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고백 -2014년 《한미문단》수필 가작-

조회 수 8585 추천 수 8 2014.11.22 20:50:08
작가 : 이복자 수필가 

 

 

제자의  고백(告白)      
                                                                                                                                                                             이 복 자

  
   그 시절은 6·25사변 직후라 모두 가난하고 어려운 시기였다. 나는 고향에 있는 모교인 초등학교로 발령받았다. 처음 시작하는 직장생활이라 설렘과 두려웠던 때가 까마득한데 추억은 생생하게 그대로 남아있다.
  건물은 폭격으로 반 이상이 폐허 되고 넓은 강당과 교실 10여 개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강당을 여섯 교실로 나누었다. 그중 한구석에서 학생들은 송판에 네 다리를 세운 조그만 책상을 각자 가져왔다. 찬 마룻바닥에 앉아 오들오들 떨면서 매서운 추운 날씨였지만 빛나는 눈으로 나를 맞아 주었던 3학년 1반 남아들이었다.
  학생들의 손등은 터서 갈라지고 발가락은 동상에 걸려 벌겋게 부어있는 가여운 아이들이었다. 그래도 참고 견디며 열심히 공부하는 그들이 대견했다. 그중에는 산 넘고 들길을 1시간 이상 걸어온 학생도 있었다. 전쟁 중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지내는 학생도 3명 있었다.
  하루는 가정방문을 핑계 대고 고아원에 찾아갔다. 그리고는 3명의 학생이 지내는 모습을 보았다. 빈약한 시설이 너무도 비참했다.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은 웃음을 잃고 양지바른 곳에서 병든 병아리 마냥 웅크리고 않아 아무 표정이 없었다. 다만 배고픔에 먹을 것만 신경 쓰고 눈치를 보는 듯했다. 그 당시의 고아원은 구호물자에 의존하여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었다. 가여운 아이들, 어떻게 할 수 없을까’ 하는 마음은 있는데, 나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게 안타까웠다.
  내가 제일 힘들었던 일은 가난한 학생들에게 매월 기성회비(학교 운영비)를 담임이 독촉하여 걷는 일이었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탓에 우리 반이 항상 꼴찌였다. 무상으로 교육시킬 수 있으면 좋을까 싶었다. 그런데 형벌처럼 전교 학급에서 수납된 기성회비는 나에게 다 가져왔다. 서무과장에게 매일 통계를 내어 돈과 함께 보고하는 업무가 교무회에서 내게 맡으라고 한 것이었다.
  중책을 맡아 실행하던 중 아찔한 사건이 생겼다. 교실에 두고 자리를 비운 사이 돈이 없어진 것이었다. 가슴은 두근두근 속만 태우고 조심하지 않은 나의 실수라 누구에게도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진땀을 흘리며 친지께 사정하여 겨우 해결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서산을 바라보니 저녁놀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곱고 빛깔은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삭막한 내 마음을 위로하여 주는 듯 황홀하고 포근하다.
  그런데 어려움 속에서 항상 웃는 얼굴에 똑똑한 반장, 조윤모가 퇴근하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반장과 집으로 함께 오는 동안 이야기했다. “강원도에서 피난 나올 때 부모를 잃고 작은 엄마와 둘이 삽니다. 작은 엄마는 돈 벌어 오라며 밥도 안 주고 매질까지 해요.”라며 절박하게 돈이 필요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까 마음이 쓰렸다. 나는 저녁을 잘 찾아 먹고 위로하며 용기를 잃지 말라 했다. 표정을 보니 할 말이 있는듯한데 눈치만 보고 망설이다 말을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근무하던 4년간 많은 사연을 뒤로하고 대전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근되어 고향을 떠났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결혼하고 엄마가 되었다. 하루는 말쑥한 하얀 해군제복을 입은 정장한 군인이 집에 찾아왔다. 어떻게 왔을까? 나에게 인사를 정중히 하고는 “선생님. 저 조윤모예요”라고 한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보다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잊지 않고 찾아온 제자가 고맙고 반가웠다. 제자는 단정히 앉아 망설임 없이 “용서해 주세요. 제가 선생님의 돈을 훔쳤습니다!” 하며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닌가.
  제자는 오랜 세월을 얼마나 자신을 힘들게 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찡해졌다. 그러면서 제자의 진정한 고백에 나도 눈시울이 젖어와 왈칵 쏟아졌다. 나는 제자를 안아주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용서하는 기쁨, 용서받는 기쁨, 그 순간의 감동을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 모진 세파를 겪으며 참고 견디었으니 잘 살기를 마음 깊이 빌어 주었다.
  어려운 시절 만고풍파 겪으며 살았을 불쌍한 아이들, 그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제 이순을 넘긴 노년이 된 제자가 궁금해진다. 어떻게 변해 있을까?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가겠지 싶다. 만남과 헤어짐은 우연이 아니고 깊은 인연이 있다 생각한다. 제자는 진심으로 양심 고백을 할 수 있는 심성을 가졌으니 틀림없이 올바르게 살았을 거라 믿는다.
  정직하게 정도를 걸어온 사람만이 마음의 평화와 축복을 받을 것이리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이 몇이나 있으랴. 잠시 있다 가는 인생길, 많이 사랑하고 아름다운 발자취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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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충청도 출생

