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흐르다 정체돼 오랫동안 고여 있는 지역으로 다양한 생명체의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완벽한 생태계, 바로 습지(wetlands)다.
'람사르 조약' 제1조에는 "습지는 자연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공적인 것도 포함하고 영속적인 것이나 일시적인 것, 물이 체류하고 있거나 흐르고 있거나, 혹은 담수이건 염수이건 간에 습원이나 소택지, 이탄지, 혹은 하천이나 호소 등의 수역으로, 간조 시 수심이 6m를 넘지 않는 해역을 포함한다."라고 매우 광범위하게 습지를 정의하고 있다(자료: 한국습지학회). 이 정의에 따르면 강가나 냇가에 물이 고여 있는 지역뿐 아니라 갯벌이나 인공 저수지, 심지어 염전까지도 습지에 해당된다.
습지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일 뿐 아니라 지하수의 수위 조절이나 유지, 생활이나 농업, 공업에 필요한 물 공급, 홍수 조절, 수질 개선, 영양 염류의 축적과 보존, 생태 관광지, 기후 조절까지 역할도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농지로의 전환이나 도시 개발 같은 인위적인 요인뿐 아니라 가뭄이나 침식, 해수면 상승 같은 자연적인 요인까지 더해져 전 세계 곳곳에서 습지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1600년대까지만 해도 남한 면적의 9배 정도인 89만km2가 넘었던 미국의 습지는 현재 절반 이하로 줄어든 상태다(자료: US EPA). 우리나라의 습지는 더욱 빠르게 줄어들었다. 지난 1980년대 874.5km2이었던 습지 면적은 2000년대에는 339.0km2로 감소했다. 20년 사이에 습지의 61%가 사라진 것이다(환경부, 2014).
일반적으로 자연 습지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동시에 이산화탄소보다 20배 이상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을 배출하는 매우 독특한 곳이다. 특히 습지는 자연에서 메탄을 가장 많이 내뿜는 곳이다. 습지 퇴적층처럼 물로 덮여 있어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는 유기물이 분해되면서 메탄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습지를 농지나 공업용지, 숲 등으로 바꿀 경우 온실가스 배출이나 흡수는 어떻게 달라질까? 습지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달라질까?
자연 습지를 농지나 숲 등으로 바꿀 경우 생태계가 완전히 바뀌는 만큼 그 지역에서 배출되거나 흡수하는 온실가스의 종류와 양은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농지나 숲으로 전환했던 습지를 다시 복원 할 경우에도 복원된 습지가 온실가스를 흡수하고 배출하는 형태는 자연 습지와는 또 다를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와 미국, 핀란드, 독일 등 세계 10여 개국 40명이 넘는 습지 관련 학자들이 인간 활동의 영향으로 줄어들거나 다른 용도로 개발되는 습지가 지구온난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조사했다.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최근호에 실렸다(Petrescu et al, 2015).
연구팀은 습지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북반구 한대지방과 온대지방에 있는 자연 습지와 농지나 숲으로 전환된 습지, 그리고 농지나 숲에서 다시 습지로 복원된 습지 등 모두 29개의 습지에서 흡수하고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결과 한대 지방에서 습지를 농지로 전환할 경우 100년 동안 평균적으로 대기는 습지 1제곱미터 당 0.1mJ(밀리줄)씩 열을 더 잡아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습지를 농지로 전환할 경우 평균적으로 메탄 배출량은 줄어들지만 상대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지구를 더 뜨겁게 한다는 것이다.
온대 지방의 경우도 습지를 농지로 전환할 경우 대기에서는 습지 1제곱미터 당 0.15mJ씩 열을 더 잡아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습지를 숲으로 바꾸는 경우에도 지구온난화를 가속화 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으로 봤을 때 습지를 농지나 숲으로 바꿀 경우 지구온난화 측면에서는 좋을 게 전혀 없다는 뜻이다.
습지의 역할은 매우 다양하다. 역할이 다양한 만큼 습지를 어느 측면에서 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가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개발 여부를 두고 얼마든지 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측면에서 볼 경우 습지를 다른 용도로 바꾸는 것보다는 자연 상태 그대로 두는 것이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길이다. 인간이 자연에 끼어들어 이렇게 저렇게 습지를 바꾸는 것이 당장은 득이 되고 좋아 보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지구온난화라는 재앙을 재촉하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 Ana Maria Roxana Petrescu et al, 2015 : The uncertain climate footprint of wetlands under human pressur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10.1073/pnas.1416267112
* 환경부, 2014: 토지피복 대분류 면적 변화. 통계로 본 국토와 자연 환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