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기
정순옥
으흠, 그 향기! 들국화와 소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각종 들꽃과 나무들의 냄새가 어우러져 풍기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향기다. 이른 아침에 산책하려고 옷을 입으려 하려다 한약냄새 비슷한, 그 독특한 향기가 내 옷에 배어 있음에 놀랐다.
아침저녁으로 걷는 산책길에서 늘 맡는 그 향기였다. 들꽃을 손으로 만지지도 않고 오솔길을 걷기만 했는데도 그 독특한 향기로운 냄새가 내 옷에서 나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깊이 느꼈다. 사람은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서 특이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는 것을….
나는 가능하면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산책한다. 의사가 건강을 위해서 강력히 권하기도 하지만, 정서적으로 나에게 필요함을 알기에 실천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산책할 준비를 한다. 안개비가 자주 내리는 곳이라서 가끔은 망설여질 때도 있지만,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가로수 나무 사이에 있는 수은등이 수줍게 인사하는 모습이 보인다.
몇 발자국 걸으면 누군가 새벽 일찍이 직장을 가기 위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듯, 커피냄새가 향기롭게 후각을 자극한다. 잔디를 깎았는지, 상처받은 곳에서 나는 상긋한 풀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장미꽃이 많은 집을 지나칠 때는 달콤한 장미꽃 향기가 신선한 아침공기를 타고 내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산책하면서 높은 하늘을 우러러보기도 하고 스치는 바람을 한 아름 안아보기도 하면, 모든 자연이 모두다 내 것이 되어 마음이 풍성해진다. 하이랜드 산책길에서 조금 벗어나 오솔길을 따라가면 철조망 문 안으로 들녘 같기도 한 야산이 있다는 걸 알았다. 금지구역으로 알았는데 주의가 조금 필요한 아주 좋은 산책로였다.
오래전엔 습지구역이었는지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뿐만 아니라 이름 모르는 나무들과 야생 꽃들이 계절의 변동이 심하지 않은 곳이라서 철모르고 핀다. 요즈음은 들국화, 싸리 꽃, 유채꽃이 노란 색깔로 야산을 물들이고 있다. 여러 가지 들꽃과 나무들과 바람 등이 어우러져 내는 자연의 향기는 정말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나는 소싯적에 사랑한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맡은 흙내음이 섞인 땀 냄새를 잊지 못한다. 그 냄새가 내가 걷는 산책길에서 되살아나 나의 감성을 아련한 향수로 이끌 때가 잦다. 나는 지금 백발이 되어가고 있지만, 마음은 새까만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뛰놀던 소녀 시절에 머물고 있을 때가 잦다. 나는 아름다운 부모님의 사랑의 향기를 품고 사는데 나의 후손들에게는 어떤 향기를 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향기는 좋은 냄새다. 안 좋은 냄새를 향기라 하지 않는다. 꽃이나 풀이나 향수를 말할 때, 향기롭다고 한다. 코로 맡아서 안 좋을 때는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전통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써온 단어들이 조화롭게 사용되고 있다. 구수한 밥냄새를 ‘밥냄새’라 하지 ‘밥 향기’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따라서 사람냄새를 ‘사람냄새’라 하지 ‘사람향기’라는 사람 또한 많지 않다. 엄마냄새, 아기냄새, 갯바위 냄새…향기나 냄새나 함께 사용한다. 안 좋은 냄새는 향기라 하지 않는다. 담배를 자주 피우는 사람 옆에 있으면 ‘담배냄새’가 나고,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 옆에 있으면 ‘술냄새’가 난다.
직업냄새도 있다.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냄새가 다르다. 학자들에게 풍기는 냄새, 어부들에게서 풍기는 냄새, 의료진들에게서 풍기는 냄새…. 향기는, 인간의 후각을 통해 인지되는 휘발성 화합물로 맡아서 기분이 좋아지는 물질이다. 그런데 향기는 꼭 후각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도 느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향기로움을 느끼게 하는 사람을 만날 때는 기분이 상쾌해지고 삶에 대한 의욕이 생겨서 좋다. 수많은 사람과 접촉하며 인생살이를 해 나가면서 어떤 사람은 향기로움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나는 그때마다 그런 사람이 되기에 부족한 나의 인격에 부끄럼을 느끼곤 한다.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향기를 내면서 살아야지~ 하는 마음은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늘 고민이다. 그래도 나는 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의 향기를 품어내는 사람이 되라는 신앙교육을 받으면서 살아오고 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노력으로만 되는 게 아님을 안다. 부족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나도 모르게 사랑의 향기를 풍기게 될 것이다.
나는 날마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신선한 향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호흡하면서 자연의 향기를 들이마시며 피부로 느끼면서 살고 있다. 자연의 향기를 맡으며 정서적으로 많은 위안을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다. 이름 모를 들풀 하나에도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어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향내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인생살이를 생각해 본다. 비록 작고 부족한 존재지만 이 세상에서 살 동안 사랑의 향기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눈엔 보이지 않지만, 자연은 나의 향기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향기는 육체인 세포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혼의 정서에도 날 것이다. 한 인간인, 나에게서는 어떤 향기를 자연에게 품어내고 있을까. 날마다 걷는 산책길에서 나는 생각한다. 자연은 신비로운 향기로 인간인 나를 기분 좋게 하는데, 나는 자연에게 어떤 향기로 보답하고 있나. 내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많이 가지면, 나에게서 은은한 사랑의 향기가 나지 않을까 싶다.
온전한 사랑의 향기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이 세상 모든 것들을 기분 좋게 하는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꿈을 안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