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특별전
2016년 올해는 ‘병신(丙申)’년, 띠 동물로는 원숭이의 해이지만, 정작 우리 조상들 사이에서는 원숭이에 대한 대접이 썩 좋지 않았다. 꾀도 많고 재주도 좋지만, 심하게 까부는 데다 생긴 모습이 사람과 닮아 오히려 기피한 동물이었다. 아침에 원숭이 이야기를 하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한국과 달리 중국과 일본에서는 원숭이가 제 대접을 받았다. 한국에는 선사시대 이후 원숭이가 산 흔적이 없지만, 중국·일본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원숭이가 살았으니 그만큼 친근하게 여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국과 일본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원숭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조금씩 약해졌고, 전통미술품에서는 원숭이의 좋은 면이 부각되기도 했다.
다양한 유물, 자료를 통해 전통 삶 속에서 원숭이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는지 살필 수 있는 자리가 있다. 해마다 새해에 띠 동물을 주제로 한 특별전을 여는 국립민속박물관이 마련한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전이다.
조선 후기 그림 ‘안하이갑도’. 원숭이와 게는 출세를 상징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엉덩이 빨개진 설화 등 ‘게’와 잦은 인연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건 사과, 사과는….” 요즘도 아이들이 부르곤 하는 노래다. 조상들은 원숭이 엉덩이 색깔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천진기 민속박물관장의 설명이 재미있다. “게와 원숭이가 떡을 해 먹기로 했는데, 떡이 다 돼 먹으려고 하자, 원숭이가 나무 위로 채갔어요. 게가 아무리 사정을 해도 원숭이는 게를 놀리기만 했지요. 그렇게 까불다가 원숭이가 떡을 떨어뜨리자, 게는 얼른 떡을 주워 굴 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원숭이가 사정을 하는데, 게가 말을 듣겠습니까. 화가 난 원숭이가 엉덩이로 굴을 막고는 방귀를 뀌었답니다. 그때 게가 앞발로 원숭이 엉덩이를 물어뜯어 지금까지 원숭이 엉덩이는 털이 없고 빨갛다는 거예요.” 경망스럽고 까불기 좋아하는 원숭이의 속성이 이 이야기에서도 나타난다. 봉산탈춤이나 양주별산대 놀이에 나오는 원숭이도 이런 성격이다. 민속박물관 전시장에는 여러 점의 원숭이탈이 걸려있다. 하나같이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얼굴이다.
봉산탈춤에 쓰는 원숭이탈. 장난스럽게 웃고 있다.
새끼 끔찍이 여겨 ‘단장’의 고사 낳기도
원숭이는 모성애의 상징이기도 하다. 고려시대 작품인 ‘청자 모자원숭이모양연적’(국보 제270호)은 어미가 새끼 원숭이를 꼭 껴안은 모습이다. 새끼를 향한 어미의 깊은 모성애가 드러난다. 원숭이의 모성애는 창자가 끊어지는 ‘단장’의 고사를 낳았다. 옛날 중국에서 어떤 이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잡아 배에 싣고 가자, 어미가 백리를 쫓아왔다. 배가 강기슭에 닿자 어미도 곧장 배에 뛰어올랐지만 그대로 죽고 말았다. 어미 원숭이 배를 갈라보니 너무 애통해한 나머지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원숭이는 새끼 사랑이 애틋한 동물이다. 천진기 관장은 마다가스카르섬에 산다는 한 원숭이를 예로 들며 “이 원숭이 집단에서 새끼가 태어나면 온 무리가 크게 흥분해 서로 다투어 새끼를 안아주고 혀로 핥아주려 한다”고 설명했다.
원숭이 토우. 잡스런 것을 쫓기 위해 만든 ‘잡상’이다.
‘귀신 쫓는다’ 궁궐 지을 때 지붕 위에 원숭이 토우
조선 말기 화가 장승업이 그린 ‘송하고승도’에는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원숭이가 나타난다. 소나무 아래 노승이 앉아 있는데 그 앞에 꿇어앉은 원숭이가 두 팔을 내밀어 불경을 전한다. 중국 고대소설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에서 이런 이미지가 나왔다. 화과산 돌원숭이로 태어난 손오공은 삼장법사를 모시고 멀리 서천까지 가 불경을 구해오지 않았던가.
조상들은 궁궐을 지을 때 지붕 위에 원숭이 토우를 나란히 올려 장식했는데, 잡스러운 것을 막는다는 의미다. 손오공이 그랬듯이, 원숭이에게 귀신 쫓는 힘이 있다고 여긴 것이다. 강화도 전등사에는 지붕 네 귀퉁이 아래마다 원숭이 조각이 장식돼 있어 추녀를 받드는 형태를 띠고 있다. 원숭이와 불교의 관련성, 원숭이의 귀신 쫓는 힘과 연관된 것이다.
중국서 제후 의미하는 ‘후’자를 쓰며 출세 상징
한국에서는 원숭이를 가리킬 때 ‘원’자를 쓰지만, 중국에서는 제후를 뜻하는 ‘후’자를 쓴다. 원숭이가 높은 벼슬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그 영향을 볼 수 있다. 조선후기 그림 ‘안하이갑도’에는 원숭이와 함께 갈대를 쥔 게가 있다. 과거급제해 출세하라는 염원을 담은 그림이다. 게도 벼슬길에 오른다는 상징인데, 갑각류의 ‘갑’자가 과거에서 우수한 성적을 나타내는 ‘갑’자와 소리가 같기 때문이다. 갈대를 꼭 쥐고 있는 것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이다. 남들이 다 앞으로 걸어도 저만은 옆으로 걷는 게처럼, 벼슬 나가서 소신을 잃지 말라는 뜻도 담겨있다. 원숭이 엉덩이를 빨갛게 만든 ‘주범’인 게가 이런 인연으로도 엮여 있으니 특이하다.
이번 전시는 ‘여러 이름의 원숭이’ ‘십이지동물 원숭이’ ‘길상동물 원숭이’ 등의 주제로 구성됐다. 12간지에서 원숭이의 의미, 원숭이 관련 속담, 원숭이해에 일어난 주요 사건 같은 얘깃거리도 살필 수 있다. 다음달 2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