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눈 없는 어머니
이은상(李殷相)
김 군(金君)에게
김 군이 다녀간 어젯밤에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소. 김 군에게 보내는 이 편지(便紙)는 쓰고 싶으면서도 실상은 쓰고 싶지 않은 글이오. 왜냐 하면, 너무도 어리석은 일을 적어야 하기 때문에, 너무도 슬픈 사연(事緣)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꼭 써야만 한다는 의무감(義務感) 같은 것을 느끼었소. 그래서 이 붓을 들었소.
어젯밤 우리가 만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소.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르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소. 아, 거기서만 끝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소.
그대는 품 속에서 그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寫眞) 한 장을 꺼내어 내게 보여 주었소. 나는 그대의 어머니를 생전(生前)에 뵈온 일이 없었기에 반가이 그 사진을 받아들었소. 그런데, 그대의 가신 어머니는 한 눈을 상하신 분이었소. 그것을 본 순간(瞬間), 내 머리에는 ‘불행(不幸)’이란 말이 퍼뜩 지나갔소. 그와 동시에 나는 그대가 더욱 정다워짐을 느끼었소.
그러나, 뒤를 이어 주고 받은 그대와 나의 이야기. 김 군, 그대는 이 글을 통해서 어젯밤 우리가 나눈 대화(對話)를 한 번 되새겨 주오. 그대는 어느 화가(畵家)의 이름을 말하면서, 내가 그와 친하냐고 묻기에,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소.
"그럼 한 가지 청할 것이 있읍니다."
"무엇인가요?"
"이 사진(寫眞)을 가지고 내 어머니의 모습을 하나 그려 달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보수(報酬)는 상당(相當)하게 드리겠읍니다."
"내 힘껏 청해 보지요."
그림으로나마 어머니를 모시려는 그대의 착한 뜻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소. 그래서 나는 쾌히 약속(約束)을 했던 것이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온 그대의 말, 그대는 가장 부자연(不自然)스런 웃음과 어색한 표정(表情)으로 이렇게 말하였소.
"그런데 그림을 그릴 적에, 두 눈을 다 완전(完全)하게 그려 달라고 해 주십첼?"
김 군, 순간(瞬間) 내 눈앞은 캄캄해지고 내 가슴을 떨리었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소. 두 입술이 떨어지질 않았소. 겨우 입을 열어 내가 한 말은 돌아가 달라는 한 마디뿐이었소.
나는 그대를 보내고, 괘씸하고 분(憤)한 생각에 가슴을 진정(鎭靜)할 수가 없었소. 그대가 평소(平素)에 어머니의 눈 때문에 얼마나 한스러웠기에 그림에서라도 온전히 그려 보려 했을까? 이렇게 생각하려고도 해 보았소. 그러나, 그대의 품 속에 들어 있는, 그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寫?, 한 눈 상하신 그 어머니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 원망(怨望)의 눈물을 흘리시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소.
김 군,
그 즉석(卽席)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그대는 나의 열리지 않던 입에서 분명(分明)히 듣고 간 것이 있었을 것이오. 말 없던 나의 입에서 듣고 간 것이 없소? 만일 없다면, 이제라도 한 마디 들어 주오. 그러나, 내 말을 듣기 전에, 그대는 먼저 그대의 품 속에서 그대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 자세히 들여다보오. 상하신 한쪽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자세히 보오. 눈물 가진 눈으로 보오.
김 군,
한 눈을 상하신 까닭으로 평생(平生)을 학대(虐待) 속에 사셨을지도 모를 그 어머니……. 애닯소. 한 눈 없이 그대를 낳고 기르고, 그대를 위하여 애태우시다가 이제는 저 차가운 땅 속에 드셨거늘, 자식(子息)인 그대마저 어찌 차마 그대 어머니의 상하신 한 눈을 업신여겨 저버린단 말이오? 그대에게 한 눈 가지신 어머니는 계셨어도 두 눈 가지신 어머니는 없었소. 온 세상이 다 불구(不具)라 비웃는대도 그대에겐 그 분보다 더 고우신 분이 또 누구이겠소? 한 눈이 아니라 두 눈이 다 없을지라도 내 어머닌 내 어머니요, 내가 다른 이의 아들이 될 수는 없는 법이오.
김 군,
그림으로 그려 어머니를 모시려 한 착한 김 군, 그런 김 군이 어떻게 두 눈 가진 여인(女人)을 그려 걸고 어머니로 섬기려 했단 말이오? 그대는 지금 곧 한 눈 없는 어머니의 영원(永遠)한 사랑의 품속으로 돌아가오. 그리하여, 평생 눈물 괴었던 그 상하신 눈에 다시는 더 눈물이 괴지 않도록 하오.
이만 줄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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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상:
호: 노산 1903 ---1982 시조작가, 사학자 가곡 '고향생각', '가고파', '성불사의 밤' 등의 작사자
저서(작품) 혈조, 테니슨의 사세시, 새타령, 조선의 꽃, 남산에 올라, 황진이의 일생과 예술, 고향생각, ...
작품집에 노산 문선, 노산 시문선, 노산 시조선집, 무상, 조선사화집등 100여권.
대표관직(경력)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사
1918년 아버지가 설립한 마산 창신학교 고등과 졸업, 1923년 연희전문학교 문과 수업하다 1925 - 1927년에와세다 대학에서 청강하였다. 1931년 1932년 이화여전 교수를 비롯하여, 동아일보 기자, 신가정 편집인, 조선일보사 출판국 주간 등 역임. ... 사학가이자 수필가가 이기도 한 그는 해박한 역사적 지식과 유려한 문장으로 국토순례기행문과 선열의 전기를 많이 써서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여기서 저는 저자 이은상님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김군이 두 눈을 가진 어머니를 그려달라고 부탁했을 때, 김군의 의도와 저자의 생각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저자가 두 눈을 가진 어머니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던 김군의 마음을 외 눈을 가진 어머니의 모습이 평소에 얼마나" 한스럽게" 여겼기에 그런 말을 하느냐며 돌아가달라고 했겠지요. 이 글에서 김군의 마음을 짐작만 했을 뿐 직접 대화는 하지 않았기에 '어쩌면 김군의 의도가 저자와는 다를 수도 있을 터 인데, ..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물론, 어머니나 그 누구 사랑하는 사람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함에는 이의가 없지만, 김군의 의도를 혹시 곡해하신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평소 어머니 살아생전에 온전한 눈을 못가져봤으니, 이제라도 한 번 온전한 두 눈을 가지시라고 하고싶었던 것은 아닌지...라구요. 그냥 짐작만 하시지 말고 대화로 소통을 하셨더라면 어떤 생각이였을까를 생각해봤습니다. 편지를 보내셨으니 나중에라도 소통은 되었을 듯 합니다. 그나저나 작가가 고인이 되셨으니 확인할 길은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