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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가 마지막 작품을 그린 밀밭으로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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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베르 쉬르 오와즈 마을 가는 방법 | | | |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기차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파리 북역이나 생라자르역에서 기차를 탑니다. 생라자르역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반드시 풍투아즈역에 내려 기차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는 기차가 퐁투아즈역을 경유하는지 또는 퐁투아즈역이 종착역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 정차하는 역명이 전광판에 나타납니다. 'Pontoise'라는 글을 확인하고 타시면 됩니다. 잘 모르시면 인포메이션에 가서 '오베르 쉬르 오와즈'에 간다고 몇 시에 몇 번 플랫폼으로 가면 되느냐고 물어보시면 됩니다.
퐁투아즈 역에 내리면 퐁투아즈역과 파리 북쪽을 다니는 열차(우리나라 통근 열차 비슷한)가 정차하는 곳이 한쪽 편에 있습니다. 잘 모르시면 역사무소에 가서 ‘오베르 쉬르 오와즈’라고 이야기 하면 몇 번 플랫폼으로 가라고 이야기 해 줍니다. 정차할 때 역명을 잘 확인하시고 'Auvers-Sur Oise' 역에 내리시면 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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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파리 생라자르(Saint-Lazare)역에 갔다. 파리 근교에서 출근하는 시민들로 북적인다. 일단 파리 북쪽 퐁투아즈(Pontoise)역까지 가서 기차를 갈아타고 오베르 쉬르 오와즈(Auvers-Sur Oise)로 가야 한다.
많은 열차가 들어오고 나가는 곳에서 퐁투아즈역까지 가는 열차를 찾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역무원에게 퐁투아즈 가는 열차를 물어보니 자기네들끼리 무어라 주고받고는 잘 모른다고 한다. '대략 난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모르면 물어보는 수밖에. 내가 영어를 잘 못하다 보니 생각나는 대로 기본 영어로만 헤집고 다녔다. 겨우 영어 사용 인포메이션을 찾았다. 오베르 마을로 간다고 하니 컴퓨터로 검색한 뒤 퐁투아즈까지 가는 가장 빠른 출발 시각과 플랫폼 번호를 적어 준다. 영어 겁내지 마라! 중학교 수준에다 전자사전 하나면 다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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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생라자르 역, 퐁투아즈 역, 풍투아즈역의 한쪽 편에 정차하고 있는 오베르 가는 열차, 오베르 쉬르 오와즈 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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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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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 쉬르 오와즈역에 내렸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온 기분이다. 100여년 전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고흐는 이 작은 마을에서 화가들을 후원해 온 닥터 가세를 만나 심신의 도움을 얻으며 그의 마지막 70여일을 보냈고 80여 작품을 오베르에서 그렸다. 마치 삶의 마지막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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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라부 하숙집, 식당 벽에 고흐가 하숙할 당시 사진, 고흐의 다락방, 1층 식당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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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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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 역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면 그가 머물던 라부 하숙집이 나온다. 하숙집은 식당 겸 박물관이 되어 있었다. 제일 먼저 고흐가 숨을 거둔 다락방으로 향했다. 좁은 계단을 삐걱거리며 올라갔다. 정말 '작은 방'이다. 침대 하나, 의자 하나, 세면대 하나, 지붕에 난 창문 하나.
고흐에 관한 자료를 보여주는 영사실에 앉아 고흐의 삶을 보았다. 그런데 자막이 프랑스어, 영어, 일본어, 세 가지로 나오고 있었다. 파리에서 웬만한 곳에는 일본어 가이드가 있는 것을 보았지만 이 작은 시골마을까지도 하는 생각에 조금 배가 아팠다.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와 그가 늘 앉았던 테이블을 보았다. 영원히 그를 기리고자 판자로 고정을 시켜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오늘은 주방 공사 때문에 식당이 영업을 하지 않았다. 밖에서 안을 기웃거려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바닥의 무늬는 그대로인 것 같고 식당 벽에는 그 당시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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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비니의 정원 입구. 현재 사람이 살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고흐 작품 <도비니의 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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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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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베르 시청은 'HOTEL DE VILLE' 라는 표지판을 달고 있다. 고흐 작품 <오베르 시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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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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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을에 고흐의 그림이 걸려 있다. 곳곳이 그림의 소재이니 그런가 보다. 라부 하숙집 맞은편에는 그가 그렸던 오베르 시청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그림과 비교하니 자동차가 주차된 것만 빼면 똑같다. 고흐는 강렬한 색채와 격렬한 터치로 빠르게 그렸지만 매우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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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 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고흐 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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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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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의 고흐 공원에서 간단한 샌드위치를 먹었다. 야위어 흔들리는 듯한 모습의 고흐가 캔버스를 등에 메고 서 있었다. 고흐가 화구를 메고 돌아다니듯 우리는 골목길을 기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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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베르 교회 뒷모습과 고흐 작품 <오베르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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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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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을 지나 오베르 교회까지 왔다. 고흐는 왜 교회 뒤쪽을 그렸을까? 두 갈래 오솔길 가운데 교회가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 의문은 사라졌다. 오래되고 허물어져가는 모습에서 묘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냥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어떤 젊은이가 똑같은 구도로 교회를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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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에서 밀밭으로 올라가는 작은 오솔길. 화구를 메고 수없이 오르내렸을 것을 상상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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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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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고흐 묘지 입구. 묘지에서 만난 할머니, 소박한 고흐 묘지 (가운데 화초로 덮인 곳), 고흐와 동생 테오의 묘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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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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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옆으로 난 좁은 오솔길이 보인다. 화구를 메고 수없이 오르내렸을 고흐를 생각하며 조금 더 올라가니 동네 묘지가 나온다. 이곳에 고흐가 잠들어 있다. 안타깝게도 6개월 후 동생 테오도르도 세상을 떠나 나란히 묻혔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프랑스 오베르에 잠든 두 형제를 추모하러 우리는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해바라기를 준비했으면 좋았을 터인데 그러지 못해 들꽃을 놓았다. 무덤 위 가득한 화초는 닥터 가세의 아들이 심은 것이라 했다.
고흐가 묻혀 있는 마을묘지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었다. 새로 만든 듯한 무덤에 한 할머니께서 물통을 가져다가 깨끗이 닦고는 화분을 놓고 손질하고 있었다. 옛 구역에는 대리석이 낡거나 이끼도 끼었고 새 구역은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사진, 이름, 생몰년도, 십자가, 꽃. 누군가는 젊은 나이로 갔고 누군가는 오래 살았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이었고 누군가를 사랑하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곳에 잠든 빈센트는 원하던 안식을 얻었을까?
무엇이 삶이고 무엇이 예술일까?
그림은 그에게 구원이었을까 고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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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의 마지막 작품만이 이곳을 설명해 주고 있다. 고흐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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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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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를 나와 마을 뒤 밀밭으로 향했다. 조금 걷자 넓은 들판이 나왔다. 나지막한 지평선이 아른거리고 길은 이리저리 뻗어 있었다. 까마귀도 구름도 없는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37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가 마지막 열정으로 붓을 들었던 밀밭인데 지금은 때가 아닌지 밀은 보이지 않았다. 넓은 지평선이 상쾌한 바람과 어울려 흔들리고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올바른 생각을 지키기 위해 당신이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 돈 맥클린의 노래 'Vincent(빈센트)' 가사 중에서 시대를 앞서간 천재는 죽어서도 세상의 모든 이에게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고 외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