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도(波浪島)
강 정 실
노인은 오래된 사진 위로 저벅저벅 걷다가, 당신을 쳐다본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잠들었던 오래된 기억이 하나씩 깨어난다, 숲으로 둘러싸인 언덕 위 착유장은 휴일과 국가공휴일에 관계없이 하루 두 차례 새벽 4시와 오후 2시에 착유한다, 착유가 끝난 젖소 350여 마리가 돌아간 장소, 임시대기실은 쇠똥이 지천에 깔려있었다,
초보실습생 때의 일이다, 초겨울 기억 속의 노인은 슬퍼 눈 꽉 감고 나무로 된 삽자루로 쇠똥 한 덩어리, 두 덩어리를 하수구에 찬찬히 계속 밀어 넣는다, 수돗물로 주위를 마무리해야 일과가 끝난다, 무엇보다 누런 냄새와 물컹거려 비위가 상해 일하기 고약한 일이다, 서녘하늘에 붉디붉은 하루의 태양이 드러누울 적 쇠똥들은 황금 덩어리로 보인다, 노인은 마음을 다잡고 최면을 건다, 이 일은 다른 실습장소보다 월급이 두 배가 많기에 경이롭게 보여 달라고, 황금은 뭘까, 인간의 욕망이다, 우주의 딜레마다, 분노와 열광의 바이러스다, 파랑도(波浪島) 같은 환상의 섬,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천금(千金) 덩어리다,
주변은 캄캄하다. 수돗물로 바닥까지 마무리하며 끝낸다, 기숙사로 돌아가려는 순간 등 뒤에서 살쾡이(?) 한 마리가 달려온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간이 콩알만 해진다, 후다닥 삽자루를 쥐고 뒤돌아 본다, 민첩하게 나를 쏘아 보며 달려오는 씨나라 까먹는 소리는 이파리에 달린 가지가 바람에 서러렁대며 굴러 온 것이다,
*샤,이,세~, 사,람, 잡,네,
시몬은 청유형 어미를 다섯 번 사용하며 밤이 오고 바람이 부는 곳, 낙엽 밟는 곳으로 가자고, 삼생(三生)이 왔다갔다하는 이곳 언덕 위 목장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견뎌냈다,
참아냈다,
그러나 참 슬펐다,
*똥 같네! 라는 독일 비속어. 43년 전, 독일의 한 유업회사에서 실험실, 요구르트, 일반우유, 치즈, 농장을 3개월마다 각 부서를 돌아가며 2년간 실습했었던 일화 중 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