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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경남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정호마을. 2014년 3월 9일 전국에서 유성이 떨어지는 모습이 관측된 다음날인 10일 이 마을 시설하우스에 첫 번째 진주 운석(9.4㎏)이 발견된 곳이다.
마을회관 모여 있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요즘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느냐는 질문에 일제히 “그게 언제 적 일이냐”며 “발견 된 뒤 2~3개월 바짝 외지인들이 많이 왔지 발길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발견 당시 국제 운석 헌터들과 관광객이 야산과 들판에 몰려 북새통을 이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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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마을 앞 제1호 진주 운석 발견지인 시설하우스 내를 찾아갔다. 낙석 지점에는 운석 사진과 함께 진주시장 이름으로 ‘이곳은 진주운석이 첫 번째 발견된 곳이다. 소중한 유산적 자료이므로 다 같이 보존에 협조바란다’고 적혀 있었다.
제2호 미천면 오방리 중촌마을 밭(3월12일 발견·무게 4.1㎏)과 제3호 오방리 밭(3월16일·420㎏), 제4호 집현면 덕오리 도로변 개울(3월17일·20.9㎏) 등 진주 운석 발견 지점에도 똑같은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일부 지점에는 누군가 정화수를 떠놓고 소원을 빈 흔적도 볼 수 있었다.
진주운석은 태양계 나이인 45억 6700만 년 전에 생성된 낙하운석(오디너리 콘드라이트 H5)이라고 판명됐다. 진주운석은 1943년 낙하지점이 확인된 국내 첫 운석인 전남 고흥군 두원면 두원 원석에 이어 71년만에 국내 두 번째로 4개가 무더기로 발견된 곳이다.
특히 해방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으로부터 1999년 한일정상회담 당시 영구임대 형식으로 반환된 고흥 ‘두원 운석’과는 달리 국내 소유물이라는 데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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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진주 운석 첫 발견지가 하천정비사업지역(길이 3.17㎞)으로 편입돼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경남도는 152억원을 들여 2018년 3월 완공을 목표로 진주 첫 운석 발견지 등을 하천정비를 할 계획으로 현재 보상단계에 있다. 발견자 강모씨(59)는 추후 첫 발견지를 체험학습장 활용 등을 구상하고 있지만 이미 하천정비 설계가 완료된데다 문화재 전수조사 등을 마친 상태라 손 쓸 수 없다. 강씨가 토지 보상금을 받으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고흥 ‘두원 운석’ 낙하지점에는 안내판과 조형물 운석(무게 2.117㎏ 실물의 2.5배 크기)을 설치해 놓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좌용수 경상대 지질학과 교수는 “역사적 가치 등 문화재적 보존가치가 있는지 종합적으로 검토를 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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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외면 속에서 진주 운석의 보존사업과 관광화사업도 모두 멈춰버렸다. 정부는 연구와 전시를 목적으로 매입하려 했지만 소유주와의 인식차로 그해 2차례의 협상 이후에는 단 한차례의 진척이 없었다. 일부 언론들이 ‘로또’라며 터무니없는 가격을 보도하는 바람에 정부와 소주자들간의 갈등을 부추겼다. 진주시도 운석 둘레길 조성 등 관광자원화 계획을 세웠지만 모두 중단된 상태이다. 진주시는 시청 로비에 운석 전시, 낙하지점 둘레길 조성, 익룡 화석지 등·새 발자국 화석지 연계해 과학 테마 관광코스로 개발한다는 구상도 했다. 1947년 미확인비행물체(UFO) 잔해 논란으로 작은 시골마을이던 미국 뉴멕시코 주 ‘로스웰’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사례를 참고해 ‘운석 도시 진주’를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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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주 운석들은 발견자들 개인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밀봉 상태로 은행금고·땅속 등 제3의 장소나 집에 보관해 놓고 있다. 소유자 중에는 정부와 더는 협상을 하지 않고 ‘가보’로 간직하려는 이들도 있다. 운석학계는 산화·풍화 작용 등 잘 못된 보관으로 운석이 변질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운석신고센터장 이승렬 박사는 “정부가 진주 운석을 모니터링 하는 등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며 “운석 상태가 가장 우려되지만 소유자와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