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나의 빛, 우리의 빛
박현성 (서울대학교 학부생 학부모)
1. 푸는 말
이 포럼의 자리에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우리 자녀가 다니고 있는 이 학교와 자식 같은 우리 학생들을 위하여 늘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는 서울대 학부모기도회 의 한 일원으로서 '서울대 인권가이드라인'을 두고 여러분의 어머니들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함입니다. 이는 이번 포럼의 주제가 우리 사회의 근간인 ‘가정’의 존속 여부와도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2. 포럼을 지켜보며
Veritas Lux Mea! 진리는 하나이어야 하건만 서울대학교 인권가이드라인에서는 내용에 대한 해석을 놓고 이견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의 1차 포럼에서 다루었던 차별금지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을 함께 검토해 본 바, 동성애 허용의 문제의 심각성을 재차 확인하였습니다. 이어서, 우리가 오늘 포럼에서 다루었던 '서울대 인권가이드라인'도 그와 맥락을 같이 하는 동일선 상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차별금지, 폭력금지, 강요금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용어는 우리 학부모들도 모두 환영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여러 역차별의 여지들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매년 6월이면 서울광장에는 동성애자들의 행사인 퀴어 축제와 이에 맞서는 반대 주장의 단체들이 곳곳에서 충돌 합니다. 그리고 이 현장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는 대다수의 시민들이 있습니다. 일련의 무관심과 혹은 단순한 호기심, 아니면 미화된 동성애에 대한 동정심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정작 '성소수자'란 명칭에 교묘히 끼어들어 숨어있는 그 실체를 파악하기에는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그 심각성에 무지했던 것입니다. 저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나의 자녀가 처한 상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허용의 범위가 확장 되어가고 그 심각성이 구체화됨에 따라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가정’이 해체되고 우리가 후대에 전수해 주어야 할 도덕적, 윤리적 가치 기준이 흔들리게 되는 위기에 직면하여 이 문제에는 예외의 적용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퀴어 축제의 영상이 주는 충격은 컸습니다. 매스컴과 미디어를 통하여 접하게 된 생생한 현장들은 여과 없이 그대로 보이는 음란과 선정성으로 가득 차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심한 거부감을 불러왔으며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자녀들에게까지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점은 너무나 불편한 현실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인권을 가장한 쾌락주의와 성도덕, 윤리 문화의 쇠퇴를 보는 심정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마치 우리 사회가 동성애를 정상적인 행위로 용인하는 것처럼 자녀들에게 비춰질까 하여 가슴이 조마조마 하였습니다. 기성세대 그 어느 누구라도 이 행사에 대하여 많은 우려와 극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음은 그 누구도 부정 하지 않는 공통의 생각일 것입니다.
이 사건이 제 뇌리에서 잊혀질 즈음에 이 포럼이 구상되어 저는 이웃들과 이 포럼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화는 초반부터가 논쟁이 되었습니다. 저는 세상이 창조될 때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고 했고, 제 이웃은 그리고 제3의 성이 있다고 하여 거기서부터 출발이 달랐습니다. 동성애 반대의 목소리에 대하여 제 이웃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동성애를 선택한 것이니 그러므로 그 결과로 에이즈에 걸린다면 그것 또한 그들이 책임질 문제이지 우리가 왈가왈부 할 문제는 아니지”라고 합니다. 그것은 그 치료의 전부를 우리의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입니다. 결국 저와 제 이웃의 대화는 그 어디에서도 타협점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이처럼 우리의 가치관은 삼삼오오 분열되어 가고, “가하다, 불가하다” 식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저는 이 동성애 찬반의 문제가 그냥 허용과 용납의 의미만이 아닌,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라는 세계관의 충돌이란 걸 알았습니다. 우리의 자녀가 앞으로 살아내야 하는 세상은 이제 드러내어놓고 이 전쟁을 치러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기성세대가 배워 온 철학 중에는 성악설과 성선설이 있습니다. 물론 많은 사상들이 때를 따라 유행하고 유명한 철학자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거듭하며 인류의 역사는 흘러왔습니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들은 성선설을 더 선호합니다. 인간의 강한 의지와 선한 양심을 높이 인정하고 싶어 하고, 자신을 썩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며, 스스로를 그렇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 우리의 죄 된 속성을 그대로 투영해줍니다. 성경의 로마서 말씀에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정체가 성악설에 더 가깝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것을 부인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내야 하는 다음 시대는 동성애를 단지 '다른 성적 표현'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이제 그 위기가 우리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도 몰아쳤습니다. 