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추억을 품은 밥솥
정순옥
꿈과 추억을 품은 밥솥이 있다. 1978년 9월, 미주이민생활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와 동행하고 있는 밥솥이다. 하얀색 5인용 전기밥솥이다. 밥을 한 뒤에 그대로 두면 보온도 되였었다. 성능이 좋던 전기밥솥이 이제는 고장이 나서 전기로는 요리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래도 소중한 나의 삶의 동반자이기에, 전기 코드는 망가졌어도 스토브 위에 올려놓고 누룽지나 숭늉을 만들 때만 아니라 영양가 있는 각종 요리를 한다. 미주이민 생활의 꿈과 추억을 품은 밥솥은 내 생명을 살리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며 나와 인연을 맺고 있다. 이 세상 살아 있는 동안엔 동행하고 싶은 밥솥이다.
지금의 인천국제공항은 환송의 국제공항이다. 그러나 반세기 전의 김포국제공항은 이별의 국제공항이었다. 잘 가세요, 잘 있어요, 서로가 눈물로 기약 없는 이별을 아쉬워했었다. 나는 다시는 만날 수 없을 듯이 서럽게 눈물 흘리시며 바라보시던 하얀 두루마기에 중절모자를 쓰신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꼭 다시 무사히 돌아오라는 마지막 말씀이셨다. 지금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뒷모습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면서 목이 메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안 가본 곳에 대한 동경을 품고 낯선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를 처음 탄 나는 하늘 위로 비행기가 나르는 것도 신기했지만, 항상 눈을 들어 우러러보던 구름을 눈 아래로 볼 수 있는 것이 신기했었다. 모든 것들이 생소하기만 한 나는 옆자리에서 영어로 자유롭게 미국인과 대화하는 남편도 생소하게 보였다.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지의 디아스포라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마중 나오신 목사님과 친한 언니를 보자 반갑기도 했지만, 앞길에 대한 안도의 마음이 컸었다.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비행기를 타고 미국 본토에 들어오려면 하와이를 통해서 들어왔었다. 그러기에, 하와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탑승객들의 가방을 들고 이동하는 자동차로 국내공항으로 수속하기 위해 함께 뛰었다. 그때 우리 부부와 함께 가방을 들고서 하이힐을 신고 뛰었던 예쁜 여승무원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처음으로 입주한 아파트는 서민아파트로 비교적 새로운 빌딩 같았고 조용한 곳이었다. 그런데 밤이면 커다랗고 새까만 바퀴벌레들이 거실이나 부엌마루 바닥에 무수히 기어 다녀 소름 끼치도록 놀라게 했다. 이민 오기 전, 미국은 벌레도 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이 바퀴벌레를 말하나 보다! 라는 생각에 싱겁게 웃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항상 드나드는 계단 밑으로는 친절한 백인 노부부가 살고 있어 안심하고 살 수 있었다. 나는 미국에 도착해 처음으로 쇼핑하면서 제일 먼저 먹고 살 수 있는 밥을 하기 위해 밥솥을 샀었다. 이 밥솥을 새로 샀을 때 얼마나 좋던지 잠에서 깨어나면 만져보았던 그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이 밥솥이 날마다 내 생명의 양식을 제공해 주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여전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고슬고슬한 하얀 쌀밥을 짓고 맛있는 국이나 찌게 등 각종 음식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낯설고 물 선 타향살이였지만, 행복을 바라보며 같은 목표로 삶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동포들이 있어 살 만했다. 주일이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서로서로 이민생활의 어려운 마음들을 위로하고 보듬으면서 살아왔다.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며 살면서 야외로 나갈 때는 이 하얀 밥솥에 각종 밥을 해 가지고 나갔다. 동포들과 사랑의 꽃을 피우기 위한 친목회가 있을 때도 이 밥솥에 하얀 밥을 해 가지고 다니곤 했다. 나와 인연을 맺은 수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 밥솥으로 밥을 지어 만족하게 함께 먹으면서 즐겁게 지내지 않았나 싶다.
이 밥솥은 가족여행을 다닐 때도 언제나 함께 했었고, 내가 미국 간호사 시험을 치러 다닐 때도 함께 했었다.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한 수많은 추억 사진들을 볼 때마다 그 속에는 밥솥도 함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밥솥에서 만들어진 밥을 먹으며 이민생활에 대한 꿈도 가졌고 사람들과 서로서로 사랑하며 기쁨으로 사는 모습도 알았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방법도 터득했다. 이 밥솥이 있었기에 건강하게 살 수 있었고 인생살이 맛도 알 수 있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나는 날마다 꿈과 추억을 품은 밥솥과 살면서, 미주이민 1세로 부끄럼 없이 살기를 간구하며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 밥솥은 세상에서 내가 사는 날까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믿는다.
나는 이 밥솥이 나와 함께 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날까지 아끼고 사랑하며 사용할 것이다. 밥을 지은 후 뜸을 들이면서 가만히 밥솥을 보고 있으니, 아름다운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던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굴곡 많았던 이민생활이지만 이 밥솥이 있었기에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살 수 있었다. 이 오래된 밥솥은 나의 미주이민 생활의 역사요, 삶의 소리요,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하려는 마음이 서려 있다. 이 낡은 밥솥은 오늘도 행복한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나의 생명을 유지하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간 나는,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꿈과 추억을 품은 밥솥과 오랜 시간 동행하며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