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죗값을 어찌 다 받을꼬

조회 수 1174 추천 수 0 2014.12.16 09:33:13

                             죗값을 어찌 다 받을꼬

 

   아는 이 없는 곳, 낯설고 물 선 타국 땅에서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내 경우에는 교회였다. 영혼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동질의 대중 속에 있지 않으면 소외되는 느낌 때문이라는 말이 이민 초기에는 더 맞을 성 싶었다.

   몇 년간의 도넛 장사 실패로 캘리포니아를 떠나 덴버로 가자마자 교회부터 먼저 찾았다. 이렇게 신앙생활이 시작되면서 그 교회가 소속되어 있는 미국교단에서 성지순례를 간다는 통보에 열 명 중에 나도 합류하기로 했다. 나는, 1년간 저축한 돈으로 준비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4000년의 도시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이스라엘에 도착하니 우중충한 날씨였지만 하루 비가 오고는 여정 열흘 내내 맑은 날씨라 다행이라 싶었다. 먼저 성서에 나오는 지역을 실제로 걸어보는 느낌은 감동 그 자체였고, 성서의 역사와 배경이 사실임을 실감케 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창조주를 신뢰하면서도 배반과 의심을 밥 먹듯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참으로 가치 있는 여행이라 싶었다.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타고 베드로가 되어 보기도 하고, 사해에 손을 담그고 짠 소금 맛을 보면서 신의 노여움이 참으로 무섭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요단강에서 침례 받는 사람이 많아 보였다. 이웃 나라와의 경계 너머로 보이는 시내산 앞까지 가서 모세가 받은 신령한 영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 보기도 하고, 폐허가 된 다윗 성터, 솔로몬 궁이 있던 자리, 라헬의 지하묘실, 베드로 성전, 십자가의 길, 예수의 빈 무덤, 통곡의 벽, 모슬렘의 황금성당, 양 떼가 있는 들판은 이천 년 전의 시대인 듯싶게 아직도 황무지였다.

   성지 순례의 최고 꼭짓점은 마사다(헤롯 시대에 건립한 요새가 있던 곳으로 73, 로마에 저항하던 960명의 유대인이 최후의 집단자살한 장소)에 도착한 날이다. 하필이면 케이블카의 고장으로 먼발치에서 산 덩치만 볼 수밖에 없었고, 유대인 안내자의 영어 설명을 대충 알아들은 걸로, 당시의 참담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지 못하고 돌아와야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육십 명 일행 중 한국인 열 명 외에 나머지 분들은 미국인 목사와 역사학자, 성경학자들이었지만, 그 중 일곱 명이 산을 오르기로 했다.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나는 삽 십 대라는 젊음을 믿고, 나이가 지긋한 학자들은 꼭 보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그 험한 산을 그야말로 기다시피 해서 올라갔다.

마사다 정상의 빈터에는 생존할 때의 예배처소와 공동 목욕탕 그리고 화장실, 그들의 삶 터전이 흙으로 질서 있게 나누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신앙을 지키다 희생된 영령들이 남아 있기라도 한 듯 가슴이 순간 먹먹해 졌다. 나는 기독교를 박해하던 자들이 앞에 있기라도 한 듯 그 죗값을 어찌 다 받을꼬마음속으로 나무랐다. 지금도 그날, 산을 오르는 고행과 마사다의 의미는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 싶다.

   예루살렘 거리에는 고교생 남녀 누구나 군복을 입고 나라를 지키는 모습이 참으로 특이했다. 저녁 자유시간에 거리를 걸어보고 싶기도 하고 버스를 타고 도시구경도 하고 싶어 혼자서 몇 시간을 돌아다니다 보니 호텔에서 너무 먼 곳에 와 있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에게 “EXCUSE ME!"하고 애원해도 아무도 쳐다보기는커녕 모든 사람 표정이 무겁고 비정해 보였다. 또 한편으로는 모두가 장례식에 가는 사람 같이 무거워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 그곳에 공부하러 온 미국 목사의 도움으로 호텔에 돌아올 수 있었지만,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안내자는 아무 설명 없이 역사박물관 앞에다 우리 일행을 내려놓았다. 역사박물관 안에 들어가면서 모두가 숙연해졌다. 한국인 열 명은 또 다른 느낌이라 참혹한 사진을 찬찬히 대하게 된다.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라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세대이기에, 유대인에게 자행했든 히틀러의 잔학성을 남의 일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첫 사진부터 주체할 수 없이 줄줄 흐르는 눈물은 박물관을 나올 때까지 닦지 못하고 가슴으로 통곡한 이유를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박물관 밖으로 나오면서도 그 죗값을 어찌 다 받을꼬가 입에서 툭툭 튀어나왔다.

이들은 괴롭고 고통스러워 잊고 싶은 과거이련만, 그들은 그러기에 더욱 잊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면서 아픈 역사를 후세에게 알리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렇게 역사박물관을 만들어 끔찍한 자료들을 보존 및 전시하여 교육자료로서의 의무화와 의식화가 되어 있음을 보게 되었다.

   우리가 방문한 날도 선생의 인도하에 어린 학생들이 견학 온 것을 보아도 그들의 정신을 짐작할만했다. 그들은 신으로부터 선택을 받았다는 우월감도 있지만, 웬만해선 피를 섞지 않으려는 민족이다. 아픔을 아픔으로 가슴안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과연 우리 민족은 어떤가? 일제 침략시대에 우리의 부모가 모질게 당했음에도 그 사실조차 잊고 살아가는 것은 웬일일까? 그 결과 일본과의 관계가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우리의 후세들에게 알릴 책임이 있음은 절감해야 한다. 과거 때문에 적대감을 갖고 단절하고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서로가 역사를 바로 알 때 비로소 용서와 표용이 빛나지 않을까 싶어진다.

   성지순례의 마지막 날, 왜 그토록 고국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압박과 설움의 시절이 자그마치 36년이 아닌가 말이다. 또다시 속에서 이 말이 또 툭 튀어나온다.

   그 죗값을 어찌 다 받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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