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비

조회 수 58 추천 수 0 2024.08.05 23:05:26

   안개비.jpg

 

 

                                              

                                              안개비

 

                                                                           

 

  안개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서서 길가 수은등에 작은 알맹이로 떨어지고 있는 새벽 안개비를 바라본다. 누군가가 부르기라도 하는 듯이, 나는 재킷을 걸치고 방문을 연다. 아무도 없는 방문 앞을 지나 습관처럼 새벽 일찍 하이랜드 산책길을 걷는다. 나의 발걸음은 건강 상태를 잘 알려주고 있다. 건강 상태에 따라 정상적인 발걸음으로 걷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가슴에 두 손을 얹고 느리게, 때로는 등 뒤로 두 손을 깍지 끼고 빠른 속도로 걷기도 한다. 오늘은 발걸음이 가볍지가 않아 천천히 걸으니 웬일인지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내 인생길에 안개비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지금 이 시간이 있지 않나 하는 감사의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주 작은 물방울로 이루어진 안개비 같은 미세한 은혜비를 맞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가슴 깊이 느끼고 있다.

  안개비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물방울들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뿌옇게 보이는 안개가 짙어 지면, 안개비를 형성해 가볍게 땅에 떨어진다. 가뭄이 심한 캘리포니아, 특히 몬터레이 지역은 바다에서 뿜어 오르는 물안개와 더불어 안개비가 많이 형성된다. 그래서인지 몬터레이는 일 년 내내 기후변화가 심하지 않아 휴양도시로 사람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상쾌한 아침 안개비를 맞으며 초록 바다에서 뽀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신비스런 자연의 무늬에 감탄사를 연발하곤 한다. 안개비는 빗방울의 입자가 아주 미세하여 오랫동안 내려도 땅이 물에 흠뻑 젖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안개비를 맞고 살아가는 식물들이 있다. 누가 구태여 돌보아 주지 않아도 하늘에서 내리는 아주 적은 양의 안개와 바닷가의 물안개로 생명을 유지하고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분홍색 꽃잔디는 몬터레이 명물이다. 안개비와 물안개로 긴긴 가뭄을 이겨내고, 봄이 되면 아름다운 분홍색 꽃을 피워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꽃잔디. 나도 안개비와 같은 은혜의 비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살아왔음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안개비를 맞으며 앞이 보일 듯 말 듯한 새벽길을 걸으니 문득, 눈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안갯속 같던 내 낯선 인생길이 연상된다. 나는 결혼 후 광야 같은 미주이민 길에 들어섰다. 내 이민생활은 가끔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기분이었고, 때로는 메마른 모래땅을 밟으며 성경에 나오는 헐몬산의 이슬 같은 은혜를 갈급하는 심정이기도 했었다.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낯 설은 생을 이어가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랬는데도 지금까지 호흡하면서 살아 있는 걸 보면 안개비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적셔 주셨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내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해 가시는 분은 오직 성령님 한 분뿐임을 믿음으로 알게 하신 은혜. 안개비 같은 하나님의 사랑은 나를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해 주심을 감사 기도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경험하면서 산 날도 있고, 기적적인 치유의 역사를 체험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난 악인에서 의인으로 옮겨지는 믿음이 흔들린다. 나는 왜 구원하심과 복음을 외치면서도 굳건한 반석 같은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이 세상에서는 마지막인 슬픈 이별을 사랑하는 사람과 했을 때는, 내 신앙은 뿌리까지 흔들렸었다. 제일 밑바닥에서 한없이 허위적 꺼렸을 때, 무게를 느끼지 않는 안개비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끔은 한없이 부족한 인간의 속성이 내면에서 꿈틀거릴 땐, 나는 속절없는 죄인이 되어 살아갈 때도 있다. 그래도 영 죽을 나대신 돌아가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잊지 않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 감사할 뿐이다.

  내가 늘 걷는 하이랜드 산책길은 스프링클러 장치가 되어 있어 규칙적으로 나무나 잔디 위에 안개 같은 물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다. 어떤 곳은 스프링클러의 혜택을 전연 받을 수 없는 곳도 있다. 그런 곳에서도 자세히 보면, 작은 야생 식물들이 안개나 안개비가 되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극소량의 수분을 흡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신비스럽게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고 계시는 창조주의 세심한 사랑에 놀라울 뿐이다. 극심한 가뭄에도 안개비로 생명을 유지해 온 식물들은 우기를 맞이하게 되면 싱싱한 녹색 생명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자연을 보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은 볼품없는 들풀도 사랑의 손길을 펼쳐 보살피는데 걸작품으로 창조해 주신 나를 돌보지 않으시겠는가, 하는 믿음이 내 생을 이끌고 있는 것 같다.

  믿음은 오랜 시간 뜸을 들이고 숙성시켜서 발효된 음식처럼 무한한 인내가 필요함을 느낀다. 자연의 순리대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갈 때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있음을 안개비를 맞으며 걷는 산책길에서 더욱더 느낀다. 미립자인 이슬방울이 많이 모이면 힘을 얻어 이슬비가 되는 자연법칙에 내 인생살이도 합류되는 기분이다. 인간인 나도 자연 일부분임을 가슴 깊이 느끼니 내 삶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의 크신 사랑에 놀라울 뿐이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햇빛이 비추면 사라져 버릴 안개비. 그래서 더욱더 애착이 가는 걸까. 새벽 안개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걸으니 내 온몸이 보이지 않는 물방울로 촉촉이 젖어 있다. 어느 사이에, 풀잎같이 연약한 나의 영혼도 소리 없이 내리는 안개비 같은 하나님의 선물인 은혜로 촉촉이 젖어 생의 의욕이 파릇파릇 살아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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