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 길 따라

조회 수 598 추천 수 2 2020.01.24 09:09:21
작가 : 김혜자 수필가 

 

 

 

 

감자꽃 길 따라

 

나의 첫 수필집이 출판되었다. 큰일 했다는 충만함에 가슴이 뛴다. 더욱이 출판에 온 정열을 쏟아 주신 스승의 배려로 조국 산천 여행길에 올랐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黃砂)를 걱정했지만, 며칠 전에 내린 비가 말끔히 씻어줬다. 에메랄드빛 바다처럼 하늘은 맑은 공기로 가득하다. 산자락을 타고 흘려 내려온 아카시아 꽃향기가 내 후각을 흔들고 지나간다. 향기를 붙잡아 손으로 어루만져 보고 싶지만 갈 길이 멀다. 뜨겁게 달구던 시심(詩心)을 외면하고 구름이 흘러가듯 나도 떠난다.

 

중부 내륙 고속도로를 달린다. 이번 여행은 승용차를 타고 가기에 시간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어 좋다. 눈부시게 발전한 농촌의 풍경과 자연이 나를 즐겁게 맞이한다. 낯선 신선함이 시시각각(時時刻刻) 다가온다. 한국의 산천이 변한 것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았지만, 창밖에 보이는 풍경에 탄성이 튀어나온다. 굽이굽이 산을 돌아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사이 남한강 유역에 자리 잡은 충청북도 충주에 도착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몰아내고 나라의 근원이 되는 땅이라 국원성(國原城)이라 이름 지었고, 통일 신라(新羅) 때는 중원경(中原京)이란 이름으로 불려 오다 오늘날 충주(忠州)로 바뀐 곳이다. 충주는 우리나라 중앙에 있는 문화유산의 중심지이며 역사의 현장이다.

 

스승의 절친인 충주에 사는 K선생의 안내를 받으며 탄금대를 찾았다. 하늘을 이고 쭉쭉 뻗은 송림(松林)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 부시다. 초록색 잎들의 속삭임은 여정의 노래이고 음이온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폐부를 요동친다. 숲길을 산책하면서 권태응(1918~1951) 시인의 감자꽃 노래비 앞에 발길이 멎었다.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감자꽃

설명이 필요 없는 짧지만, 운율이 살아 있는 시다. 감자꽃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지만 파도치는 감동을 피할 수 없다. 권태웅 시인은 1918년에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난 저항 시인이다. 경성고보(경기고등)를 졸업 후 와세다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분이다. 도쿄에 유학 온 동기들을 모아 33회라는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여 운동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투옥 후 폐결핵 3기의 병보석으로 출옥했다. 일제의 일본식 개명 강요를 반대하다 결국 퇴학 처분을 받았다. 오랜 지병인 폐결핵으로 1951년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일본 강점기 때, 감자꽃 가사에 항일 저항의식을 담아 감자꽃 노랫말을 개사하여 노래를 불렀다.

 

조선꽃 핀 건 조선 감자

파보나 마나 조선 감자

 

왜놈꽃 핀 건 왜놈 감자

파보나 마나 왜놈 감자

 

시인의 말처럼 자주색은 일본을 뜻하는 것이요, 하얀색은 백의민족인 우리나라를 말하는 감자꽃. 권태응 시인의 감자꽃 시를 가슴으로 부르니 애가 탄다. 배고픈 시절 감자로 끼니를 채우던 시절. 총칼보다 더 무서운 붓의 위력으로 민족의 얼을 심기 위해 시를 섰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더욱더 초라해 보인다.

다시 충주 부근에 있는 탄금정과 열두대로 간다. 신라 진흥왕 때 가야국의 우륵 선생이 가야금을 즐기던 탄금정과 열두대로 가는 울창한 소나무는 우리 조상의 영혼이 깃든 역사의 현장이다. 기암절벽을 휘감고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물길이 가야금 타는 소리로 소나무 몸통을 에워싸며 역사 속의 애잔한 이야기로 묻어난다.

 

탄금대 서북편의 층암절벽인 열두 대에 앉아 남한강을 바라본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 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왜병과 싸울 때 병사들을 격려하면서 열이 난 활을 물에 식히기 위해 열두 번이나 오르내리며 지휘했던 곳이다. 신립 장군의 함성이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것 같다.

