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적 감상화(感傷化)를 위한 스케치
-감성적 시선에 포착된 일상의 오브제, 그리고 언어적 형상화
강 정 실
(문학평론가)
1. 들어가기
시 쓰기의 모태는 자연이다. 그 자연을 시 노트에 스케치하며 옮겨 창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과가 가지에서 떨어지는 것이 뉴턴(Newton)의 만유인력萬有引力의 법칙이라면, 시인은 ‘날개 없이 떨어져 있는 사과를 연필로 나뭇가지에 올려 그려놓고, 나 또한 새처럼 앉아 있을까?’ 하고 미세한 세계에까지 포커스를 맞춰 상상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무한한 현상계 속에 있는 본체적인 것을 심안에 비추어 바라보는 것이 시의 본질일 것이다.
화자 한만수는 충남 서산 태생이며, 미 해군 태평양 사령부 7함대 한국 고문단 연락 장교실에 근무를 하다가 잠수함 운용술 연수 교육 차 1979년도 뉴욕으로 도미한다. 이후 뉴욕에서 가정을 이루고 운전학교와 카페를 운영하면서 2015년부터 짬짬이 시문학회에 참석하며 글을 쓴다. 그러다 2018년 말 생활전선에서 은퇴한다. 이후 건강을 위해 자전거 타기와 달리기 등을 소화하며 가끔 흑연연필과 스케치북을 들고 자연을 찾기도 하며, 본격적으로 시작(詩作)에 몰두하게 된다. 그 결과 2019년 가을 문예종합지 <자유문학> 통권 제113호에 추천 완료한 늦깎이 시인으로 등장한다. 그동안 창작했던 여러 시와 스케치한 것을 모으고 추려 제1시집 영혼의 표정을 발간하게 된다.
2. 창작의 유형
차가운 태양 볕이
산비탈에 부서져 내린다
식어버린 그 열풍은 삭바람이 되어
땅 위를 낮게 맴돌고 있다
늘 푸른 만년초
서로 굽어 얽혀 사는 모퉁이
돌아서면 메마른 갈잎나무
콧잔등 간지럽히는 비탈길에
상큼한 햇살 냄새가
나뭇결 사이로 깊숙이 박히듯
가지마다 잉잉거린다
산은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호수처럼 가라앉아 있고
눈발은 살포시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몰려온 솜 방석 구름이
비탈진 오솔길을 감싸고 있다
따뜻한 햇볕을 불러 모아 앉히려나 보다
-겨울 산 비탈길에, 전문
오후 바다의 은물결은
유월의 햇살만큼이나 빛났다
모래 위에 피어오르는 빛 조각은
시울이 아리도록
해평선이 눈 안에 출렁인다
아주 가끔
뱃길도 포구도 없는 이 마을 쪽을
빙 돌아가는 크고 작은 배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흙냄새 그리울 땐…
해 저문 바닷가
실타래 풀려나간 듯 이어진
물새 발자욱 따라 사각사각
어둠을 밟아 간다
살랑거리던 실바람이
세차게 발목을 휘감아 돌면
이쯤에서 돌아가라는
석양의 전령일 게다
빛 고운 노을은
그리움과 아쉬움을
물들이고 사라지는
고요한 환호성이다
-노을, 전문
화자는 겨울 산 비탈길을 걷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철저한 단절이요, 차단이다. 온전한 휴지기에 대한 깨달음은 아닐까 싶다. 도시에서의 출렁거림보다는 휴지기를 맞아 숨을 고르는 저 겨울 산처럼 가쁘지 않은 호흡으로, 산의 눈 덮인 나뭇가지를 보기도 하고 유월의 시울이 아리도록 해평선이 눈 안에 출렁이는 포구의 어둠을 밟아 가며 세월을 무시한 채 뛰며 턱없이 가쁜 숨을 내몰았음을 느끼게 된다. 화자가 말하는 석양이 질 때 빛의 고운 노을은 그리움과 아쉬움을 물들이고 고요하게 사라지는 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또한 고운 빛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는 전통적 서정적 표현으로 화자가 원하는 것은 남은 세월을 가늠하면서 삶의 철학을 마음의 물결에 잠재우려는 것이다. 또한, 몸과 마음의 상관관계에 대한 통찰, 통상의 관념으로 보면 육체와 정신의 균형, 균일일 것이기도 하다. 릴케(Rainer Maria Rilke)는 가슴 한복판에 있는 심실(心室)에서 가장 편하게 꺼낼 수 있는 것이 향수라고 했는데, 화자는 자연을 대상으로 서정적인 것을 여러 형태로 데생하고 있다.
