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홍용희
아직도 파르스름한 한낮의 잔영이 남아있는 하늘, 거실 창문 버티칼 커튼 사이에 초승달이 걸려있다. 달이 좀 더 잘 보이도록 커튼을 젖혔다. 창밖 야자수 나무에 가녀린 초승달이 또렷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달 속에는 뜻밖에 대학기숙사 일 학년 때의 한방 식구들이 야자수 위에서 미소 짓고 있다.
오래전 나는 춘천 봉의산 자락에 있는 여자대학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그 추억은 마음속에 늘 남아있다. 기숙사에서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철 따라 명암을 달리하는 계절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침마다 눈뜨면 마주치는 얼굴들과 사 년을 함께 생활하며 지냈다. 그중에서도 마음 맞는 한 방 식구이자 친구와의 추억이 많다. 식사 후엔 같이 산책한 뒤 방에 들어가 각자의 일을 보았다. 수업이 없을 때면 우리는 늘 그랬던 것처럼 시간을 함께 보냈다. 새순이 돋는 봄철엔 봉의산에 올라갔고 무더운 여름엔 더위를 식히려 소양강이나, 공지천에서 배를 탔고, 가을엔 가로수의 아름다운 단풍잎을 보며 애수에 젖기도 했다. 눈 오는 겨울엔 간단히 *미라보 다리를 지나 *폭풍의 언덕을 산책하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한 첫해 12월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기숙사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주말, 대다수 학생들은 외출하고 남은 몇몇은 느긋하게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한 친구가 “저기 저 초승달 좀 봐, 어쩌면 꼭 나 같아.” 하고 외쳤다. 전부 고개를 돌려 달을 쳐다보았다. 그 달은 시울도 또렷한 가녀린 초승달이었다. 달은 봉의산 나무 위로 살포시 떠오르고 있었다. 대화는 끊겼고 긴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흐느낌 소리가 들렸다. 순간 친구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전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나도 눈썹 같은 초승달을 쳐다보며 서울에 있는 어머니 생각에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났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초승달은 어머니의 눈썹 같아 미당의 동천(冬天)이 생각났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전문)
초승달은 어머니의 ‘고운 눈썹’에 내려앉았고, 생활의 터전에서는 ‘동지 섣달의 매서운 눈’과 같았다. 우리 가족에게는 ‘즈믄 밤의 고운 꿈’으로 맑게 씻김의 존재였다. 평소 어머니는 사 남매 중 양념딸인 내게 무척이나 살갑게 대했다. 이랬던 어머니와 난생처음으로 떨어져 있었으니 눈물이 뚝뚝 흐르고 가슴이 막혀 올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쓰린 이별을 하고 이곳까지 왔으니, 공부를 열심히 하리라 다짐했다.
이렇게 내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준 달은, 시인의 가슴속에 떠오르면 시가 탄생 되고, 화가에게 차오르면 멋진 풍경화가 되고, 음악가의 눈과 귀에는 멋진 세레나데가 울려 퍼지고, 아이들에게는 계수나무와 옥토끼가 되고, 할머니에게 떠오르면 선녀가 되어 날개옷을 입고 무지개를 오르내리는 환상의 세계를 손자·손녀에게 전해준다.
밤하늘의 달은 항상 제자리에 있으며 보는 이에게 뭔가를 주는 어머니 같다. 나는 세사에 시달리거나 힘들면 하늘을 쳐다본다. 달을 보며 뭔가를 생각하게 되고 위로받기에, 달은 영원한 안식처요, 아름다운 영상이며 영롱한 보석이다. 옛날 우리의 어머니들은 정화수를 떠놓고 달에게 소원을 빌기도 했다. 달은 밤하늘에 두둥실 떠올라 이 세상을 비출 뿐만 아니라 어떤 신령한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위로를 주기도 한다.
그동안 세상이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변했다. 나도 이리저리 분(奔)답게 살다 보니 달을 쳐다볼 여유가 많지 않았다. 그만큼 세상 번뇌와 유혹에 시달리며 방황했기에 그랬다. 조금만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달의 모양이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면 얼마나 좋을까. 달이 차고 이우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네 인생과 닮아있다.
초승달처럼 예쁜 눈썹을 가진 어머니는 가고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수학생이 다녔던 대학에 적을 두었기에, 몇 안 되는 친구들은 전화와 카톡으로 지금도 연락하며 지낸다. 세상이 변하고 세월이 가도 길흉사는 물론이고, 때로 눈썹달이 떠오르면 친구들은 서로에게 연락한다. 그러면서 단체 카톡으로 그 시절을 떠올리며 까르르 웃는다.
아직도 거실 창문 커튼 사이로 초승달이 드리워져 있다. 어머니는 저 달 속 어디쯤에서 나를 보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도 달은 천상과 지상, 영원과 찰라, 과거와 현재 진리와 허위 사이에서 영원한 가교가 될 것이리라.
*미라보 다리=대학교 수로에 놓인 작은 다리
*폭풍의 언덕= 대학교 옆, 바람이 많이 부는 공터
홍용희의 <초승달>
좋은 수필은 무엇보다 소재가 참신하고 제재나 주제 또한 참신해야 한다. 이에 구성도 참신하다면 더 바랄 게 무엇이랴. 수필의 소재는 일상적이어서 대체로 수필을 창작하는 이들의 작품은 고만고만하기 십상이다. 문제는 그 동일한 소재를 작가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통상적 관점에서 바라본 평면적 진술은 수필의 격을 떨어뜨린다. 하여 소재를 미시적으로 보거나 뒤틀어보거나, 아니면 뒤집어 보든가함으로써 그 각도의 변화를 가져올 때 독자는 비로소 사물을 통찰하게 되고 그 변형과 굴절에서 소재의 자기화가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작품을 통한 감동과 자기 발현은 이런 경우에 오게 마련이다.
홍용희의 작품 <초승달>은 감성적이면서도 지적이미지와 신비적 이미지까지를 통섭하고 있다. 그의 수필을 음미하노라면 나도향의 <그믐달>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홍용희의 수필은 그와 격을 달리한다. 소재의 자기화에 성공한 이 수필은 “거실 창문 버티칼 커튼 사이에” 걸려있는 초승달에서 착안하여 대학시절을 회감하는 장면으로 공간 이동되고 있다. “시울도 또렷한 가녀린 초승달이었다. 달은 봉의산 나무 위로 살포시 떠오르고 있었다. 대화는 끊겼고 긴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누군가의 흐느낌 소리가 들렸다. 순간 친구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전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나도 눈썹 같은 초승달을 쳐다보며 서울에 있는 어머니 생각에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났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초승달은 어머니의 눈썹 같아 미당의 동천冬天이 생각났다.”고. 착상의 동기를 보이는 이 구절에서 화자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언어기의의 메시지를 감지하게 한다. 결국 화자는 초승달에서 어머니를 유추하고 이들의 상관관계를 통찰하고 있다. 미려한 문체와 정서와 사상의 융합이 읽는 이를 감동케 하는 마력과도 같은 요소로 작용한다. 즉 정서의 지성화, 지성의 정서화를 통해 분석과 통합 그리고 의미화를 통해 문학적 상상과 형상화가 이루어진 수필로 판단된다. 결미의 “어머니는 저 달 속 어디쯤에서 나를 보고 있는 듯하다.”는 여운과 함축이 이 수필을 지배적으로 본격 수필화하고 있다. 비록 몸은 이국에 있을지라도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개발하고 존재의 의미에 천착하는 좋은 수필이 창작되길 기대한다.*
문학평론가 이유식, 한상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