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벽에는 색칠공부 도안 형태로 만들어진 박미나의 ‘12Colors Drawing Ⅲ, Ⅳ’(33×25.5㎝). 오른쪽 벽에는 사비나미술관의 정체성을 10개의 스트라이프 색채로 표현한 문형민의 ‘by numbers series’(785×703㎝, 2015) 작품이 각각 전시돼 있다.
사비나미술관 ‘컬러스터디’展
화랑가에서 박서보 김환기 이우환 하종현 등으로 이어지는 단색화 열풍이 거세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미술 애호가들은 ‘캔버스’ 위의 작품에서 여전히 다채로운 색을 기대한다. 그러나 색을 바라보는 작가와 감상자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여러 가지 화려한 색은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는 감흥으로 다가오겠지만 시각예술가, 특히 화가들에게 색은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는 소재다. 예술가들은 색의 시각적·공감각적·감성적·심리적·물리적 효과를 통해 다양한 은유와 상징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컬러스터디(COLOR STUDY)’는 여러 시각예술의 소재 중에서 특히 색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전시다. 전시에 참여한 문형민, 박미나, 양주혜, 정승, 조소희, 진달래&박우혁, 하이브, 베르나르 포콩, 샌디 스코글런드, 닐 하비슨 등 11인의 작가들은 색이 캔버스 위에 ‘주인공’으로 자리 잡을 때 어떤 효과를 주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가능한지 다양한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사회적 통념에 항상 의문을 제기해온 문형민은 이번 전시에서 지난 10년간 사비나미술관 도록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와 색을 연결해 스트라이프 색면을 완성해 보여준다. 미술관의 도록 21권의 단어와 색을 수집 분석한 후 이 중 상위 10개의 색을 벽면에 스트라이프로 분할하고, 영상작업을 통해 또 이를 상위 10개의 단어와 연결시킨다. 가장 많이 쓰인 색은 블랙이었고, 단어는 소통이었다. 말하자면 벽에 분할된 10개의 스트라이프 색면은 ‘색의 관점’에서 바라본 사비나미술관의 정체성이다. 문 작가는 “어떤 대상의 단어와 색을 추출 분석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통계라는 객관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 샌디 스코글런드의 ‘금붕어의 복수’(70×101㎝, 1981). |
선천적인 전색맹(全色盲)인 닐 하비슨의 작업은 우리에게 아르튀르 랭보를 연상시킨다. ‘A는 흑색, E는 백색, I는 홍색, U는 녹색, O는 남색 /모음이여 네 잠재의 탄생을 언젠가는 말하리라…’ 19세기 프랑스의 천재시인 랭보는 소리로 이뤄진 알파벳 모음에서 엉뚱하게 색채를 읽어냈다. 닐 하비슨은 랭보와 반대로 머리에 장착한 아이보그(Eyeborg) 안테나를 이용해 색을 소리 파장으로 변환해 듣고, 화면에 재구성하는 작업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아이보그는 색을 소리로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전자장치로 2004년 닐 하비슨과 인공두뇌학 전문가에 의해 고안됐다. 이를 통해 작가는 선천적인 색맹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각과 청각을 넘나드는 공감각으로 ‘색’을 인지한다.
사비나미술관의 강재현 전시팀장은 “이번 전시에서는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수단으로써, 혹은 대상을 재현하는 수단으로써의 색채가 아닌, 사회적·과학적으로 접근해 작가 나름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분석하고 실험해 새롭게 보여주는 색을 만날 수 있다”며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저절로 색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10월 23일까지
색감 하나가 함축할 수 있는 무수한 감정들은 그저 경이롭습니다.
랭보 시인이
활자와 색조를 연관지었다는 부분 또한
특히 인상적입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