앞에 선 어머니
왼발 톡톡 돌잠 깨우듯
냇물을 건너신다
솔바람에도 마른 풀잎처럼
가볍게 흔들리는 어머니
징검다리에서는 기우뚱
주춤이는 긴 허리
괜찮을까
정말 괜찮을까
빠른 물살은 흠칫 치맛자락
휘감아 훔쳐본 듯 얼굴이 붉어져
회오리 물속으로 단번에 곤두박질이다
흰 거품 꼬리 뱅그르르 남기고
올가미 같은 돌저귀 함정마다
아차, 건너뛰는 발꿈치
은가루 날리며 발목이 창백하다
돌마다 물방울 퍼지고 마르면서
그 흔적이 신비로운 문양들로 변하여
영혼 문신처럼 곳곳에 아픔을 새겨 넣는다
마치 전설 속으로 걸어 가시는듯한
어머니
우리들의 땅이신 어머니
저만치 앞을 보면
나뭇잎 스쳐 간 옷깃 바람결
눈가에 일렁인다
-냇가에서, 전문
오뉴월 쨍쨍
여름 한나절
고깔 수건 머리에 얹고
푸석이는 밭고랑에
오금이 저려 오신다
옹골지게 움켜쥔 호미 자루
메마른 북어포 손등
툭, 툭, 엉겅퀴 힘줄 퍼렇게 튀어 오른다
온종일 불볕에 다루어지는 등허리
긴 숨 한번 토해내면
태양에 그을린 입술
바스락 부서지는 소리라도 들릴 것 같다
밧줄 같은 넝쿨 아래
주먹만 한 알알이 커가는 소리
밭두렁 나날이 갈라져 터진다
푸른 줄기 꼬옥 잡고 들어 올리면
탱글탱글 춤을 추며 가슴에 튀어 오른다
-어머니의 감자 캐기, 전문
화자는 빠른 물살에 쉽게 흔들리는 징검다리에서 어머니가 기우뚱거리지 않고 잘 건널 수 있는가를 가슴 졸이며 “괜찮을까, 정말 괜찮을까”라고 염려하는 마음, 오뉴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에도 메마른 북어포 같이 마른 손목으로 밭고랑에서 감자를 캐는 어머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시를 쓰는가?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는 사물을 바라보는 그 형상이 “형상화된 실존적 진료”하고 했다. 그렇다. 실존을 현존재의 존재 자체로서 이야기한다. 결코, 실존이라는 것을 현존재가 가지고 있는 특정한 속성이라 말하지 않는다. 화자가 말하는 내 나이 어린 고향에서 어머니의 형상과 삶을 미학이론에서 보면 작품은 시의 소재와 형식의 결합이다. 여기에서 인간에 의해 제작되는 도구를 제시한다. 어머니가 농촌으로 시집와서 아이를 낳고 가족으로 함께하는 삶은 가난을 숙명적인 삶의 진리가 숨겨져 있는, 시적 정서가 정제된 모습으로 표출시킨다. 이른바 비의(悲意)의 색체적 이미지를 찾아 형상화한 현학적인 그림 그리기다.
프라도 미술관에 펼쳐진 인물화의 표정들,
세비아 대성당 천정화의 화려한 아름다운 색상
수많은 천사와 인물들이 거대한 공간을 채우고,
대 제단에 걸려 있는 인물화 앞에선
순간 서로 눈이 마주친다
그 얼굴에 살아 생생한 눈동자와 시선
눈빛과 초점
그 눈매를 고요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기 저 눈 안에 나의 모습이 비쳐 보이고
푸른색 감도는 흰색 잔영의 눈엔 빛이 고여 있다
아, 영혼의 표정까지 그려내는
환쟁이의 눈빛은 대체 어떤 걸까
그 오묘하고 신비로운
- 영혼의 표정, 전문
다리 절벽 200미터 밑 능선에 펼쳐진 작은 마을
남해의 다랑어 마을과 비슷한 곱상하고 정겨운 모습
이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어 당대의 피카소와
자주 만났다는 이곳 론다
그는 론다는 연인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말년을 보내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한 론다
누에보 다리를 건널 때는 연인에게 반드시 선언 해야 할
말이 있다고 했다던가,
"이 세상에서 너 하나만 있어서 널 사랑 한 게 아니라
사랑하다 보니 이 세상엔 너 하나뿐인 걸 알았노라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영화에 나오는 한마디!
