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했는데(정순옥 수필가)

조회 수 1070 추천 수 1 2025.10.29 11: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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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했는데

 

                                                                                                                          정순옥

 

  싫다. 지금은-. 좋아했는데. 사람이나 동물, 꽃이더라도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나에게 해를 끼치거나 상처를 주는 사물은 싫다. 몸에 상처를 받으면 아프다. 나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정서적으로 상대방이 싫어진다.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해가 되는 일이나 상처를 받으면서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인생살이 하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내가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될 일이다. 또한, 나 자신이 남으로부터 상처나 해를 받을 때는 단호히 멀리해야 할 일이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존귀한 것이 어디 또 있는가!

  허밍버드를 처음 보았을 때, 참 귀여운 새라는 생각에 좋았었다. 그래서 우리 집 뒤뜰에 허밍버드가 좋아한다는 분홍꽃도 사다 심었다. 작은 몸으로 재빠르게 날갯짓을 하면서 길다란 부리로 꿀을 따먹기 위해 꽃 주위를 맴도는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 ~롱 푸~로랑 재빠르게 나르는 소리도 재미있게 들었다. 어느 날, 내가 부엌문을 열고 뒤뜰에 나가려고 하는데 허밍버드가 쏜살같이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와, 밖으로 내 보내느라고 애를 먹은 경험이 두 번이나 있었다. 그런 후,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한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위층 방에서 딸이 놀라서 소리친다. 저희 방에서 허밍버드가 죽어 있다 한다. 나는 부엌문을 잘 관리하지 않은 나의 불찰을 인정하면서도, 계속해서 나에게 정서적인 해를 끼치는 허밍버드가 경계가 된다.

  사슴이 좋았었다. 학창시절에 노천명 시인의 아름다운 시, ‘사슴을 외우면서 사슴을 실제로 보고 싶었다. 어디서든지 사슴 모형을 보면 왠지 모르게 나 자신이 순해지는 감정이 들어 정원에 사슴 조각품도 놓았다. 실제로 사슴을 볼 기회가 잦았다. 내가 미국에 살면서 다니는 직장 뜰에 사슴이 자주 나타났다. 부부 사슴과 함께 커다란 눈동자를 가진 아기 사슴을 보는 날이면 기분이 더 좋았었다. 어느 날 새벽 일찍이 우리 집 앞뜰에서 사슴이 보여 반가웠다. 앉아 있던 누렇고 커다란 사슴 한 마리가 나를 보자 일어서서 걸어가는 모습에 놀랍고도 반가웠다. 사슴이 정원에 있었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염소 똥처럼 땡글땡글한 까만 똥들을 많이 배설해 놓고, 꽃들이 사정없이 뭉개져 있었다. 가만히 보니 내가 정성스럽게 키우고 있는 수국이랑 예쁜 꽃들이 망울져 가고 있는데 전부 뜯어 먹어버렸다. 그래도 나는 사슴이 우리 집에 찾아온 것이 좋았었다. 그런데 사슴은 그 다음 날도 또 다른 날도 계속 찾아와 이제는 꽃만 아니라 탐스럽고 예쁘게 꽃을 피우는 보기 드문 써큐렌트 줄기까지 뜯어먹어 뿌리 부분만 남아 있다. ~, 어쩌면 좋아! 좋았던 사슴이 나에게 해를 끼치고 정서적인 상처를 자꾸 주니, 이젠 싫다. 제발 우리 집 뜰에 사슴이 다시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슴이 앞뜰에서 나와 길가로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왼쪽 다리를 쩔룩거렸다. 그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하였다.

  열심 있는 그녀와 함께 공동체생활을 할 수 있어서 좋았었다. 어느 날 누군가 울면서 그녀와 일어났던 일을 나에게 말했을 때, 이런저런 사람이 있어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해하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까다로운 성격과 부딪치는 것이 괴롭다고 결국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말았다. 잔소리가 많고 가시가 너무 많아 옆에 있는 사람들이 자꾸만 상처를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도 당하면서 알게 되었다. 잔치가 있던 어느 날, 부엌에 사람들이 많기에 비켜 나오면서 남을 믿은 나의 부주의로 내 음식이 타 버렸다. 그녀는 선인장이 사막에서 살아가기 위해 잎이 가시로 변한 것처럼 작은 사업을 하면서 버릇이 된 잔소리가 가시가 되어,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 또 발생하였다. 내가 화장실에 있는데도 무조건 들어와서는 무책임하게 음식을 태웠다고 나무라며, 자기가 화장실 사용해야 한다고 나를 밀어내는 그녀의 무례하고 저질적인 행동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문을 꼭 잠그지 않은 잘못이 있더라도,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으면 기다려주는 것이 당연지사 아닌가. 비상식적인 행동을 해서 나에게 흠을 만들도록 해 놓고선, 남에겐 나의 허물로 만들어 나팔 불고 다니며 내 뒤처리해 주었다고 은근히 자기가 한 일을 자랑하였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겸손한 모습을 보여야 할 사람이 남을 헐뜯어 깎아내리면서 뒷담 하는 오만한 태도를 이해하기란 내 역량이 부족했다. 같은 날 또 다른 사람도 마음을 상했다며 이유를 묻지 마세요.” 하더니 아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나는 접촉하려고 옆에 오는 그녀의 모습도 가증스러워, 자유롭진 않았어도 침묵과 무관심으로 넘겼다. 그녀는 하던 사업을 접었고 몸이 아프다는 소문을 들으면서, 온유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나는 다시 한 번 깊이 느꼈다.

  싫어했는데 좋아지는 것들도 있다. 징그럽게 꿈틀대는 지렁이, 내 몸을 탁! 쏘고 달아나던 꿀벌, 나에게 유익을 주는 것들임을 안 후론 그들이 싫지 않다. 나에게 해를 끼치는 것들은 멀리하고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들을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세상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인연을 맺어가며 살아가고 있는데 변함없이 좋은 인연으로 살아가면 얼마나 좋으랴! 좋아했는데 지금은 싫은 감정은 참으로 아리송하다. 내 아량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어떤 것으로 든 남으로부터 해나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정서인 걸까. 이 세상 사는 동안에 남에게 해가 되거나 상처가 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아했는데 싫어진, 사슴 허밍버드 그녀를 언제쯤 다시 좋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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