작게는 서울대 인권가이드라인 이지만 이것이 확장되어 차별금지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에도 영향을 줄 것입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범위 안에 성적지향, 즉 동성애 허용까지 포함된 것은 실로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가져올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동성애가 허용된 외국의 많은 사건들이 우리에게 시사하여 주는 바는 분명합니다. 동성애가 허용된 국가, 캐나다에 살고 있는 친구가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학교에 가면 배워오는 동성애 교육은 ‘가정’의 구성원이 ‘부모-자녀’가 아니라 ‘파트너–자녀’라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캐나다 토론토 교육청은 유치원에서부터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는 정상이라는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편견이나 차별이 없고, 왕따가 없는 학교, 보다 안전한 교육환경을 만든다는 미명 하에 동성애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는 교육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Bill 13’ 법안의 통과로 캐나다 교육은 전통적인 결혼관, 가정관, 성별, 성 활동의 개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개념을 가르칩니다. 개인은 타고난 성별을 부인하고 성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이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식의 성교육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이로 인하여 사회의 전통적 개념을 무너뜨리고 모든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지금 캐나다에서는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문제는 캐나다에서 일어났던 이 모든 시행 절차 과정이 무서우리만큼 똑같은 수순으로 우리의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와 서울시 같은 지방 자치 단체 차원에서 ‘인권조례’라는 이름으로 진행시키려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기관들은 캐나다의 사례를 접어두고 동성애 허용에 대해 성소수자의 인권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일을 진행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야 하는 세상은 ‘부모’라는 존재의 의미가 해석 불가능한 시대로 다가 오고 있습니다. 들려오는 뉴스 속 사건, 사고의 소식들은 우리로 하여금 윤리와 도덕이 붕괴한 단면들을 추려 모아 보내주는 시리즈물 같습니다. 모든 언론이 '동성애'를 아름답게만 포장하고, 이처럼 잘못된 '인권'만을 강조한 결과, 우리는 드디어 남자와 남자가 결혼하겠다고 동성부부의 혼인신고를 처리해달라며 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제출하는 광경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혼인이 온전한 ‘가정’의 모습이 되어줄 수 있을까요? 아버지-어머니 역할의 부재로 생겨날 많은 문제들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수용해 나갈 수 있을까요?
자녀를 둔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은 다 같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훈육하여 건강한 사회인을 배출하는 것이 가정의 순기능이라고 믿고 그렇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습니다.
언제 커서 제 살 궁리를 할까 반포지효는 고사하고 어서 스무 살이 되어라
그때가 되면 마음이 놓일까만 아들이 육순이 되어도 팔순 노모는 아들을 걱정한다는데 지금까지 자란 것에 무사태평일세. -(은파 오애숙)
이 시가 곧 우리 부모의 마음이며 자녀에 대한 우리의 사랑임을 읽는 우리는 모두 공감합니다. 그런데 이 시가, 우리의 진정성이 이제 먼 옛날의 진부한 가치관으로 치부되어 버리는 미래가 온다는 겁니다. 서울시는 인권정책 기본계획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인식 개선을 위한 인권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한답니다. 또 동성애를 정상으로 인정하는 학생인권조례와 청소년인권조례를 만들어 통과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문화의 가장 귀중한 기초가 맹공격을 당하여 와해되어가는 것을 바로 눈 앞 에서 지켜보고 있어야 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바로, 태초부터 존재해 왔던 ‘가정’이 공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공격은 매우 다각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동성 간의 결혼,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성적 부도덕성, 조금도 인내하지 않겠다며 급증하는 이혼, 그리고 살아 본 후 결혼을 결정하겠다며 쉽게 시작하는 동거 생활과 드러난 혼외 자녀에 대한 수용 등등 입니다. 이러한 사태들은 우리 시대의 죄악 된 모습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의 죄악 된 사회는 타락과 퇴보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기입니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정신문화를 전수하는 가장 큰 임무로 모든 인류는 ‘가족’이라는 단위 안에서부터 시작하여 살도록 처음부터 지음 받았다는 사실을 간과하려 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시작부터 가정 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자녀들에게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필수조건으로 그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근간입니다. 성경 창세기에서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시고 자녀를 낳아 땅에 충만하고 번성하라 이 세상을 다스리라 하셨던 겁니다. 