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쏘

조회 수 11477 추천 수 15 2014.09.25 20:13:38
작가 : 정덕수 수필가 

 

 

                                                          오쏘(곰)

 

                                                                                                                 정덕수
 
  해 저무는 저녁, 나의 충견 퍼픈과 함께 눈 덮힌 호숫가를 걷고 있었다.
  신바람이 난 퍼픈은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대지에 침입자가 된 듯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며 깨끗한 눈밭을 마구 뭉개고 다닌다. 멀리 앞질러가던 갑자기 동작을 멈춘 퍼픈이 전방을 노려보며 다급하게 짖어대고 있다. 그걸 본 나는 눈 위를 버벅대며 퍼픈의 발자국 따라 그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도착하니 까만색의 짐승 새끼가 눈 속에 반쯤 묻혀 있었다. 이놈은 퍼픈과 나를 번갈아 보며 입이 찢어지라 괴성을 질러댔고, 파란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어떻게 이곳에서 이런 상황이 되어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곰이나 늑대 새끼로 생각했다. 곰 새끼면 빨리 피해야 한다. 주위에 이놈의 어미가 있을 터이니까. 그런데 눈에는 야성은 없고 질러대던 괴성은 개 짖는 소리로 바뀌어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놈은 탐스러운 검은 털을 가진 곰 같이 생긴 어린 강아지였다.
  눈 밖으로 꺼냈다. 하체를 못 쓰고 이내 주저앉아버린다. 일어나 보려고 몇 번을 더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하반신이 얼어서 마비된 것이다. 손으로 들어 올려 얼굴을 가까이하니 검고 영롱한 눈동자가 내 눈과 마주쳤다. 순진하고 예쁜 눈에는 아직까지 공포가 남아 있었다. 뺨에 입을 맞추고 깊게 안아 주었다.
  퍼픈의 개 줄로 상의 바깥으로 나의 허리 부분을 단단히 둘러 묶었다. 그리고는 강아지를 가슴에 집어넣고 상의 지프를 올려 강아지 얼굴만 나오게 해주었다. 허리에 묶은 끈이 강아지가 흘려 내리는 것을 막으며 차가운 공기를 차단해 주려는 목적이었다. 호수를 걸어나올 때, 나의 체온과 심장의 박동이 강아지에게 전달되면서 강아지의 온기가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놈은 가끔 울먹이는 아기처럼 신음을 냈다.
  몇 채 안 되는 호숫가 집들을 다 둘러보았지만, 주인은 없었다. 어둠이 내리는 호숫가에서 강아지를 품에 안고 망설이고 있는데, 한 백인 여자가 지나가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사정을 말했다. 추위를 피할 겸 일단 그녀의 집에 함께 가자고 했다. 호숫가의 작은집에 개 두 마리와 함께 사는 그녀는 이곳 지방공무원이고 이름은 '메리'라 했다. 그녀와 나는 커피를 마시며 강아지 문제를 상의했다. 메리는 걷지 못하는 강아지라, 가축병원이 없는 마을의 경찰서나 동물 보호소에 갖다 주면 죽일 것이라고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심한 동상이 아니길 바라며 강아지를 돌보며 주인을 찾아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하룻밤을 강아지를 그녀가 돌보아 주겠다고 했다. 메리는 강아지의 이름을 스페인어로 '오쏘'(곰)이라 했다. 그리고 나와 퍼픈은 집으로 향했다.
  그날 밤늦게 메리의 전화를 받았다. 오쏘가 다리가 나아 걷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수화기에 대고 참 잘 되었다며 환호성을 질렸다.
  다음 날 아침, 오쏘를 집으로 데려왔다. 퍼픈은 오쏘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번이나 집 없는 강아지들을 데려왔어도 퍼픈은 관대했다. 그런데 오쏘에게만은 다르게 대했다. 나는 퍼픈을 나무랐다. "오쏘는 니가 발견했어. 니가 살린 거라고!" 퍼픈이 내게 다가와 앞발 하나를 들어 위아래로 흔들며 애교 부린다. 야단을 맞을 때 하는 행동이다.
  오쏘의 주인은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곰 같이 생기고 멋진 오쏘와 기묘하게 멋진 퍼픈을 데리고 거리로 나가면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게 된다. 마치 내가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오쏘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나는 오쏘를 계속 기를 수 없는 형편이다. 더 정들기 전에 오쏘를 보내야 했다. 심사숙고 끝에 마음씨 좋은 알바니안 친구에게 오쏘를 선물했다. 나중에 우연하게 오쏘의 족보를 알게 되었다. 오쏘는 양치기 갯과이며 '오스트렐리안 볼더콜리' 가문에 족보까지 있는 명문가의 개였다.
  우연히 산책 중 오쏘를 마주칠 때가 있다. 잘 생기고 풍채가 멋지고 늠름해 보인다. 이제는 퍼픈보다 두 배나 크다. 퍼픈은 오쏘에게 달려가 목덜미를 물고 아직도 자기가 보스(boss)라고 으르릉댄다. 오쏘는 반가움에 힘차게 꼬리를 치다가 엉덩이와 허리까지 흔들며 춤까지 춘다. 다행히 헤어질 때는 쉽게 돌아서고 만다.
  오쏘가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따라가다 미련이 남았는지 멀리서 우리를 한두 번 돌아다 본다.

 

정덕수.jpg

 

 

경력:
서울문학 등단
한국문협 본부 회원 및 한국문협 미주지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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