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 종전 3년 뒤 화원이 그린 2m 크기의 국보급 문화재…
14대 宗婦, 한석봉 쓴 공신녹권 등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키로


  
  조선 선조·광해군 때의 학자이자 명신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 1618)의 전신 초상화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조선 중기 최고 수준의 화원이 그린 작품으로, 국보급 문화재로 평가된다. 이항복의 초상화는 서울대박물관이 소장한 반신상이 있지만, 후손이 보관하고 있던 전신상은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었다. 이 초상화는 이항복의 임진왜란 공신녹권(공신을 책봉하고 공훈을 적어 수훈자에게 준 문서) 등 다른 유물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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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1년에 그려진 백사 이항복의 전신 초상화.




1601년에 그려진 백사 이항복의 전신 초상화. 이항복의 후손이 27일 공개했다. 
 
  이항복의 14대 종부인 조병희(72)씨는 27일 서울 종로구 한국미술발전연구소에서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들과 만나 가문에 전해 내려오던 백사의 공신(功臣) 초상의 대형 사진을 공개하고 기증 의사를 밝혔다. 이 자리에는 원로 미술사학자인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가 배석했다.

  조씨가 조심스럽게 말아 가져 온 사진을 펼치자 참석자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건 정말 처음 보는 그림인데…." "훼손이 거의 없네요!" 원본 그림의 길이가 2m에 달하는 이항복의 전신 초상화는 임진왜란 종전 3년 뒤인 1601년(선조 34년) 작품. 공신으로 책봉된 직후 관복을 입고 의자에 앉은 백사의 모습을 그렸다. 눈썹과 수염을 터럭 한 올까지 세밀하게 묘사했고, 흉배(관복의 가슴에 붙인 사각형 표장)의 공작과 모란은 그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청색과 홍색의 색채가 생생했다. 바닥의 채전(彩氈·카펫) 문양까지도 정교하게 그렸다.

  그림의 오른쪽 상단엔 '유명(有明) 조선국(朝鮮國) 영의정(領議政)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 증시(贈諡·시호를 내림) 문충공(文忠公) 백사(白沙) 이선생(李先生) 휘(諱·이름) 항복(恒福) 화상(畵像)'이라 써서 초상화의 주인공이 이항복임을 분명히 했다. 정양모 전 관장은 "이렇게 누구라고 적은 조선시대 초상화는 드물다"고 했다. 안휘준 교수는 "세부까지도 정성을 들인 묘사와 표현에서 기존에 알려진 반신상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라며 "조선 중기의 초상화를 대표할 수 있는 최고의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이수미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은 "기법이 매우 뛰어난 공신 초상화로, 보존 상태도 좋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종부 조씨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 의사를 밝힌 유물은 이 초상화와 또 다른 이항복의 전신상 1점, 이항복의 증손인 이세필(1642~1718)의 반신 초상화, 이항복을 임진왜란 극복의 일등공신으로 봉한 석봉 한호 글씨의 공신녹권, 이항복이 53세 때 손자를 위해 직접 쓰고 한글로 토를 단 '천자문' 등이다.

  이항복의 전신 초상화는 경기 포천시 가산면 묘소 앞에 있는 사당에 걸려 있었으며, 1940년대 한 차례 도난당했다 되찾은 적도 있었다. 2008년부터는 사당에 사진을 대신 걸어 놓고 원본은 후손이 보관하고 있었다. 14대 종손 이상욱씨는 포천에 유물을 수장할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으나 2015년 작고했다. 15대 종손 이근형(45)씨는 "제대로 보존하려면 국립중앙박물관 기증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종부 조씨는 "시부모님이 6·25 피란길에도 소중히 모셨던 초상화인데… 내 대(代)에서 기증하게 돼 안타깝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유병하 학예연구실장은 "소장자의 뜻대로 기증될 수 있도록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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