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남서쪽에 있는 이스터 섬(현지어 라파 누이)은 거대 석상 모아이에 관한 미스터리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인류학 등 학계에서는 모아이의 존재보다는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던 이스터 섬 주민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 더 주목해야 할 ‘미스터리’라고 보고 있다.
그간 학계에서는 주민들이 환경을 무분별하게 파괴해 결국 쇠퇴의 길을 걸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최근 이를 부정하는 고고학계의 발견이 나와 주목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에 따르면 고고학자인 칼 리포와 테리 헌트는 이스터 섬에서 수집한 마타아(mata'a)라는 도구가 기존에 알려졌던 용도인 ‘무기’가 아니라 농경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내용을 ‘고대’(antiquity)라는 잡지를 통해 발표했다. 화살촉과 같이 생긴 세모모양의 흑요석을 막대기 끝에 끼운 형태의 마타아는 이스터 섬 원주민들이 서로 대규모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증거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칼 리포 등은 마타아의 용도를 연구한 끝에 이 도구가 전쟁과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그간 학계에서는 오세아니아 동쪽 해역에 있는 섬들(폴리네시아)에서 건너온 이스터 섬 원주민들의 문명이 18세기 초에 갑자기 붕괴된 이유와 관련해 공방이 이어졌다. 실제 원주민들은 대규모 인구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발달된 농업 기술을 갖고 있었고, 모아이 석상을 만들고 옮길 수 있는 건축술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네덜란드 탐험가인 로게벤이 1722년 도착할 무렵 인구가 급작스럽게 줄어들며 문명의 붕괴를 겪었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제러드 다이아몬드 등의 학자들은 ‘자연’과 ‘자살’을 합친 조어인 ‘에코사이드’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기원 후 1000년 이전에 이스터 섬으로 건너온 원주민들이 점점 번성해 인구가 늘어났는데, 식량 생산을 위해 이들이 무분별하게 나무를 자르고 각종 자원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서 결국 원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고갈됐고,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면서 결국 주민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칼 리포 등은 이를 반박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기존의 학설이 틀렸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이스터 섬 원주민들의 수는 전통적인 학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많지 않았고, 유럽 탐험가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붕괴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원주민들이 유럽인들과 접촉하면서 각종 병에 걸리게 돼 큰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원주민들이 서로 학살을 했다는 증거라고 제시됐던 마타아는 살인 도구로 쓰이기엔 부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즉, 끝이 너무 뭉툭하고 모양이 제각각인데다 발견된 곳이 주로 농작물을 경작하는 곳이기 때문에 농경 도구로 보는 게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스터 섬 원주민들의 문명이 갑자기 사라진 배경을 밝히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이 본래부터 악한지 혹은 협조적인지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CSM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