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조회 수 1545 추천 수 0 2014.12.16 09:37:47

          추어탕
                      

   8살 유년기에 잊지 못하는 사건 하나가 있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밖에서 놀고 싶은데 며칠 전부터 여름철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당의 흙이 패고 빗물이 도랑처럼 흘러 밖에 나갈 수 없어 따분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먹구름이 하늘을 덮더니 퍼붓듯이 내리는 장대비를 마루에 서서 보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까맣고 작은 뱀들이 비와 함께 땅에 떨어지면서 꿈틀대며 튀어 오른다. 방에 뛰어들어가서 앉아 있는 식구들에게
  “마당에 뱀이 많이 있어요!”
  나는 어머니 옆구리로 파고들면서 뱀에 물이기라도 한 듯 호들갑을 떨었다. 책에 뱀이나 쥐, 송충이 그림이 있는 부분은 손으로 만지지 못하는 겁쟁이인 내가 실제로 뱀 무리를 보았으니 놀란 것은 당연했다.
  온 식구가 우르르 나가서 기어 다니는 뱀들을 보고 “저것, 미꾸라지 아니냐!”
  온 식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장대비 속에서 미꾸라지를 통에 웃으며 주워담느라 난리 법석이다. 그것으로 끝이 난 게 아니었다. 어머니는 미꾸라지 음식을 만들고 횡재한 듯 만면에 희색이 가득해서 상에 둘러앉아 특별감사기도까지 했다.
  나는 밥그릇을 달랑 들고 건넛방으로 갔고, 미꾸라지는 새끼뱀이라고 머리에 심어 버렸다. 그랬으니 해마다 식구들은 보양식이라며 미꾸라지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나는 그 공포의 음식은 절대 사절했다. 그런 마음이 초지일관 60여 년을 밀고 나갔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처음으로 먹는 일이 발생했다. 문학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이 바로 추어탕 식당이었다. 음식 타박할 나이도 아니고 미꾸라지 형태가 보이지 않게 갈아 만든 국이라 말도 못하고 먹는 시늉이라도 내자 싶었다. 바로 앞자리에는 존경하는 스승이 보고 있고 나의 옆자리에는 같이 공부하는 생도와 함께 한 자리이니 다른 곳에 갈 수도 없었다. 만약 내가 그 음식이 싫다고 다른 곳으로 가면 어렵게 주차했던 일도 헛수고가 되고, LA의 점심시간은 식당마다 초만원이라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좌석쟁탈전(?)을 벌여야 할 상황인지라, 시간 낭비는 물론 그건 예의가 아니라 싶었다.
  처음엔 온몸에 땀이 나는 듯했다. 어릴 때의 새끼뱀 사건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식당 벽에 걸려 있는 추어탕의 장점을 눈여겨보았다. 그리고는 ‘몸에 좋은 음식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추어탕이 위로 스르르 들어가자, 위가 제 역할을 하기도 전인데도 ‘아~, 몸에 좋은 약이 되나 보다’라는 묘한 느낌이 최면제가 되어 주는듯했다. 그러면서 공포의 음식이 아닌 뜻깊은 음식이라 싶었다.
  사람은 정신력으로 산다는 예로부터 들어 본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제 추어탕은 나에게도 공포의 음식이 아닌 약이 되는 음식으로, 나의 건강 도우미 역할을 하게 할 생각이다.
  딸 내외를 LA로 불러내어 뚝배기에서 펄펄 끓는 추어탕을 함께 먹을 것이다. 그리고는 옛날 내가 간직하고 있었던 추어탕에 얽힌 사연도 이야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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