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 능선을 따라가라

조회 수 7496 추천 수 5 2014.09.25 22:07:56
작가 : 이주혁 

 

 

 

 

                                                                                        8부 능선을 따라가라

                                                                                                                                                             이 주 혁

 

   비가 갠 저녁, 앞산의 등고선이 파란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하다. 학군단 유격 훈련으로 야간 산행을 할 때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산등성을 따르지 말고 8부 능선을 따라가라!”라는 교관의 명령이 생각난다. 어쩌면, 지난날의 나의 삶은 남보다 드러나기 위하여 산등성을 타려고 애써온 것 같다.
   1984년, 이민 온 약사들이 미국에서 약학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평가시험을 거처 약사 면허 시험을 볼 수 있는 제도가 시작되었다. 가주 한인 약사회를 중심으로 미국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가주 약사 면허를 소지한 몇몇 뜻있는 임원들이 자진하여 교수진이 되어 평가시험 준비반을 시작했다. 1차로 50여 명이 등록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어려운 직업으로 쪼들린 얼굴들이다. 그 당시에는 취업 조건도 없이 약사로서 이민을 허가해 주었지만, 약사의 자격을 인정하여 주지 않았고 자격을 위한 시험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무작정 상경한 복남이 복순이의 신세였던 우리다. 그러나 이제는 면허 시험을 볼 수 있다는 벅찬 기대로 녹슨 뇌세포를 씻으며 공부해 보려는 30∼40대의 늙은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온종일 일 하고 지친 몸으로 야간 수업에 앉아 있었지만 그들의 눈동자는 희망에 반짝이었다. 
   1975년 이민 와서, 나도 일 년여 공장에서 시간당 3불로 공돌이 노릇을 하다가 ‘사우스 다코다’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노르왁(LA 근교)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었다. 1시간 강의를 위하여 3시간 이상의 준비가 필요했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배웠던 교과서와 참고 서적을 뒤적이며 강의 준비를 했다. 종일 약국에서 일하고 서둘러 문을 닫고 교통지옥에 시달리며 LA까지 올라가 밤 10시에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11시가 가까웠다. 약사가 되고 싶었던 지난날을 생각하며 시험에 합격하여 약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저들에게 주고 싶었다. 처음 시행하는 평가시험 준비반이라, 문제의 출제경향도 모르고, 시험 범위 또한 막연하여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자료들을 찾아서 쉽게 알아듣도록 설명해 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터라 자신의 열정에 빠져 힘든 줄 모르고 강의시간이 넘도록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그런 열정에도 아랑곳없이 10시면 자리를 뜨는 몇몇 학생을 보며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성의를 다하여 가르치는데, 강의도 끝나기 전에 자리를 떠!”하며 상기된 얼굴에 실망으로 주저앉고 싶었다. 열정을 쏟아 붓는 만큼의 보상을 기대한 것이다. 밤늦게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주차장 밖에서 기다리는 남편이나 자식에 대한 아내로서나 어머니로서의 어쩔 수 없는 쫓김 때문임을 알지 못했다. 나는 ‘열정의 맛’ 때문에 자신에게 취하여 나를 최고로 받들어주기만을 바랐다.
  하루는 교실이 떠나가도록 큰 목소리로 열을 내고 가르치는데 모든 학생이 열의에 찬 눈으로 나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뒷좌석의 한 남자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시계만 자주 바라보았다. 나는 강의 내내 맥이 빠지고 그 남자에게로 자주 시선이 갔다. 그래도 마저 한 사람까지 관심을 끌어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였으나, 그는 끝내 끝날 시간만 기다리는 무표정이었다. 그 날이 가장 힘든 날이었다. 허무감으로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서 당장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아내를 대신하여 운전하여준 남편이었다. 나는 남의 형편을 살피며 배려하는 최선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나타내려는 자기 욕심에 전심한 것이다. 모두가 추앙하는 정상 위로 우뚝 드러나서, 인정받고 존경받고 싶은 마음뿐이었던 모양이다.
  이제 은퇴하여 삶의 정거장에서 뒤돌아보면 지난날은 열정만으로 앞만 보고 달려 운 힘겨운 삶이었다. 잠시 멈추어 20%의 여유를 갖는 삶을 생각해 본다. 남을 도와도 아직 20%를 덜 도왔다는 생각으로 하면 기대와 보상에 따른 서운함과 원망도 덜 할 것 같다. 자신을 위한 일에도 8활에 만족하면 여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삶에서 인정받기를 바라며 남보다 드러나기를 바라기보다는 자신의 부족함에 자족할 수 있다면 삶은 더 즐겁고 풍요로울 것이라는 뒤늦은 깨달음이다.
  요즈음은 가끔 설거지를 도와주어도 한두 개 그릇을 남긴다. 어쩌다 설거지를 해주어도 “저 양반은 설거지 한번 안 해준다.”라고 푸념하는 여성 특유의 불평을 들을 때에는 괜히 마음이 편치 않다. 자기가 원하는 만큼 해 주지 않았을 때 항상 쓰는 금성인의 말투인 것을 알면서도…. 어쨌든, 한두 개 남겨 놓으면 설거지를 다 한 게 아니므로 그 소리를 들어도 속으로 편히 웃을 수 있다.
  노을이 지는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산등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어둠으로 가려진 8부 능선을 바라보며 8부 능선에 숨겨진 삶의 지혜를 깨닫는 황혼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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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성균관대학교 약학과 졸업

