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청자뿐일까…해저유물 미스테리

조회 수 4239 추천 수 1 2016.04.14 19:40:08

 

 

2012년 11월 오리형, 기린형 향로 뚜껑 등 국보급 고려청자와 함께 옛 명랑대첩 해역(진도 오류리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이 일반에 공개됐다. 총통은 수중발굴을 통해 찾아낸 최초의 이순신과 임진왜란 관련 유물이어서 모두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우리나라 해양 발굴 36년 역사상 최초의 조선시대 유물이라는 점에서도 총통 발굴의 의미는 컸다. 지금까지 발견된 해저 유물은 사실상 청자 등 고려의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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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2만2000점에 달하는 유물을 인양한 신안 방축리를 시작으로 현재 완료됐거나 진행 중인 해저 발굴 현장은 모두 21곳이다. 이 가운데 18개 지역에서 고려청자와 고려선박이 출토됐다. 태안반도(발굴연도 1981~1987년), 완도 어두리(1983~1984년), 무안 도리포(1995~1996년), 목포 달리포(1995년), 군산 비안도(2002~2003년), 군산 십이동파도(2003~2004년), 보령 원산도(2004~2005년), 신안 안좌도(2005년), 군산 야미도(2006~2009년), 안산 대부도(2006년), 태안 대섬 (2007~2008년), 태안 마도1호(2008~2010년), 태안 마도2호(2009~2010년), 태안 원안(2010년), 태안 마도3호(2011년), 태안 마도해역(2012년), 인천 섬업벌(2012년), 진도 오류리(2012년)를 말한다.

시대는 고려문화의 최대 융성기인 12~14세기로 분석됐다. 신안 방축리(발굴연도 1976~1984년), 제주 신창리(1980년ㆍ1983년ㆍ1996년), 진도 벽파리(1991~1992년) 등 3곳은 중국무역선 등 중국 관련 유물이 나왔다. 비록 중국 유물이라고는 하나 시기적으로는 마찬가지로 고려 후기다.

신라와 백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보다 근대인 조선보다 고려시대 유물이 바다 밑에서 나오는 이유는 뭘까. 학계는 해양강국이었던 고려시대에는 해로를 이용한 운송이 일상사여서 그만큼 침몰 선박도 많았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든다. 안정복의 동사강목은 "고려 공양왕 3년(1391년)에 조운선이 안흥량(태안 앞바다)에서 가라앉는 사고가 빈발해 별도 수로를 파는 공사를 했지만 돌이 밑바닥에 깔렸고 조수가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파내는 대로 메워져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조선에 들면 조운(漕運)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달라지게 된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고려는 서남해의 수로 연변에 13개 조창(漕倉)을 설치해 각 지방에서 조세로 거둔 미곡, 특산품 등 현물을 모아 보관하고 이를 해로를 통해 개경 인근의 벽란도로 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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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고려의 조운시스템은 그러나 14세기 중반에 오면 일대 위기에 처하게 된다. 12세기 말경 일본 최초의 무사정권인 가마쿠라(鎌倉)막부가 성립된 이래 일본에서 전란과 기근이 끊이지 않는다. 이 시기 왜구가 서남해안에 본격적으로 출몰하기 시작했다. 고려사절요에서는 충정왕 2년(1350년) 음력 2월에 왜가 고성ㆍ죽림ㆍ거제 등에서 노략질했는데 왜구가 일어난 것이 이때부터 시작된다고 밝히고 있다.

귀중품을 실은 조운선이 왜구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었지만 무신정권ㆍ원제국 지배로 국력이 약해질대로 약해진 고려 조정은 제대로 손을 쓰지 못했다. 고려사절요는 충정왕 2년 4월에 왜적의 배 100여 척이 순천부에 침입해 약탈하고 남원ㆍ구례ㆍ영광ㆍ장흥부에서 공물을 실은 조운선을 노략질했다고 적고 있다. 동사강목도 공민왕 3년(1354년) 왜구가 해마다 침략하기를 그치지 않았는데 이때에 와서 전라도의 조운선 40여 척을 약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종민 충북대 교수는 "여말 40년 동안 무려 500차례에 달하는 왜구의 침입이 있었고 이로 인해 국가의 조운시스템이 붕괴되다시피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우리민족이 당한 전체 외침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실제 우왕 재위 14년 동안에만 378회나 왜구가 쳐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조선을 침략했던 왜구에 조선인도 포함됐다는 얘기가 많았다. 일본 교과서에도 그런 내용이 실렸다. 그러나 2010년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 보고서는 "이는 사실이 아니며 왜구는 대마도와 일본 본토 해안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었다"고 명확히 정의했다.새롭게 국가를 이룬 조선왕조는 국가존립을 뒤흔들었던 왜구에 대한 대대적 토벌에 나섰다. 세종대왕이 이종무로 하여금 쓰시마를 정벌하게 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와 동시에 해로 위주의 조운시스템을 육로로 바꾸게 된다.

이종민 교수는 "공납은 국가를 지탱하는 근간인데 고려말 공납체계가 흔들리면서 국가도 위태로워 졌다"며 "조선은 약탈, 침몰 사고가 빈발하는 해로 대신 육로를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상당수 공물은 육로에 의존했지만 중량이 많이 나가는 쌀, 콩 등 곡류는 조선시대에도 배를 이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해양문화재연구소측은 "조선시대에도 풍랑에 침몰한 조운선이 있었지만 유실되기 쉬운 곡물만 실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궁중이나 귀족이 사용하는 고급 도자기 생산지도 남해안 일대에서 경기도로 옮겨온다.

 

 고려 때는 강진(초기)ㆍ부안(후기)에 설치된 자기소에서 생산한 도자기를 해상으로 운송하는 구조였지만 조선에 들면 궁에서 쓰는 도자기의 경우 경기도 광주관요에서 조달했다.

그렇더라도 남해에서 해전이 빈번했던 임진왜란의 흔적들이 나오지 않는 점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연구소가 최근 2년간 거북선을 포함해 120여 척의 우리 전선이 불타거나 부서지는 피해를 입은 칠천량 전투 해역을 탐사했으나 성과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해저 유물의 제작 시기가 특정시기에만 집중되는 것도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발굴영역을 지속적을 확대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조선시대는 물론 고려 이전의 신라나 백제유물도 건져올리게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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