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잿빛 정적이 내려앉은
이른 아침 동네를 돌다 문득
지나간 봄날을 잊어버린
정적보다 더한
음산한
빈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손길 닿는 곳마다 향기로
소박한 식탁에 가족들로
북적대며 화기애애했을 자리
말
못할 사연 남기고 떠난
그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외로워 지친 빈집 지나며
등골 휜 노모의 자식 사랑과
소원해진
형의 굳은 표정
실직한 동생의 처진 뒷모습
보듬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할 일 못하고도 괜찮다던
창문에 걸려있는
핑계와
문틈 삐거덕 거리는 게으름도
분주한 손길로 외롭지 않는
건강한 삶으로 채우고
싶다
-2014년 <시와 시학> 여름호 육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