 

물은 직선으로 흐를 때보다 곡선을 이루며 돌아갈 때가 아름답게 보인다. 역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안고 흐르는 남한강.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카(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과 싸우다 패전 고배를 마시고 자결한 신립 장군이 떠오른다. 비장한 신립 장군의 울음은 세상 밖을 향해 반짝이는 물비늘로 토해내고 있는듯하다.

 

인고의 세월 속에 흰 구름만 파란 하늘에 하얀 거미줄을 치고 있다. 그렸다가 지우고 다시 또 그려본다.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절박한 삶을 살다 가신 우리들의 조상. 이곳에 그들의 뼈와 탯줄이 묻어 있기에 가슴에 올라오는 뜨거운 사랑을 느낀다. 앞으로 만들어 갈 새로운 역사. 먼저 가신 선배들의 민족정기와 의식을 선양해서 세계를 품을 수 있는 글로벌 코리안을 꿈꾸며 목마름의 문턱을 넘어본다.

 

  김혜자 수필-es.jpg 

약력

조선문학 수필등단

Warner Pacific College Business

미 연방정부 자원동력부 계약관

미 연방정부 국방부 공병대 계약관 정년퇴직

오레곤문협 부회장

 

 

 

 

 


웹담당관리자

2022.03.19 11:01:34
*.48.176.218

              따뜻한 마음

 

                                         김 혜 자

 

  온 세상이 회색 물감으로 얼룩진 신축년이 지나간다. 아름다운 세상은 코로나바이러스 재앙으로 열병을 앓고 일상생활이 멈췄지만, 세월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지루하게 보낸 한 해가 흘러간다. 언제나 세상은 나보다 앞서가고 있다. 그동안 만나보지 못한 친구와 지인에게 보낼 선물 준비로 비 내리는 거리로 나왔다. 크리스마스의 멜로디가 귀를 즐겁게 해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즐거움이다. 보이지 않는 따스한 온기가 살갗을 스치며 내 옷자락으로 스며든다.

  지인의 얼굴을 그리며 적당한 선물을 고른다. 집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쇼핑센터에는 많은 물건이 반값으로 손님을 유혹한다. 충동 구매하기 쉽다. 오랜만에 하는 쇼핑에 들뜬 기분으로 물건을 이것저것 들여다보며 백화점을 오르고 내리는 즐거움에 힘든 줄도 몰랐다.

  갈증이 났다. 생주스 코너로 달려가 줄을 섰다. 즉석에서 갈아주는 시원한 향기의 새큼한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8.50전이다. 신용카드를 주니 $10 미만은 안 받는다고 한다. 현찰이 없어 매우 난감하다. 뒷사람이 주문하도록 옆으로 비켜서서 가방을 뒤졌다. 작은 지갑에 있는 동전도 꺼내 보지만, 턱도 없이 모자랐다. 당황하기 시작했다. 현금 기계가 어디 있는지 주위를 살피는데 순간 계산대 아가씨가 오렌지 주스를 건네준다.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니 뒷사람이 주문하며 나의 주스 값도 냈다고 한다. 돌아보니 키가 크고 잘생긴 중년의 남자가 웃고 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적은 돈도 아닌데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쇼핑몰 안에 있는 현금 기계에서 돈을 찾아 드리겠다고 했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Merry Christmas’ 하고는 웃는 얼굴로 자리를 떴다.

  순식간에 떠난 그분에게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도 못 하고 말았다. 그분이 사준 주스 맛은 여태껏 마셔본 것 중 가장 달콤하고, 시원한 오렌지 주스였다. 신선한 과일 향기와 훈훈한 온정이 담긴 주스의 맛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요즈음처럼 메마르고 각박한 세태에 꽃보다 아름다운 마음이 있다는 건 매우 기쁜 일이다. 감동에 젖은 내 마음은 풍선처럼 하늘로 나른다. 세상은 보면 볼수록 참으로 아름답다. 따뜻한 마음과 밝은 웃음을 주는 사람이 있기에 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난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큰 축복이다. 작은 것이라도 주고받는 온정이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사회,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세상이 나는 좋다.

  받는 것보다 주는 일이 얼마나 기쁘던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모에게 받고, 선생님에게 받고, 형제, 친구에게 받은 것이 내가 나눈 것보다 훨씬 많다는 생각이 든다. 주지 않고 받기만 한다면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나오는 스크루지와 무엇이 다른가? 이제부터는 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주고받는 것은 물건뿐만 아니라 포근한 눈빛도 따뜻한 아름다운 마음도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작은 선물이라도 내가 아는 모든 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 다시 백화점으로 들어가 양말과 장갑을 샀다. 우편물을 전해주는 아저씨와 쓰레기 치우는 아저씨에게 마음 담은 선물을 주고 싶다. 신문 배달하는 학생에게는 따뜻한 목도리를 건네고 싶다. 나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선물로 받은 작은 주스 한잔이 울림의 메아리가 되어 내 가슴을 움직이게 했다. 그 고마움이 오랫동안 긴 여운으로 이어졌다.

