인판(印板·도장을 찍는 면)은 가로세로 각각 10㎝. 일제강점기에 만든 '종묘지초고(宗廟誌初稿)'에 1943년까지 서울 종묘에 보관돼 있었다는 기록으로 미뤄, 그 후 해외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웹관리자

2015.04.03 11: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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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 기억나시나요? 학창시절 역사 시간에 열심히 외우던 조선 왕실의 계보입니다. 사실 전 학교를 졸업한 지 꽤 되다 보니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까지밖에 기억이 안 나서 검색해서 뒤를 채워 넣었습니다.

갑자기 '태정태세문단세...' 얘기를 꺼낸 건 '덕종' 때문입니다. 불법 유출됐던 조선 왕실의 유물인 '덕종어보'가 최근 우리나라에 돌아왔습니다. 1943년까지 종묘에 보관되다 언제 누구 소행인지는 모르지만 해외로 불법 반출됐던 문화재입니다.

수십년 간 행방이 묘연했는데, 지난해 우리 정부가 미국 시애틀미술관에 보관 중인 걸 확인했습니다. 미국인 수집가가 1962년 뉴욕에서 구입해 이듬해 시애틀미술관에 기증한 겁니다. 아마도 한국전쟁 중 누군가가 반출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보는 왕실의 도장이기 때문에 종묘에 보관해야 합니다. 누구든 종묘 밖으로 들고 나간 것 자체가 불법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미술관 측에 반환을 요청했는데 미술관 측이 흔쾌히 이에 응해준 겁니다. 귀중한 문화재가 우리나라에 돌아온 것 자체가 뉴스지만, '아름다운 반환'이 더 화제가 됐습니다.

지금까지 해외에 유출됐다 환수된 문화재는 크게 두 종류였습니다. 첫째는 불법 유출 문화재가 보관된 나라 정부가 이를 압수한 뒤 우리 정부에 돌려주는 방식입니다. 불법 유출 문화재를 갖고 있는 사람이 불법적으로 이를 취득한 게 명확히 확인됐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미국 정부가 몰수해서 현재 반환을 위한 서류 절차가 진행 중인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도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또 하나는 소장자에게 값을 치르고 구입하는 방식입니다. 정부가 직접 예산을 들여서 구입하면 가장 좋지만, 한정된 예산으로 다 사들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기업이 사회 공헌 차원에서 나서기도 하고, 해외 동포 등이 구입해 우리 정부에 기증하기도 합니다. 유출 경위가 명백히 불법으로 확인되지 않은 경우엔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유출된 과정은 불법이었지만 현재 소장자가 정당한 경로를 거쳐서 소장한 경우는 상황이 복잡해집니다. 우리로선 불법 유출이니 돌려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합법적인 경로로 이를 소유한 소장자가 반환을 거부할 경우 소장자의 재산권을 무작정 침해하기는 어려운 탓입니다.

덕종어보의 경우가 바로 마지막 경우입니다. 그런데 미술관 측이 흔쾌히 반환해 줬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러니 '아름다운 반환'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지요. 실제로 우리 해외 유출 문화재 환수 역사상 이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국새도 아닌 '어보'의 반환인데 모든 언론이 덕종어보 반환을 앞다퉈 다룬 건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사를 내고 나니 여기저기서 묻습니다.
"그런데요.... 덕종이 누구예요?"
"조선의 왕입니다."
"태정태세문단세... 끝까지 외워도 없는데요?"
"'태정태세문단세...'엔 없습니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세자 시절 요절했거든요."
"왕위에 오르지 못했는데 어째서 왕이죠?"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거죠."
"추존은 또 뭔가요?"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뭅니다.

덕종은 조선 7대 왕인 세조의 맏아들입니다. 의경세자 시절인 20세에 요절했습니다. 이 때문에 동생이 세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됐습니다. 8대 임금인 예종입니다. 그러나 예종은 왕위에 오른 지 불과 14개월 만에 역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때문에 의경세자의 아들이 예종의 양자로 입적한 뒤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9대 임금 성종입니다.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가 왕이 되지 못하고 사망할 경우 뒤를 이은 임금이 왕으로 높여주는 걸 '추존'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왕이 된 이들을 '추존왕'이라고 부릅니다. 조선시대엔 덕종 외에도 원종, 진종, 장조, 익종 등 추존왕이 여럿 있습니다.

