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이 약이야
올봄에 심은 묘목들이 여름 동안 키가 3피트나 자랐고 몸통도 제법 굵어져 있다. 가을이 되니까 잎이 떨어져 줄기만 서 있다. 푸른 잎을 달고 있을 때나 알몸을 내놓고 서 있는 지금이나 사랑스럽기는 똑같다. 그렇다고 잎이 없다 해서 그냥 있을 수는 없다. 겨울잠을 자기 전에 허기지지 않도록 밥을 잔뜩 먹여 놓아야 한다.
거름이 없으면 농사는 지을 수 없다. 비료를 주든지 아니면 똥이라도 주어야 나무든 채소든 다 잘 자란다. 하지만 화학비료로 키우면 유기농이 될 수 없다.
우리 집에는 나무가 많다 보니 쇠똥과 닭똥이 작은 동산처럼 항상 쌓여 있다. 얼마 전 길 건너 다이애나 집에서 말똥을 가져와 지금은 말똥산 하나가 더 생겼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쇠똥 더미 위에 쇠비름이 덮였다. 그곳뿐만 아니다. 나무에다 쇠똥거름을 준 자리마다 쇠비름 천지가 되었다. 쇠비름을 뽑아 버리느라 우리 부부는 땀을 흘린다. 그런데 TV에서 쇠비름 효소에 관한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이 쇠비름에는 오메가3가 생선보다 많이 들었다고 한다. 정확하게 증명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난한 시절에 나물로 먹었던 기억도 있다. 확실한 것은 독 있는 풀이 아니기에 어린 시절에 다들 먹지 않았던가.
나는 쇠비름을 깨끗하게 씻어서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빼고 설탕에 버무려 한 병 가득 담아 놓았다. 쇠똥에서 얻은 효소의 효과를 기대해보며, 이렇게 가만히 두고 6개월이 지나면 효소가 된 쇠비름을 상상해 본다.
하지만 비료가 아닌 동물 똥이지만 냄새가 참 고약하다. 쇠똥과 닭똥 그리고 말똥을 섞어 나무마다 한 삽씩 퍼준 난 날은, 남편과 내 몸에서 똥냄새가 물씬 풍기게 된다.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어도 냄새는 여전하다. 무슨 모임이 있어 나가려 하면 이 냄새 탓에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목욕 안 한 여자라고 할 것이다 싶다. 할 수 없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똥을 주고 물까지 주면 몇 주 후엔 나무가 쑥 자란 게 눈에 보인다. 채소도 싱싱하게 잘 큰다. 똥거름으로 키운 채소는 달고 맛도 있다. 정말이지 어릴 때 코를 막고 피했던 똥이 식물들한테는 없어서는 안 될 약이고 음식이라 싶다.
속으로 똥의 진가를 알아주는 똥에 대한 노래를 누가 안 만드나 싶어진다. “똥이 약이야. 으응~ 그래. 식물의 약이고 밥이지 말고.”
옛날 재래식 화장실을 쓸 때 똥이 차기를 기다려 똥통에 넘치도록 퍼 담아, 지게 양쪽에 걸어서 밭에다가 주었던 광경이 떠오른다. 내가 자란 마을 4H 클럽에서 지게를 만들어 필요한 집에 나누어 준 일이 있다. 내 어머니도 지게를 하나 얻었다면서 손수 똥지게를 지고 걸을 때 출렁출렁 똥이 튀었는데, 옆을 따르던 나는 인분이라 냄새가 역겨울 만큼 지독했다.
코를 쥐고 달아나는 내게 “재랑 똥이랑 사흘만 안 먹으면 나라님도 죽는 겨야, 이것아!”
불과 60여 년 전, 똥통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건만 젊은이들에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이야기만큼 현실적이지 않는다. 미개한 시대(?)의 일에 관심도 알 필요도 없다고 치부해 버린다.
세상은 상상 못 할 만큼 변했고 앞으로 더 변할 터인데, 나의 고민과 관심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나무를 잘 키울 것인가이다.
어쩌면 이곳에서 “똥이 약이야!” 하면서 살아가리라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