인류 사회에서 아버지는 지도자, 부양자, 보호자의 역할을, 어머니는 양육자, 보호자, 공감자의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이 둘이서 함께 힘을 모아 부모로서 자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결정하고 공급해 주었습니다. 이 역할을 통하여 다음 세대에 신성한 진리를 전수해주었습니다. 이것이 이제 까지 지켜져 내려오고 계승 받아온 건강한 모습의 가정 모델이었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지금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이 갈등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제껏 우리가 알아 왔던 세상의 진리들이 그 빛을 잃어가고 그 자리를 대신하여 각자의 가치관이 곧 기준이 되어지는 포스터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세대 간 이해에 있어서 큰 격차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직면한 현실입니다. 그 중에 가장 뜨거운 감자는 동성애 허용에 대한 찬반 일 것입니다.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으면 현대 문화에 마치 무지한 자처럼 보이고, 동성애를 인정하자니 이제까지 전수되어 온 가정관의 붕괴를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대 간 통계 결과를 보니 2,30대 젊은 층은 동성애를 인정하자며 한 발 더 나아가 동성결혼 합법화에도 긍정의 의견이 많아졌습니다. 우리 기성세대의 반대에 대해서는 고정 관념과 편견, 자기네 잣대로 남을 평가 하려드는 문화 상대주의라며 우리의 우려를 무시해 버립니다. 동성애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 어머니들은 현 상황을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학교에서는 전통적인 기준과 가치관이 사라져 가려하고 있습니다. 평등 이라는 명목 하에 남성과 여성의 성적 역할의 구별이 모호해지고, 성적지향 차별금지 이름으로 정상과 비정상에 관한 모든 개념이 혼란스러워지며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의 보호라는 용어 안에는 모든 것이 허용되어 지는 교육현장에 우리의 자녀들이 아무 분별력 없이 그대로 노출 되어지 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지금 인권운동가마냥 투사의 정신으로 세상에 대고 외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때까지 지켜 내려져 온 가족관과 가정의 전통이 흔들리는 혼돈의 세상을 막고자 다음 세대의 주력이 될 여러분에게 우리의 심정을 호소하는 바입니다.
3. 맺는 말
이 포럼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학생식당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식당 안 큰 벽에 다음의 시 한 구절이 씌어져 있었습니다.
“겨레의 뜻으로 기약한 이 날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민족의 위대한 상속자
아 기리 빛날 서울대학교
타오르는 빛의 성전(聖殿)에 있으니
누가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그렇습니다. 이 시대의 선도에 서울대학교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지성과 합리성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서울대학교는 현 한국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은 온 국민이 동의하는 바일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인권 가이드라인이 통과되면 그 결과는 온 대학가 그리고 교육계 전반에 동일한 문제들을 일으키게 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또한 역으로 이 같은 맥락의 차별금지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안들 또한 그대로 통과하여 효력을 발생하게 되면 그 대가로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어 온 '가족' 이라는 개념의 상식과 윤리, 도덕적 근간을 이루어 온 사회적 안전장치가 해제되어 위협 받게 됨은 자명한 일입니다.
서울대학교가 빛의 성전(聖殿)이기 위해서는 진리를 사수하는 성전(聖戰)이 필요합니다. ‘성소수자’라는 이름 안에 교묘히 숨겨진 ‘동성애’의 진실을 정확히 이해해야 할 뿐더러,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 허용이 제도적 장치와 기관을 통해 합법화되는 것을 필히 막아내는 싸움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비극의 나쁜 점은 악인들의 잔인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인들의 침묵에 있습니다.’ - 마틴 루터 킹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 .’ -본 회퍼
다음 시대의 가정 해체의 비극을 막아내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정의가 되기 위하여 여기 모인 우리가 이 포럼을 통하여 빛의, 진리의 성전을 사수하기 위하여 함께 고민하며 함께 행동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서울대 동문참여광장 [자유게시판]에서 발취=
안녕하세요. 그 동안 별일 없으셨는지요. 건강 상태도 많이 궁금합니다. 저는 샌프란 시스코에 다녀와 한 달 정도 열심히 시조만 썼는데 지금은 눈 시력에 많은 문제가 생겨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못하고 있답니다. 늘 건강하사 향필 하시길 바랍니다. 얼마 전 지인의 전화 내용 있어 이름을 쳐 보니. 제 시가 인용되었더군요. 하여 요즘 입양 된 저의 시 100편 정도를 내년에는 시집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서울대 기독학생회 동문회 학보모 토론 연설문의 내용에 저도 동의하는 맘도 있어, 제 시를 그곳에서 입양해 인용한 거라 이곳에 제가 올려도 문제가 안 될 것 같아 이곳에 올려 놨습니다. 관심 갖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번 시간 내서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차 한 잔 했으면 합니다. 아니면 문인협회 문학의 밤에 만나도 되고요.
http://www.snuca.org/free/93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