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세상
돌, 돌, 돌 온통 돌이다. 세상 어디에도 이처럼 돌은 많지만, 돌이 산을 이룬 곳은 없다. 나는 문득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창조주가 “돌이 있어라.”라고 하신 후 흩어지라는 명령을 깜박 잊으셨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주위가 온통 돌의 세상일 수 있을까 싶다.
알라비아 힐스의 큰 돌은 바윗돌이고 길 건너에는 그보다 작은 돌이 오글오글 쌓여 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나는 피카소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그림을 보는 것처럼, 기분이 묘해지기도 한다. 위트니 산을 배경으로 양쪽에 있는 돌 세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인요카운티의 가치를 인정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인요카운티에 버티고 있는 명산, 위트니 산, 맘모스 산 등 그리고 많은 호수의 순수자연이 주는 감동은 어느 곳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감격 그 자체이다. 돌 세상을 차로 천천히 돌아 나오며 돌 하나하나에 정신이 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비바람에도 와르르 무너지지 않고 버티며 긴 세월을 감내한 것을 볼 때 작은 고통에도 무너지는 인생보다 훨씬 강해 보인다.
사람 정신마저 압도할 만큼 크고 웅장한 바위도 멋있지만, 돌끼리 만들어져있는 돌산 앞에서 우리는 친밀함과 화합을 배워야 할 것이다. 돌 자체는 무기력하지만 합해질 때 바로 태산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작은 돌의 결집이 산을 이루듯이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가정과 가정의 결집이 사회가 되듯 그런 순리 안에서 우주가 움직인다는 나의 논리다.
자연은 아름다움으로 혹은 의연함으로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언가 느끼게 해 주는 자연을 가까이하고 싶어지게 한다. 늘 보고 듣는 일상에서 벗어나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보면 마음이 정화되기도 한다. 자연은 그저 하늘의 뜻에 자신을 맡긴 채 말없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게 해야 할 고비가 있을 때는 선택의 자유권을 잠시 접고 하늘의 뜻에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
어찌 보면 돌은 잠잠히 인내만 한다. 무한정한 자유를 남용하는 것보다 더 값진 것을 얻어낼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인간관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최후통첩을 남발하는 미련함을 돌 앞에서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더 많이 인내하고, 더 많이 받아 주어야 한다는 성찰의 순간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미치니 속된 나의 본질이 돌보다 잘난 것 하나 없는 것을 알게 한다. 실은 사람을 어찌 돌에 비교할까마는 고귀한 인간이 돌을 통해서라고 깨달음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날이다.
인요(Inyo)는 위대한 정신 혹은 영혼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뜻의 파이우트(Paiute)족의 인디언 말이라고 한다. 인디언의 숨결과 정신이 느껴지는 곳 중 이곳이 한 곳이기도 하다.
오늘 밤 꿈은 분명히 내가 돌이 되는 꿈을 꿀 것이라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