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
‘쩍벌남’. 버스나 지하철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아 옆자리 승객을 짜증나게 하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지난 8월 옥스퍼드 온라인 사전은 ‘쩍벌남’(Manspreading)을 포함해 1000여개의 신조어를 추가 등재했다.
새로 온라인 사전에 등재한 단어에는 배가 고파 화가 난다는 뜻의 '행그리'(hungry+angry), OK를 대충 발음하는 '음케이'(Mkay), 남성 친구를 뜻하는 용어 '브러'(Bruh), 그리스와 영국의 유로존 이탈을 뜻하는 '그렉시트(Grexit)'와 '브렉시트(Brexit)'도 포함됐다.
-'신조어' /자료사진
◆신조어에는 ‘사회적 소수자의 응전’이 담겨있다
언어는 사회를 반영한다. 예컨대 임진왜란 이후 우리말에는 된소리가 강해졌다.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언어도 더 거칠고 적극적으로 변하는 현상이 반영된 셈이다. 사회 계층에 따라 언어 쓰임이 다르다는 것 역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신조어의 경우 단순히 사회를 반영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언어학자들은 신조어 속에 “기존 권력의 의지가 반영되기도 하지만, 소수자의 응전도 있다”고 말한다.
구어의 경우 자신들에게 유리한 의미로 해석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반해 신조어는 누군가 생소한 무엇인가를 만들어 던져 놓으면, 먹이를 향해 모이는 잉어 떼처럼 이해 당사자와 관심 있는 자들이 몰려드는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올해 유행한 ‘헬조선’과 ‘금수저’ ‘흙수저’ ‘수저계급론’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의 고위 공직자 자녀들이 ‘낙하산’ 인사로 채용될 때, 서민 계급의 자녀들은 ‘수저계급론’을 얘기했다. 단군 이래 최악의 청년실업과 결혼을 해도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아니 결혼조차 포기한 젊은 세대들은 한국을 ‘헬조선’이라 조롱하기도 했다.
신조어 속에는 또한 ‘권력의 이동이나 조정’이 담기기도 한다. 소설가이기도 한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김다은 교수는 그의 저서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 현상>에서 “신조어의 생산자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남성권력, 예술권력, 돈 권력, 상술권력, 고용 권력 등이 있다”고 말한다.
가령, 2006년에 유행한 ‘개똥녀’는 남성 권력뿐만 아니라 디지털 권력이 합쳐져 여성을 비하하고 조롱하던 신조어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신조어는 올해에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카페 등지에서 시끄러운 자녀를 내버려두는 엄마’를 뜻하는 ‘맘충’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과거의 신조어 생산자는 주로 기자, 정치인, 지식인, 연예인 등 이른바 ‘공신력’이 있는 사람들이나 기관이었다. 이때 신조어의 생산과 소비는 그 주체와 객체 구분이 쉬웠으며, 위계적이고 일방적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 구분은 모호해졌다. 그저 인터넷 상에 ‘재미’로 올린 단어가 공신력을 얻기도 한다. 신조어의 생산자는 더 이상 사회적 상류계층에 머물지 않았다. 과거 수용자가 적극적으로 생산에 참여하게 되었다.
옛날, 책상머리에 익숙한 이들이 신조어를 만들어냈다면, 현대 사회에 들면서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반인들이 신조어를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신조어는 사회 깊숙한 면을 더욱 잘 반영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 속에는 ‘맘충’에서 나타나듯이, 또 다른 권력이 내재해 주류와 비주류를 만들어내지만, 어찌됐든 이 또한 그러한 현상을 반영하고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 올해에는 어떠한 신조어가 얼마나 생겨났을까. 올해의 신조어는 다음해 1월쯤 국립국어원에서 보고서로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