  몇 달 전의 일이다. 남편과 함께 시내에 있는 공인회계사를 만나러 갔다. 도로 주차 미터기에 필요한 시간만큼 동전을 넣고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때마침 순찰 경찰이 주차 미터기 앞에서 시간이 초과한 차에 벌금 티켓을 떼고 있었다. 바로 옆 주차한 차가 시간이 지난 것을 본 남편은 경찰관이 오기 전에 동전을 옆 차의 미터기에 넣고 시간 연장을 해 주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작은 일이지만 남의 일에 관심을 두고 벌금을 물지 않게 해주는 남편의 자상하고 따뜻한 마음이 나의 입가에 웃음을 남겼다. 소금 3%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 마음 안에 있는 3%의 고운 마음씨가 나와 이웃의 삶을 풍요하게 만든 사실이 긴 여운의 미소로 이어졌다.

  누구나 선물을 받고 나면 즐겁고 행복해진다. ‘Pay it forward’라는 말이 있다. 어떤 도움을 받았을 때 감사한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지급한다는 뜻이다. 이런 선행이 잔 물결(ripple effect) 처럼 전달된다면 행복의 바이러스가 세상에 넘칠 것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다운 낙원이 될 줄로 믿는다.

  찬란한 2022년 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이 밝아온다. 고요한 아침의 문이 열린다. 내 남은 삶이 얼마가 남아 있을지 몰라도 누구든지 나를 만난 사람은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그래야 나도 성숙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금방 비가 올 것 같은 잿빛 하늘도 오늘은 밝아 보인다. 비가 내려도 좋다. 풍족한 느낌으로 가슴을 채운 아름다운 오늘은 복되고 값진 하루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잊고 살던 행복의 바이러스가 내면의 세계를 들춰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가슴이 따뜻해진다. 내 마음속에 갇힌 맑은 영혼들이 무지개로 피어나 새로운 행복과 사랑의 흔적을 남긴 하루였다.

List of Articles
제목 작가

신광수 수필가

복권 이야기 신광수 복권 이야기만 나오면 왜 그렇게 미소가 지어지고 가슴이 두근두근해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설레는 것만은 사실이다. 온통 신문과 뉴스에서 몇 주째 1등이 나오지 않는다고 몇백억이라고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0의 숫자가 길게 나온다.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그 숫자를 보면 “오메, 이게 진짜 일확천금이네”. 머릿속이 쭈뼛쭈뼛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냥 스치는 생각이지만 자꾸만 Who knows?를 되새기며 사람 일을 누가 알아, 나에게도 혹시…. 돈벼락을 맞을지 아니면 ...

별이 빛나는 밤

작가 홍 성 표 수필가 

별이 빛나는 밤 홍 성 표 벽장에 꽂혀 있는 오래된 책을 뒤적거리다 우연히 고흐(Vincent Willem van Grogh 1853~1890)의 유화 ‘별이 빛나는 밤’ 작품을 보게 되었다. 그냥 지나칠 뻔하다가 별이라는 제목에 내 눈을 멈추게 했다. “별? 작품명이 별로 시작한다……” 문뜩 나의 이름과 비교해 본다. 나의 이름은 홍성표(洪星杓)다. 한자로 풀이하면 ‘넓고 큰 하늘의 별 자루’란 뜻이다. 이런 이유가 겹쳐 다시 한 번 작품을 유심히 드려다 보았다. 유별나게 크게 그려진 노란빛 그믐달과 ...

감자꽃 길 따라 [1]

작가 김혜자 수필가 

감자꽃 길 따라 나의 첫 수필집이 출판되었다. 큰일 했다는 충만함에 가슴이 뛴다. 더욱이 출판에 온 정열을 쏟아 주신 스승의 배려로 조국 산천 여행길에 올랐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黃砂)를 걱정했지만, 며칠 전에 내린 비가 말끔히 씻어줬다. 에메랄드빛 바다처럼 하늘은 맑은 공기로 가득하다. 산자락을 타고 흘려 내려온 아카시아 꽃향기가 내 후각을 흔들고 지나간다. 향기를 붙잡아 손으로 어루만져 보고 싶지만 갈 길이 멀다. 뜨겁게 달구던 시심(詩心)을 외면하고 구름이 흘러가듯 나도 떠난다. 중부 내륙 고속도로를 달린...