추존을 하려면 00왕이라는 이름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 쓰는 도장이 '어보'입니다. 문화재청의 공식 자료를 보면 어보는 "조선 왕실에서 국왕이나 왕비 등의 존호(덕을 기리는 칭호)를 올릴 때 의례용으로 제작한 도장"을 말합니다.

성종은 의경세자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의경왕'이라는 이름을 지어 바치면서 왕으로 추존했습니다. 이를 위해 의경왕의 상징인 도장을 만들었습니다. 이 도장이 최근 돌아온 덕종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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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또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의경왕의 도장인데 왜 의경왕어보가 아니고 덕종어보인가요? 덕종은 또 누구죠?

일반인들에게 흔히 알려진 이름은 '태정태세문단세....' 뿐이지만, 사실 조선의 왕들은 이름을 여러 개 가졌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흔히 아는 '태정태세문단세...'는 '묘호'입니다. 묘호는 왕이 죽고 난 뒤 삼년상이 끝나고 신주가 종묘에 들어갈 때 종묘에서 그 신주를 부르는 호칭입니다. 이밖에 왕이 죽은 뒤 그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이름을 지어 바치는데 이를 '시호'라고 합니다. 이와 별도로 신료들이 왕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만드는 이름도 있습니다. 이를 '존호'라고 합니다.

세종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세종은 묘호이고, 시호는 '장헌', 존호는 '영문예무인성명효'입니다. 그러니까 세종대왕의 이름을 정식으로 다 부르면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입니다. 태조 이성계의 이름을 정식으로 다 부르면 '태조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이 됩니다.

덕종의 경우 아들인 성종이 왕으로 추존할 때 의경세자를 의경왕으로 높였지만, 나중에 따로 묘호로 '덕종'이라는 이름을 얻었기 때문에 덕종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불리는 거죠.

이름 얘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예전에 '이산'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조선 정조를 다룬 사극입니다. 이산은 왕이 되기 전 정조의 이름입니다. 성이 이씨니까 이름은 산, 외자죠.

조선의 왕은 대부분 이름이 외자였습니다. 세종은 '도'였고, 정조는 '산', 영조는 '금'이었습니다. 유교문화권에서 강력한 왕권의 산물이었던 '기휘제도' 때문입니다.

당시 왕은 말 그대로 감히 이름을 입에 올릴 수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입에 올리는 것뿐 아니라 왕의 이름에 들어가는 한자를 글로 옮기는 것도 금기됐습니다. 이 때문에 나중에 왕이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왕족은 태어날 때 아예 이름을 외자로 지었습니다. 백성들이 불편을 덜 겪게 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능하면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지 않는 한자를 골랐고 심지어 없는 글자를 새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원래 이름이 두 자였던 이가 왕이 되면 이름을 외자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원래 이름은 성계였지만 왕이 된 후 이름을 외자인 '단'으로 바꿨습니다. 태조의 아들인 정종 역시 원래 이름이었던 '방과'를 외자인 '경'으로 바꿨습니다.

사실 덕종어보 반환 기사를 쓰면서 원래는 "덕종어보는 조선 9대 임금인 성종이 세자로 요절한 아버지 덕종을 '의경왕'으로 추존하면서 만든 도장입니다."라고 썼었습니다. 그런데 덕종도 생소한데 의경왕이라는 이름까지 나오면 시청자들이 혼란스러울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경'이라는 이름을 빼고 그냥 '왕으로 추존하면서'로 바꿨습니다. 기껏해야 1분 30초 40초 쓰는 방송 기사의 한계지요. 그래서 시간의 제약 없이 길게 쓸 수 있는 취재파일을 통해서 방송에 못 담은 '의경왕'의 뒷얘기를 풀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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