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낙균 사진사

조회 수 427 추천 수 1 2022.04.19 12:08:53

이삿짐 쓰레기로 버려지기 직전 기적처럼 발견된 이 사진

한겨레 2022.04.13 18:45

 

[작품의 운명]

 

사진가 신낙균의 숨은 명작들

 

 

 Untitled-1.jpg

 -최승희 무용가

 

, 저 상자는 뭐지?”

 

낡은 한옥의 대청마루 아래 어두컴컴한 구석에 팽개쳐진 궤짝 하나. 거기에 20세기 초 한국 사진의 역사를 담은 명작들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19759, <동아일보> 출판사진부의 30대 기자였던 최인진은 신문사 대선배인 사진가 신낙균(1899~1955)의 수원 옛집을 찾아갔다가 한국 사진사에 길이 남을 대발견의 주역이 된다. 한옥 마룻장 아래에서 일제강점기인 1920~30년대 신낙균의 주요 작품들과 관련 사료들이 담긴 궤짝을 찾아낸 것이다.

 

최인진은 몇년 전부터 한국 사진사 정리 작업을 시작해 틈틈이 연구활동을 벌이던 중이었다. 신낙균이 일제강점기 사진계에서 활동한 자료 실물들을 연구 자료로 확보하고 싶어 방문했더니, 하필이면 그 집안이 이사 준비로 부산했다. 며칠 뒤 서울로 이사를 앞둔 후손들은 부친이 과거 사진가로 활약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집 안에는 사진과 관련된 유품들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유족의 소략한 증언과 부인의 일기 정도만 파악하고 서울로 돌아가려니 최인진은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집 앞 대문에서 떠나려다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어 뒤돌아 한옥을 쳐다봤다. 그때 마룻장 아래 처박혀 있던 낡은 상자에 극적으로 눈길이 꽂혔다. “이게 뭐냐?”고 묻는 그에게 유족들은 잘 모른다. 전부터 있던 것들인데 서울로 이사 가면 버릴 쓰레기라고 했다. 눈에 불이 켜진 최인진은 다짜고짜 상자를 꺼내어 뒤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신낙균이 1920~30년대 찍은 자화상들과, 당대 세기의 춤꾼으로 불렸던 불세출의 천재 무용가 최승희가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며 인사하는 사진들이 은염을 입혀 인화한 원본 빈티지 프린트로 생생하게 드러났다. 그뿐이 아니었다. 1927년 신낙균이 졸업한 일본 도쿄사진전문학교의 졸업앨범과 1927년 그가 교수로 부임한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학교 사진부의 졸업앨범 등 한국 사진사 초창기의 소중한 아카이브 자료들도 무더기로 들어 있었다.

 

 Untitled-22.jpg

-신낙균 사진사

 

 

자칫 이삿짐 쓰레기로 사라질 뻔했던 한국 사진사의 놀라운 재발견이었다. 근대적 자아로서 주체의식이 충만한 신낙균의 자화상은 1920년대에 이미 한국 사진계에 작가의식을 가진 아티스트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발견된 사진들이 알려지면서 당장 신낙균을 근대 사진사의 선각자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대표작이 됐다. 특히 신낙균이 서울 종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인공조명을 밝히고 앙증맞게 찍은 최승희 무희상은 이후 최승희의 대명사와도 같은 이미지로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지금 이 사진사의 명작들을 대구 이천동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열리고 있는 박주석 명지대 교수의 <한국 사진사> 발간 기념전 ()에서 진()으로’(51일까지)에서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1920년대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조선의 근대 사진교육과 예술사진 운동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신낙균의 예리한 작가적 시선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뜻깊다.

 

신낙균은 도쿄사진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조선 최초의 사진 저술서 <사진학 강의> 등을 펴내며 사진의 학문적 체계를 정립했다. 1936<동아일보> 사진부장으로 재직하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사진을 실으면서 유니폼의 일장기를 없애버리는 사건을 주도해 고문을 받고 해직됐다. 이후 은둔생활을 했으며 해방 뒤 수원북중학교에서 화학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한국전쟁 직후 별세했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신낙균은 잊혀가던 인물이었다.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 뒤로 언론계와 사진계에서 쫓겨나 평범한 교사로 생을 마쳐야 했던 그를 사후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다 사후 20년 만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둔 마룻장 아래 상자에서 한국 사진사상 빠질 수 없는 명작들이 빈티지 프린트 상태 그대로 발견됐으니 기적적인 행운이 따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유물들은 불과 며칠 뒤면 이삿짐 쓰레기로 처분될 신세였으니까 말이다. 사진기자였던 최인진의 직감과 뒤돌아본 시선 덕분에 우리는 한국 사진사의 소중한 사료들을 고이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세간에 널리 각인된 최승희가 1920~30년대 조선의 사진가들 사이에서 중요한 모델이었고, 이를 증거하는 그의 발랄한 모델 사진이 기적적으로 발굴됐다는 사실을 지금 후대인들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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