하얀 파도꽃(넌픽션 당선작) [2]

작가 홍용희 

하얀 파도꽃 홍용희 -나의 항구 기온이 화씨 100도를 넘던 날 오후, LA에서 가까운 헌팅턴 비치(Huntington Beach)에 갔다. 끝없이 펼쳐진 고운 모래 위에 샛노란 햇살이 비치고 파도는 포말이 채 지기도 전 또 다른 하얀 파도꽃을 피우고 있다. 수평선에 걸린 해의 뒷모습은 내 모국의 석양을 방불케 하다가 주홍빛으로 하늘을 가득 물들인다. 태양의 뒷모습은 검붉은 울음을 토하게 했던 내 지난날을 불러왔다. 미국에 사는 여고 동창인 단짝 친구, 남자 이름을 가진 강석태. 지금은 수잔 리, 결혼 후 남편 성을 따라 이씨가 된 친구다....

처용가 뒤집어 보기

작가 명계웅 평론가 

처용가 뒤집어 보기 명계웅 예전 국어고문시간에 우리가 배웠던 삼국유사에 전해진 신라 향가 ‘처용가’는, 동해 용왕의 아들인 처용이 A.D 879년경 신라 헌강왕의 눈에 들어 급간이라는 벼슬과 미모의 아내도 얻어 정사도 돌보며, 동경 밝은 달밤에 밤드리 노딜다가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어가 보니 “가라리 네히어라. 둘은 내해엇고 둘은 뉘해인고? 본대 내해다마는 앗아날(빼았겼으니) 어찌하릿고!” 그러면서 처용은 불륜현장을 덮치지를 아니하고, 그냥 밖으로 나와 달밤에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고 전해...

주평 선생님과 만남 그리고 이별 [2]

작가 남중대 수필가 

주평 선생님과 만남 그리고 이별 남중대 “중대야. 내가 90살까지는 활동할 수 있겠제?” 선생님은 나와 책상머리에 앉을 때마다 나에게 묻고 확인하는 말이었다. 자신의 건강에 대한 불안함이었을까? 아니면 멈출 줄 모르는 연극과 문학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을까? 1990년, 내가 이곳 산호세에 새로운 삶의 둥지를 틀기 위해 이민보따리를 풀면서, 주평 선생님과 숙명적인 만남은 시작되었다. 한국아동극의 개척자로, 수많은 아동극본을 발표하고 그 극본으로 한국 최초로 아역배우를 연극무대로, 영화스크린으로 배출해낸 아...

나의 수의 [1]

작가 허정자 수필가 

나의 수의 허 정 자 오늘 모처럼 집에 쉬면서 이매방류의 살풀이춤을 아이패드로 보다가 생각난 것이 있다. 몇 년 전 신문 살풀이춤 강습이 다섯 번에 걸쳐 있다는 기사를 읽고 꼭 가서 배워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강습이 있었는데 첫 번째 강습을 못하게 되었다. 마침 그날 무슨 행사가 있어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단체장을 맡고 있던 때라 빠질 수가 없었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에 발레를 했으나 언젠가 살풀이춤을 보고 완전히 그 춤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러나 고전무용은 한 번도 배워 본 적이 없다. 그...

하얀 배 [1]

작가 이언호 희곡작가 

하얀 배 이언호 미주에서 우리말 방송과 우리말 신문이 얼마나 더 발전할 것인가? 어느 날 친구와 <미국 속의 한국말 언론에 관한 노파심에 대해서> 이런 문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이 미국 땅에서의 한국말 언론은 1,5세가 기성이 될 때쯤 해서는 그 존재 여부도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그 친구는 미주에서의 한국 언론의 발전에 관해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말했고 나는 긍정적인 생각을 말했다. 그 친구는 한국어 신문을 생업으로 삼고 있으니 그 흐름의 예즉같은 것이 있겠지만, .다시 말하면 그 ...