초등학교 교사 역임

글사랑 샘터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웹관리자

2015.03.15 2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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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콧수염 훈장
 
                                                                                                                                          이 복 자
 
  인생은 40부터라고 굳게 다짐하며 무작정 조국을 뒤로하고 떠나온 이민 길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온통 색다른 세상이라 두려웠다. 초기 이민선배들이 미지를 개척할 때 수많은 역경을 넘기지 않았겠는가. 언어 소통을 못 하니 답답하여 멍청한 바보가 되었다. 미소와 몸짓으로 의사표시를 하던 이민 초기, 생무지 LA에 도착하자, 전쟁터와 다름없던 험한 흑인지역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곳은 기회의 나라, 남편은 선장이 되어 우리 가족 5식구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듯 먼 앞날의 꿈을 찾아 앞만 보고 항해하였다.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며 하루하루를 무탈하기를 바라면서 지냈다.
 
   초조한 마음에 서둘러 Drive-in-Dairy 가게를 인수하였다. 우범지역인 줄 알면서도 생계를 유지하는 수입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꾸려갔다. 주위에서 지인들은 위험한 곳에서 나오라며 염려가 대단하였다. 그러나 투쟁하는 전사의 각오로 긴장 속에서 1년을 견디는 동안, 권총의 위협과 큰 도둑, 좀도둑은 다반사였다. 세계 최강국 부유한 나라에서 상상이나 했던 일인가? 그들은 빈둥빈둥 놀며 정부에서 주는 월페어를 받아서 살고 있다. 못된 짓을 양심도 없이 저지르며 사회의 독버섯 같은 존재이니 사회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우리를 도와주려고 들려주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 반갑고 의지가 되었다. 힘들었던 오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딸과 막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저녁 식사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다. 식탁에 둘러앉아 각자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나눈다. 자식들은 새 환경에 적응하려 애로상황도 많으련만 내색을 하지 않고 맡은 일에 충실히 온갖 노력을 다하며 노력하는 듯하였다.

   다행히 살벌한 우범지역 그곳에도 인정이 살아 있어 착하고 고마운 이웃 ‘제푸리’라는 흑인 가족이 있었다. 직업이 없는 그는 아침부터 가게에 나와 주위를 살펴주었다. 부인은 없는 살림에 먹을 것도 만들어 가지고 왔다. 좋은 만남으로 도움을 받았음에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추억으로 남는다. 우리를 보호하여 주었기에 든든하고 무사히 지내는 듯싶었다.

   미국사회에 무지하고 미숙하여 실수 잦았던 시점에서 말만 듣고 남의 일처럼 생각하던 사건이 벌어졌다. 흑인 청년 3명이 쏜살같이 달려오기에 달리기 시합을 하는 줄 알고 쳐다보고 있었다. 장승과 같은 몸집에 섬뜩한 눈빛은 소름이 끼치고 험상궂은 얼굴로 돈을 요구한다. 1명은 권총을 남편의 머리에 대고, 1명은 계산기에서 동전까지 몽땅 남김없이 자루에 넣고, 남편의 주머니 속까지 뒤지며 알뜰하게 털렸다. 1명은 망을 보다 달아나니 권총을 내리면서 유리병을 깨서 남편 얼굴에 힘껏 던지고 도망간다. 영문도 모르고 당하고 보니 끔찍한 공포의 순간이 눈 깜박할 사이에 발생한 것이다. 남편 얼굴은 피투성이 되어 옷에는 붉은 핏줄이 흐르며 쓰러졌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온몸이 떨리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으니 아찔하다. 다 가져가라고 내어준 것이 다행히 목숨을 건진 것이리라.
 
   잠시 후 경찰차가 와서 떨고 있는 나를 보고 위로하는 듯 안심을 시킨 후, 남편을 치료해야 한다며 데리고 갔다. 어수선하고 무서운데 혼자 남은 시간은 초조하고 길기만 하다. 기다리던 남편은 창백한 얼굴에 이마와 코밑을 여러 바늘 꿰맨 몰골로 돌아오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행히 깊은 상처는 없다 하여 안심이다. 초긴장 속에서 절망의 벽을 넘으려면 강인한 의지와 인내만이 살길임을 알았다. 나도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정신을 차리고 힘을 내자! 두렵고 서러운 심정을 감추고 평상심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고객을 맞으며 물건을 팔았다.

