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도

조회 수 85 추천 수 1 2024.01.25 11: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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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랑도(波浪島)

 

                                                                   강 정 실

 

  노인은 오래된 사진 위로 저벅저벅 걷다가, 당신을 쳐다본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잠들었던 오래된 기억이 하나씩 깨어난다숲으로 둘러싸인 언덕 위 착유장은 휴일과 국가공휴일에 관계없이 하루 두 차례 새벽 4시와 오후 2시에 착유한다, 착유가 끝난 젖소 350여 마리가 돌아간 장소, 임시대기실은 쇠똥이 지천에 깔려있었다,

  초보실습생 때의 일이다초겨울 기억 속의 노인은 슬퍼 눈 꽉 감고 나무로 된 삽자루로 쇠똥 한 덩어리, 두 덩어리를 하수구에 찬찬히 계속 밀어 넣는다, 수돗물로 주위를 마무리해야 일과가 끝난다, 무엇보다 누런 냄새와 물컹거려 비위가 상해 일하기 고약한 일이다, 서녘하늘에 붉디붉은 하루의 태양이 드러누울 적 쇠똥들은 황금 덩어리로 보인다, 노인은 마음을 다잡고 최면을 건다, 이 일은 다른 실습장소보다 월급이 두 배가 많기에 경이롭게 보여 달라고, 황금은 뭘까인간의 욕망이다우주의 딜레마다, 분노와 열광의 바이러스다, 파랑도(波浪島) 같은 환상의 섬,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천금(千金) 덩어리다,

  주변은 캄캄하다. 수돗물로 바닥까지 마무리하며 끝낸다, 기숙사로 돌아가려는 순간 등 뒤에서 살쾡이(?) 한 마리가 달려온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간이 콩알만 해진다, 후다닥 삽자루를 쥐고 뒤돌아 본다, 민첩하게 나를 쏘아 보며 달려오는 씨나라 까먹는 소리는 이파리에 달린 가지가 바람에 서러렁대며 굴러 온 것이다,

  *,,세~, ,, ,,

  시몬은 청유형 어미를 다섯 번 사용하며 밤이 오고 바람이 부는 곳, 낙엽 밟는 곳으로 가자고, 삼생(三生)이 왔다갔다하는 이곳 언덕 위 목장에,

   태양의 반대편 장소, 미곡창고 같았던 기숙사 침대에 누워 충혈된 눈을 감는다, 광활한 하늘 어디쯤 가족과 함께 밤새도록 걸었던 기억 속의 3개월간 착유장 생활은, 노인의 인생에서 가장 캄캄하고 오죽이 추웠던 시간,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견뎌냈다,

  참아냈다,

  그러나 참 슬펐다,

 

*똥 같네! 라는 독일 비속어. 43년 전독일의 한 유업회사에서 실험실, 요구르트, 일반우유, 치즈, 농장을 3개월마다 각 부서를 돌아가며 2년간 실습했었던 일화 중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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