치마폭의 찐빵 [1]

작가 박영옥 수필가 

치마폭의 찐빵 박 영 옥 찐빵은 나에게 참 정겨운 빵이다. 언제 어디서 먹어도 맛있고 또 먹고 싶어진다. 세월 따라 많은 것은 변하고 또 변하고 싶어 안달인데 찐빵은 한결같다. 고작, 속에 넣는 앙꼬나 달라졌지 모양도 크기도 별달라진 것이 없다. 세상 어디에 우리네 찐빵만큼 사랑받는 빵이 있을까.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라도 어울리는 참 소박한 빵이다. 한겨울, 갓 쪄낸 찐빵을 호호 불면서 옹골차게 든 앙꼬와 빵 겉 부분을 적당히 한 입 베어 잘 섞어 먹는 맛은 우리만 아는 비법일 게다. 빵을 다 먹을 때까지 ...

제자의 고백 -2014년 《한미문단》수필 가작- [2]

작가 이복자 수필가 

제자의 고백(告白) 이 복 자 그 시절은 6·25사변 직후라 모두 가난하고 어려운 시기였다. 나는 고향에 있는 모교인 초등학교로 발령받았다. 처음 시작하는 직장생활이라 설렘과 두려웠던 때가 까마득한데 추억은 생생하게 그대로 남아있다. 건물은 폭격으로 반 이상이 폐허 되고 넓은 강당과 교실 10여 개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강당을 여섯 교실로 나누었다. 그중 한구석에서 학생들은 송판에 네 다리를 세운 조그만 책상을 각자 가져왔다. 찬 마룻바닥에 앉아 오들오들 떨면서 매서운 추운 날씨였지만 ...

맥다방의 랩소디 [1]

작가 지상문 수필가 

맥 다 방 의 랩 소 디 (Mc. Donald’s Rhapsody) 지 상 문 길가 창 옆으로 자리를 잡아 창 밖을 내다본다. 차들이 달려오고 달려간다. 사람의 물결이 파도처럼 기세 좋게 밀고 와서 철석 한 번 때리고 부서진다. 부서진 흔적은 밀려 내려 다음 파도에 휩싸인다. 오후 한 시가 넘으면 맥 다방은 그리 붐비지 않는다. 옷깃 스치는 소리와 함께 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옆자리에 앉는 사람이 있다. 영감이 된 지 꽤 오래된 자다. 그렇게 불러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나이다. 남보다 10년은 먼저 와서 가발장사로 한 몫 잡고 전자제...

텃밭 [1]

작가 강정애 수필가 

텃밭 강 정 애 오늘 정원사에게 뒷마당의 텃밭을 일궈달라고 부탁했다. 올해는 아무리 바빠도 텃밭 농사를 하려고 생각했다. 7년 전에 캘리포니아에 이사와 첫 3년간 열심히 텃밭에 여러 가지 채소를 길러 먹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시골 마을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항상 그 시절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고 함께 뜀박질하던 친구들의 풋풋한 향수가 달려오는 듯 한때가 자주 있다. 그중에서 지금도 잊지 못하는 기억은 친정집 뒷마당의 텃밭이다....

독서의 묘미 [1]

작가 신성철 수필가 

독서의 묘미 瑞奉 신성철 93세 노인이다. 어릴 때부터 책이 좋아 가까이에 두고 평생을 읽고 있다. 사람마다 읽는 방향이 다르다. 그래서 지금 쓰는 묘미는 내 묘미다. 늙은이의 넋두리다. 일본사람들이 36년 동안 우리나라 역사책은 전국을 뒤져서 다 태워버렸다. 우리 역사를 자기들 맘대로 새로 썼다. 이 역사책이 제국사관 역사책이다. 상고사에서 단군시대가 신화라고 송두리째 지워 버렸다. 그러나 광복이 되고 1983년부터 윤내현 교수가 피나는 노력으로 참된 우리나라 상고사를 찾아내었다. 교과서까지 수정하게 하였다. 중국의 &...

8부 능선을 따라가라 [1]

작가 이주혁 

8부 능선을 따라가라 이 주 혁 비가 갠 저녁, 앞산의 등고선이 파란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하다. 학군단 유격 훈련으로 야간 산행을 할 때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산등성을 따르지 말고 8부 능선을 따라가라!”라는 교관의 명령이 생각난다. 어쩌면, 지난날의 나의 삶은 남보다 드러나기 위하여 산등성을 타려고 애써온 것 같다. 1984년, 이민 온 약사들이 미국에서 약학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평가시험을 거처 약사 면허 시험을 볼 수 있는 제도가 시작되었다. 가주 한인 약사회를 중심으로 미국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

오쏘

작가 정덕수 수필가 

오쏘(곰) 정덕수 해 저무는 저녁, 나의 충견 퍼픈과 함께 눈 덮힌 호숫가를 걷고 있었다. 신바람이 난 퍼픈은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대지에 침입자가 된 듯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며 깨끗한 눈밭을 마구 뭉개고 다닌다. 멀리 앞질러가던 갑자기 동작을 멈춘 퍼픈이 전방을 노려보며 다급하게 짖어대고 있다. 그걸 본 나는 눈 위를 버벅대며 퍼픈의 발자국 따라 그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도착하니 까만색의 짐승 새끼가 눈 속에 반쯤 묻혀 있었다. 이놈은 퍼픈과 나를 번갈아 보며 입이 찢어지라 괴성을 질러댔고, 파란 눈은 공포에 질려 ...

