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
정순옥
소리는 생명이다. 소리는 삶의 움직임이다. 살아 숨 쉬는 소리가 있으면 생명이 있는 생물이고, 소리가 없으면 무생물이 된다. 사람이나 자연은 여러 종류의 소리를 낸다.
사람과 자연은 어떤 소리로 교감하며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가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나 싶다. 한 세월을 지내면서 사람과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때로는 내면의 소리도 들으면서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보편적인 삶, 평범한 인생살이에서 행복은 싹트지 않나 싶다. 자연에 사계절이 있듯이 인생살이도 사계절이 있는 듯하다.
인생살이엔, 봄이라고 생각되는 유년기 시절, 여름이라고 생각되는 청년 시절, 가을이라고 생각되는 장년 시절, 겨울이라고 생각되는 노년시절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과 자연은 비슷한 소리로 정서적 교감을 하면서 사계절을 보내는 듯하다.
소생의 계절, 봄이 오는 소리는 자연의 소리로부터 오는 것 같다.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들어보면 겨우내 얼었던 얼음장이 깨지는 소리, 땅속에서 잠자던 개구리가 부석이면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땅속에서 새싹이 움트는 소리. 새싹이 무거운 흙덩이를 머리에 이고 끙끙거리며 세상 밖으로 나오는 환호성 소리. 살구꽃이 따사로운 햇빛 아래서 팍!팍! 열리는 소리. 갯버들에 물기 오르는 소리로 생명이 새롭게 시작되는 시절이다.
봄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의 소생의 계절은 이 세상에 새 생명으로 탄생하는 순간, 첫 호흡 소리를 응~야~ 하면서 시작된다. 아기가 엄마의 젖 빠는 소리, 새근새근 잠자는 소리, 옹알거리는 소리. 귀여운 발음으로 맘-마를 달라는 소리. 자라나면서 서툰 걸음으로 학교에 가는 소리와 선생님과 친구들을 부르는 소리. 성장 호르몬이 왕성히 생성되어 에너지가 온몸에서 솟아나는 소리로 세포들이 자라나는 시기라 말할 수 있겠다.
약동의 계절, 여름이 시작되는 소리는 수목들의 녹음이 짙어지는 소리로부터 오지 않나 싶다. 소나기 세차게 쏟아지는 소리.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논에서 나락이 익어가는 소리. 녹음이 짙어 가는 미루나무 가지에 붙은 매미가 맴~맴~하는 소리. 야산에서 피어난 아카시아 꽃이 은은한 향기를 품어내는 소리. 수박이 빨갛게 사각사각 무르익어가는 소리로 생명이 활발히 움직이는 시절이다.
여름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의 약동의 계절은 학생들의 책장 넘기는 소리로부터 오는 것 같다. 젊은이들이 빛나는 꿈을 향해 삶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경쾌한 발자국 소리. 청춘남녀들이 사랑을 노래하며 열정적으로 통기타를 치는 손놀림 소리. 결혼식장에서 들리는 웨딩마치 소리와 축하의 환성 소리가 흥겹게 들리는 소리. 새빨간 장미꽃 향기에 취해 코를 들이대는 열정으로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 희망을 품고 직장에서 작업하는 소리와 컴퓨터 치는 소리로 사회활동이 왕성한 시기라 말할 수 있겠다.
결실의 계절, 가을이 오는 소리는 귀뜰! 귀뜰! 귀뚜라미 소리로부터 오지 않나 싶다. 가을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는 소리. 산천초목들이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소리. 야산에서 늦게 핀 구설초가 파아란 하늘을 보며 반가워하는 소리. 추수하는 농부들의 땀방울 떨어지는 소리. 개울가를 나르는 고추잠자리의 날갯짓 소리. 빨간 감이 따가운 가을 햇빛을 빨아 드리는 소리. 늙은 호박을 따러 가는 농부들의 발자국 소리. 야산에서 농익은 밤송이가 굳은 각질을 깨고 튀어나오는 소리로 만추의 시절이다.
가을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의 결실의 계절은 생활의 현장에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자녀들이 학업을 마치고 독립적인 생활을 선포하는 행복한 웃음소리.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자기의 꿈을 이룬 만족감에 환호하는 소리. 직장에서 승진파티에 맛보는 성취감에 생활이 물오르는 소리. 농부들이 넓은 들녘에서 추수하며 풍년가를 부르는 소리. 생활이 안정되어 가는 정서적인 충만감에 심장이 기쁘게 뛰는 소리.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탁에서 밥을 먹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웃어 대는 소리로 생활이 안정되어가는 시기라 말할 수 있겠다.
사색의 시절, 겨울이 시작되는 소리는 소록소록 내리는 첫눈으로부터 시작되는 기분이 든다. 처마에 달린 수정 같은 고드름이 부딪치는 소리. 차디찬 겨울바람에 문풍지가 팔랑팔랑 흔들리는 소리. 다람쥐들이 동굴 속에서 모아 놓은 알밤을 보듬고 사각거리며 까먹는 소리. 문틈으로 따스한 햇살이 스며드는 소리와 가만히 보고 있으면 햇살 사이로 작은 물질들이 움직이는 미세한 소리. 대나무 숲에서 이파리들이 서로 비비대며 추위를 이겨내는 소리. 찬 겨울 바다를 가로지르는 파도소리.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 위로 세월이 아쉽게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시절이다.
사색의 시절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의 겨울의 소리는 늙은 부모님의 기침 소리로부터 오는 듯하다. 뼈가 약한 사람들은 추위에 관절이 쑤시며 아프다는 소리. 자식 걱정하는 부모의 세포들이 조용히 퇴화하는 소리.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아쉬움에 긴긴밤 잠 못 이루는 사람의 뒤척이는 소리. 고요함 속에서 한 세상을 돌아보며 주름진 손으로 추억의 앨범을 넘기는 소리. 세상의 안위를 위해서 신께 간절히 기도드리는 누군가의 기도소리로 삶을 정리해 가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시기가 아닐까.
인생살이를 하면서 꼭 필요한 삶의 소리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때때로 사람들과 어울려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한 날은, 어쩐지 가슴속이 텅 빈 것같이 헛헛하다. 감정 표현 중에서 ‘침묵이 금’이라는 속담처럼 소리를 내버텨버리지 않고 가슴에 담고 있으면 마음이 충만함을 느낀다. 소리는 대화의 한 방법으로 늘 필요하지만, 헛소리나 사람들이 듣기에 민망한 소리, 남을 헐뜯어 상처가 되게 하는 소리는 가능하면 삼가는 것이 생활의 지혜가 아닌가 싶다. 서로 말다툼하면서 싸우는 소리나 전쟁터에서 들리는 총알소리 같은 살벌한 소리는 안 듣고 살면 좋을 것이다. 자연의 소리도 번갯불과 함께 천둥치는 소리 같이 공포를 자아내는 소리는 안 듣고 살았으면 좋겠다. 평생을 살면서 귓가에 머무는 소슬바람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와 더불어 아름다운 소리만 내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부르는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서로 사랑한다는 소리를 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