사우스 다코다 주립대학교 약학과 졸업

한독약국 . 브라이스 약국 경영

에세이포레 수필당선

현재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이사

 

 

 


웹관리자

2014.11.22 20: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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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에 박힌 네온 스파클러
 
                                                                                       이주혁

 

  독립기념일에는 불꽃놀이에 쓰는 짧은 막대기 같이 생긴 ‘네온 스파클러(neon sparkler)’와 콘(cone) 모양의 로켓 폭죽을 사는 버릇이 생겼다.
  1975년 미국에 이민 온 후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 주립 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LA에 직장을 구하여 할리우드 부근 허름한 아파트에서 살 때이다. 당시는 대부받은 학비와 밀린 빚을 갚으며 네 식구가 먹고살아야 할 각박한 상황이었다. 그랬으니 독립기념일 연휴 같은 축제는 나의 삶 속에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고, 나는, 오히려 시간외근무수당에 관심이 더 많았다.
  독립기념일 연휴가 시작되는지라 바쁘지 않은 근무를 마치고 홀가분히 퇴근하니 아직 땅거미가 지기 전이다. 지저분한 쓰레기가 구석구석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아파트 골목에는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뛰쳐나와 야단들이다. 길거리 한복판에 작은 불 무덤을 만들어 놓고, 손에 든 가느다란 막대기로 불꽃을 튀기며 떠들썩하게 놀고 있었다.
그때 여섯 살 된 아들 녀석과 세 살 된 딸아이가 먼발치서 나를 알아보고 급히 달려와서는, “아빠! 나 저거 줘.” “나도!” 하며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색했다. 두 녀석이 ‘이제는 됐다.’ 싶은지 들뜬 얼굴로 반가워하며 안겼다.
  나는 처음 보는 것이라 불 무덤 가까이 가서 재 옆에 흩어져있는 막대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한 뼘 좀 넘는 길이에 막대기 끝에는 희뿌연 납빛의 금속성 물질이 묻어져 있었다. 꼬마 녀석들이 가지고 노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얼른 아들 녀석 손에 쥐여 주며 불 무덤 속으로 들이밀었다. 그러나 불꽃은 튀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 것은 ‘팍팍’ 불꽃을 튀기며 빨강 파랑 노랑 등 각가지 색깔로 번쩍번쩍 빛나는데. 또 다른 것을 대어 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 것은 이미 다 타서 버려진 것임을 어쩌랴. 옆 아이에게 하나만 달라고 사정해 보았으나 한창 신이 난 아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럴만한 아량을 베풀기는커녕 콧방귀도 안 뀌며 도리어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눈물을 글썽이며 아쉬운 눈으로 풀이 죽어 있는 녀석을 꼭 껴안았다. "길에서 이런 것 가지고 놀면 위험하고, 경찰이 오면 붙잡아 간다."고 엄포를 놓고 싶었지만 쳐다보는 가여운 눈망울을 피할 길이 없다. “아빠가 사 줄게. 가자!” 하고 손을 잡자 실오라기 같은 여린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금세 밝은 웃음을 띠고 신나서 따라나선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각에 어디 가서 그런 것을 살 수 있단 말인가. ‘독립기념일에 아이들이 갖고 싶고,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었더라면 어린 가슴을 저렇게 멍들게 하지는 않을 것을…. 시간외근무수당이 한 배 반이라는데 미소 지었을 뿐.