파푸아 뉴기니어 생활 [1]

작가 배원주 수필가 

파푸아 뉴기니어 생활 배원주 오늘 DVD를 빌려 영화 ‘아바타‘를 봤다. 이미 본 작품이지만 구상과 화려한 화면 그리고 생생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30여 년 전, 열대지방에서 근무할 때 생각이 많이 났다. 원시 부족과 문명인이 자원쟁취 문제로 싸우는 3D입체 애니메이션 영화다. 나는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 근무하고 돌아온 지 2년 만에 1980년대 중반, 파푸아 뉴기니어(Papua-neuguinea) 현장에서 2년 동안 파견근무를 했다. 이 나라는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 위도상 적도 바로 밑 남반구에 있다. 호주로부터 독...

루비와 샌디 [2]

작가 김평화 수필가 

루비와 샌디 김 평 화 한국에 온 지 6개월, 우리 부부는 손녀의 돌잔치를 위해 남편까지 이곳에 와있다가 다시 하와이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내가 쓰던 방에 널려있는 소지품과 물건들을 가방에 넣으며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시원섭섭했다. 그동안 예쁜 손녀를 출산한 딸을 잠시 도와주기 위해 와 있었다. 루비와 샌디는 눈을 크게 뜨고 꼬리를 흔들면서 내 주위를 돌고 있는 있다. 뭔지 모르지만, 이상한 느낌을 받았나 싶다. 처음에는 루비와 샌디는 함께 하와이로 같이 가기로 하고 수속을 다 받아 놓은 터였다. 딸은 사위가 일 가...

내가 겪은 현대의학

작가 안상선 수필가 

내가 겪은 현대의학 안 상 선 눈부신 현대의학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이 100세를 넘나들며 사람들은 건강에 관해 많은 관심을 둔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염색체 변형을 이용한 선천성 질환의 근본적인 치료와 예방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인간복제의 가능성은 의학의 도덕성과 윤리관에 대한 열띤 토론이 한창이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의 초조하고 마음 졸이는 나날들이 있는가 하면, 불법으로 사람의 장기를 채취하여 이를 매매한다는 외국기사를 접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마음이 착잡해진다. 내가 평생 몸담아왔던 신...

협곡에서 본 미소 [1]

작가 이숙이 

협곡에서 본 미소 이숙이 돌산이었을까? 흙으로 빚어진 바위였을까? 비와 바람과 오랜 세월이 협곡을 만들고 거대한 바위를 갈라놓아 희귀한 모양이 되어 있다. 구불구불 갈라진 틈새로 태양 빛이 스며들 때 프리즘 작용의 신비로운 색상과 모양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갈라진 바위틈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의 머리는 위로 향해 젖혀져 있고 카메라 들어 올린 두 팔도 위로 뻗어, 온 정신을 집중하고 심오하게 만들어진 무늿결 바위 모양에 감탄하며 카메라에 담는다. 많은 관광객이 비좁고, 조금은 어두운 곳에서 숨죽이고 한 발...

그리운 봉선화 [1]

작가 정순옥 수필가 

그리운 봉선화 蒑池 정순옥 봉선화. 왜 이리 고향의 봉선화가 보고 싶은 걸까? 내가 고향에 두고 온 것 중에서 가장 많이 생각나게 하는 꽃이다. 요즈음도 눈 감고 고향 생각을 하면 봉숭아가 터지고 눈 뜨고 숟가락을 만져도 따다닥 터지는 소리로 변한다. 손을 살짝이라도 대면 씨방을 터트리면서 반가움을 표시하는 봉선화 생각뿐이다. 어느 날부터 나는 재미동포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를 앙다물고 살아야 한다.”라는 어머니의 말씀 따라 힘든 디아스포라의 삶에서도 고향을 잊지 않고 인내하며 살아야 했다. 그 힘의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