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과 눈깔사탕
나뭇가지마다 매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앞으로 더 커져야 하겠지만 그중 통통한 것을 골라 한 알 따본다.
매실은 그냥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다. 효소를 만들거나 약의 원료로 쓰이는 열매다. 예쁜 열매를 손안에 꼬옥 쥐어 보는데 불현듯 내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외출하셨다가 돌아올 때는 늘 사탕을 사 들고 오셨다.
옛날 눈깔사탕 알 크기가 지금 내 손에 있는 매실만 하게 컸다. 입에 넣으면 입을 오므릴 수가 없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 큰 사탕 하나가 어릴 적 내게는, 누군가가 다이아몬드와 사탕을 바꾸자고 한들 바꾸었을까. 그만큼 충족감과 기쁨과 달콤한 맛까지 주었으니 눈깔사탕 한 알은 내게 최대의 행복이었지 싶다. 그 추억처럼 매실이 사탕인 양 입에 넣고 싶은 충동이 이는 순간이다.
매실은 길고 단단한 가시에 두 개, 세 개 혹은 네 개씩 올망졸망 붙어서 나뭇잎에 가려져 있다. 열매를 따려다가 가시에 찔리기가 어찌나 쉬운지 한 번 찔리기도라도 하면 진땀이 나도록 아픔을 느낀다. 무기와 다름없는 가시가 열매를 지켜주는 군인인 듯싶다.
매실나무를 돌보는 동안 꽃이 피고지고, 열매 맺히는 과정을 보면서 무언가 감미로움이 내 안에 가득 고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나무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열매가 되고부터 거의 백여 일 동안 우주의 원소인 햇볕 아래서 공기를 마시고, 바람을 쇠이고, 물을 마시면서 커간다. 매실이라는 예쁜 이름을 누가 지어 주었는지 열매 모양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나무 사이를 다니며 한껏 행복스러워할 때에도 나무는 열매를 키우느라 필사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려니 생각하면 왠지 애잔하게 가슴 한쪽이 아파지는 듯해 혼자 무안해지기도 한다.
새들은 열매의 향기에 취한 듯 나뭇가지에 사뿐히 앉아 즐겁게 지절대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나무는 땅에 뿌리내리고 그냥 서 있기만 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낮 동안 열매를 키우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줄기와 잎 그리고 열매 등 나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명의 움직임이다. 만약 이 과정을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자만심으로 가득 찬 우리는 나무 앞에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리라.
열매가 눈깔사탕 알 만큼 커져도 나는 열매 수를 세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예쁘고 사랑스럽게 자라고 있는 나무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럽고 기뻤으니, 열매를 따는 것은 덤으로 따라오는 황금적 매력이 아닌가.
황금이 필요해서 나무를 키우고 있음은 부인하지 않는다. 누구든 얻어진 황금으로 또 다른 것을 준비하며 황금을 써야 할 것이다. 괜히 고고한 척 오만을 부려봐도 실은 그것이 인생이고 자연과 공생 공존해야 하는 우주의 법칙이 아닌가. 자연이 안겨주는 순수한 사랑 앞에 “여기 열매가 있어. 여기 또 있어.” 큰소리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에너지를 눈과 손끝에 몽땅 쏟아 부으며 열매를 따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칫, 나무만도 못한 내 모습이 되어버리는 듯해서 솔직히 미안해진다.
대지가 우리에게 주는 양식과 나무 열매의 달콤함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으리라. 그걸 얻기 위해 수고한 것이니 광주리를 들고 가서 사랑스러운 열매를 수확하는 보람을 가져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