   시간이 흘러도 남편의 코밑에 흉터가 남아있어 궁리 끝에 콧수염을 기르기로 했다. 이민 온 지 6년 만에 그리던 모국방문을 할 때, 콧수염 때문에 오해도 받고, 이방인 취급을 당한 황당한 일도 있었다. 청바지에 자주색 점퍼를 입고 남대문 시장에 갔는데, 달러 장수 아줌마가 가까이 다가온다. “달러 있어요?”하고 남편에게 말을 걸더니 “한국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하세요?”라고 하여 웃음이 터졌다. 이제는 완전히 콧수염으로 굳어버린 외국인 인상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편 역경의 훈장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추억이 깊어지고 웃음 짓는 일이 되었다.

  힘이 들고 고통스럽던 순간에도 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용기를 주던 아이들이 있었기에 돌아보면 행복한 추억으로 미안하고 후회되는 일도 많으나 꿈같은 37년의 세월이 흘렀다. 험한 파도 풍랑을 힘들게 헤쳐 오면서 굽이굽이 넘어온 고달팠던 삶까지도 지난 것은 모두 그리운 추억이다. 수없이 많은 아픔과 슬픈 고통의 나그넷길을 걸어왔음에 황혼의 길목에 서 있는 오늘이리라. 알게 모르게 도움의 손길이 있어 무탈하게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좋은 인연으로 스쳐 간 수많은 사람과 사건들이 아련히 멀어져 보이지만 내 삶의 길에서 추억으로 남아 지난 것은 모두 감사뿐인 듯싶다.
 

첨부

이금자

2015.05.15 0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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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보스톤의 이금자입니다.  선생님의 두편의 글 잘 읽었습니다.

6.25사변 때의 사진. 옛 생각이 저절로 나네요. 늦게나마 해군이 되어 찾아온 제자. 아마 잘 살고 있슬겁니다.

늘 선생님 생각을 하면서요. 그리고 이민 생활에서 제일문제가 되는 언어.  제가 현재 손짓 발짓으로 단어 몇 마디에

의사소통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쓰세요.  가끔 들어가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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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안상선 수필가 

내가 겪은 현대의학 안 상 선 눈부신 현대의학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이 100세를 넘나들며 사람들은 건강에 관해 많은 관심을 둔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염색체 변형을 이용한 선천성 질환의 근본적인 치료와 예방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인간복제의 가능성은 의학의 도덕성과 윤리관에 대한 열띤 토론이 한창이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의 초조하고 마음 졸이는 나날들이 있는가 하면, 불법으로 사람의 장기를 채취하여 이를 매매한다는 외국기사를 접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마음이 착잡해진다. 내가 평생 몸담아왔던 신...

협곡에서 본 미소 [1]

작가 이숙이 

협곡에서 본 미소 이숙이 돌산이었을까? 흙으로 빚어진 바위였을까? 비와 바람과 오랜 세월이 협곡을 만들고 거대한 바위를 갈라놓아 희귀한 모양이 되어 있다. 구불구불 갈라진 틈새로 태양 빛이 스며들 때 프리즘 작용의 신비로운 색상과 모양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갈라진 바위틈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의 머리는 위로 향해 젖혀져 있고 카메라 들어 올린 두 팔도 위로 뻗어, 온 정신을 집중하고 심오하게 만들어진 무늿결 바위 모양에 감탄하며 카메라에 담는다. 많은 관광객이 비좁고, 조금은 어두운 곳에서 숨죽이고 한 발...

그리운 봉선화 [1]

작가 정순옥 수필가 

그리운 봉선화 蒑池 정순옥 봉선화. 왜 이리 고향의 봉선화가 보고 싶은 걸까? 내가 고향에 두고 온 것 중에서 가장 많이 생각나게 하는 꽃이다. 요즈음도 눈 감고 고향 생각을 하면 봉숭아가 터지고 눈 뜨고 숟가락을 만져도 따다닥 터지는 소리로 변한다. 손을 살짝이라도 대면 씨방을 터트리면서 반가움을 표시하는 봉선화 생각뿐이다. 어느 날부터 나는 재미동포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를 앙다물고 살아야 한다.”라는 어머니의 말씀 따라 힘든 디아스포라의 삶에서도 고향을 잊지 않고 인내하며 살아야 했다. 그 힘의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