  그래도 혹시나 싶어 길거리로 나가 보았다. 한산한 거리. 정류장에 멈추었던 시내버스는 떠나고 한 학생이 뛰며 따르다 천천히 돌아선다. 어디에도 불꽃놀이 기구를 파는 곳은 없었다. 그가 좋아하는 초콜릿 콘 아이스크림으로 마음을 달래본다. “아빠! 작은 막대기보다는 이 콘처럼 생긴 큰 불꽃놀이로 사줘!” 아쉬움이 담긴 아이의 이 말 한마디가 나의 가슴에 콘처럼 생긴 쐐기 못으로 와 박힌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밥 먹듯이 어기면서 값비싼 장난감으로 대신하려 한다.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순간들이 어쩌다가 인심 쓰는 떠들썩한 생일 파티보다는 더 없이 귀하고 소중함을 안다. 그러나 그들에게 꼭 필요한 시기가 지난 이후에야 뒤늦게 깨닫고 가슴 아파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곤 한다. 더 잘 살아 보겠다고 앞만 보며 달리는 숨찬 삶의 시간이, 잘 해주고 싶다는 마음과 엇박자를 치며 타버린 막대기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세 살과 일곱 살 된 두 아이를 키우는 아들을 본다. 사업하여 더욱 풍요롭게 살 수 있으련만 직장 생활에 만족하며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애를 쓴다. 한 발자국 뒤에서 차선의 삶으로 검소하게 사는 것이 안쓰러워 보이면서도, 경쟁에서 이기려고 아등바등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며 사는 것만 같아 대견스럽다. 아마도, 나에게서 받은 상처를 더 나은 삶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싶어 미안하면서도 흐뭇한 마음이 든다.
  독립기념일을 알리는 요란한 광고가 붙어 있는 불꽃놀이(fire works) 좌판대에서 올해도 네온 스파클러와 로켓 폭죽 한 통을 샀다. 주위에서 서성거리며 기웃거리는 남루한 옷차림의 예닐곱 살 난 사내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영문을 모르고 받아 쥔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냅다 달음질친다.
오늘 밤이 그에게 멋진 추억이 되길 빌어본다.

 

* neon sparkler: 30cm 길이의 막대기 끝에서 섬광을 내는 불꽃놀이 기구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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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봉선화 [1]

작가 정순옥 수필가 

그리운 봉선화 蒑池 정순옥 봉선화. 왜 이리 고향의 봉선화가 보고 싶은 걸까? 내가 고향에 두고 온 것 중에서 가장 많이 생각나게 하는 꽃이다. 요즈음도 눈 감고 고향 생각을 하면 봉숭아가 터지고 눈 뜨고 숟가락을 만져도 따다닥 터지는 소리로 변한다. 손을 살짝이라도 대면 씨방을 터트리면서 반가움을 표시하는 봉선화 생각뿐이다. 어느 날부터 나는 재미동포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를 앙다물고 살아야 한다.”라는 어머니의 말씀 따라 힘든 디아스포라의 삶에서도 고향을 잊지 않고 인내하며 살아야 했다. 그 힘의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