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해평 윤씨 부인 한글 원정' 강독회 개최
"미망인이 그 자리예 목슘을 갈고 시부대 죽사온즉 설치할 길리 업난 고로 천고의 듣디 못하던 변을 성쥬합하의 알외나니 복원합하난 발게 살피사 설치하여 쥬시고 선영을 직키게 하와 쥬시면 죽어 디하의 도라가와도 원귀을 면할가 하압나이다."
1861년 경북 문경 호남면 우지동에 사는 해평 윤씨 부인이 원통한 사정을 관부에 아뢰기 위해 한글로 쓴 원정(原情)의 일부다.
'해평 윤씨 부인 한글 원정'으로 명명된 이 고문서는 윤씨 부인의 후손인 신우철 씨가 작년 12월 24일 국립한박물관에 기증해 세상에 공개됐다.
가로 122㎝, 세로 79.5㎝ 문서에 쓰인 반흘림체 한글 1천209자에는 윤씨 부인이 제기한 민원 내용이 담겼다.
윤씨 부인 원정을 현대어로 비교하며 읽어보는 강독회가 24일 오후 국립한글박물관 강의실에서 열렸다. 지난해 개관한 한글박물관이 한글 자료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김유범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원정에 나오는 문장을 다음과 같이 옮겼다.
"미망인이 그 자리에서 죽고 싶었으나 그렇게 되면 치욕을 씻을 길이 없게 되므로, 천고에 듣지 못하던 변고를 원님께 아뢰니 삼가 바라건대 원님께서는 밝게 살펴서 치욕을 씻어 주시고 선영을 지키게 하여 주시면 죽어서 지하에 돌아가도 원귀를 면할까 합니다."
그렇다면 윤씨 부인이 이렇게 억울하고 애통해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윤씨 부인이 작고한 시어머니를 시댁 선영에 안장하려 하는데, 상주에 사는 개성 고씨가 선영 일부를 취하려 산지기를 고용하고 거친 욕을 했다. 이에 윤씨 부인은 분통한 마음을 원정에 담아 문경현감에게 보냈던 것이다.
김 교수는 "당시 현감은 원정을 받으면 그에 대한 판결을 기록해 소송을 제기한 사람에게 돌려줬다"며 "윤씨 부인 원정에도 왼쪽에 한자를 이두로 적은 판결문인 뎨김(題音)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뎨김을 현대어로 풀면 "이 소장의 내용을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고씨 양반은 문건을 상주 관청에 이관하는 것이 마땅하되 우선 산지기 조가신(趙哥身)을 곧 붙잡아 올 일"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원정의 글씨체와 표기법, 언어상 특징이 오늘날과 다르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앞말과 이어 쓴 경우 '이'자가 '니'처럼 보이고 중성 'ㅏ'자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위아'(ㅏ)와 '아래아'(·) 표기에 통일된 규칙이 없는 점으로 미뤄 아래아가 더 이상 변별적 기능을 갖지 못했던 것 같다"며 "목적격 조사가 모두 '을'로만 돼 있고 군데군데 영남 방언이 엿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번 강독회를 기획한 서주연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한글 원정은 조선시대 약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공식 창구 역할을 했다"며 "윤씨 부인 원정은 일상 언어의 어투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국어사적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