그가 즐겨 찾았던 다리와 절벽 위 오솔길에는
' 헤밍웨이 산책길' 팻말이 바람 따라 흔들리고 있다
-헤밍웨이와 누에보 다리, 전문
2019년 여름 화자는 스페인, 포르투갈, 아이스랜를 관광하게 된다. 바쁜 일정 속에서 프라도 미술관에 들러 여러 인물의 표정을 감상하다가 세비야 대성당 천정화의 화려한 아름다운 색상을 보게 된다. 대 제단에 걸려 있는 인물화 앞에서 눈이 한곳에 멈춘다.
수많은 천사와 인물들이 거대한 공간을 채우고/ 대 제단에 걸려 있는 인물화 앞에선/
순간 서로 눈이 마주친다.
그 그림 속에는, 화자의 자아가 보이고 아름다운 것 같아도 슬픔이 깃들어 있는 푸른색 속에 생(生)에 대한 아픔의 흰색 잔영이 고여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순간 고독해진다. 곧 인간의 사랑과 생명 공경이라는 등식을 절대자와의 사랑으로만 회복할 수 있다는 죽음과도 같은 애련(哀憐)의 희망일 것이다.
다시 소설가 어네스트 헤밍웨이(1899~1961)가 아름다운 살았던 도시 론다를 찾게 된다. 주변의 풍광과 붉고 높은 누에보 다리를 보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창작했다는 문학적인 감정을 느끼며 화자는 그 중 스페인 마드리드 광장을 떠올린다. 그리곤 <헤밍웨이와 누에보 다리>라는 시를 쓴다. 예나 지금이나 팔짱 낀 채, 문화예술에 대해 답보적이거나 고답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군자연(君子然)으로 있는 자신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에서 좀 더 독자가 외면한다 해도 시적인 분야에 일가를 이루리라는 각오를 한다.
그 밤하늘
의자 위치만 바꿔 앉으면
해지는 광경을 수없이 볼 수 있다는
어린 왕자의 작은 별,
동화 속의 전설 같은
이야기로 다가온다
우리들은 언덕배기에 장승처럼 둘러서서
북극 하늘에 펄럭이는 푸르른 섬광에
숨소리는 실낱같이 하늘로 빨려 들어갔다
그런 순간이 얼마나 지나간 걸까
눈부시던 그 흐름은 멈추고
일순간에 필름이 끊기면
빛은 빛처럼 사라졌다
어둠의 장막은 서둘러 드리워지고
아쉬움의 탄성이 저마다 새어나온다
지금껏 펼쳐지던 환상곡을 되새김질하면서
모두는 자기의 그림자를 이끌고 서서히 내려왔다
극광의 찬란함
경이로움의 연속
- 북부 아이스랜드, 전문
아이슬란드 어느 북부 도시에서 오로라를 찾는다. 오로라는 초고층 대기 중에 발광(發光)현상인데, 극지방을 찾아 노랑, 연두, 분홍색 색채의 오로라를 보게 된다. 밤하늘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빛의 흐름은, 생텍쥐페리(Saint-Exupéry)가 느끼는 동화 속으로 우리의 생명과 정신으로 유추하게 된다. 이를 바라보는 화자는 다양한 관점에서 시적 연구의 대상이 되고 새로운 시어(詩語)에 사물과 추상적 존재의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붓을 든다.
'검푸른 파도 삼킬 듯 사나워도
나는 언제나 바다에 사나이'
파고가 높은 날은 악을 써대며 밧줄을 당긴다
거친 파도가 유능한 사공을 만든다 해도 피곤하고 힘겨운 거다
남영 50호, 남영 50호, 본함 우현에 다가오시오!
수면 위를 타고 뻗어 나간 우렁찬 명령에
그 어선이 서서히 다가와 밧줄을 던진 것이다
고기잡이 배를 불러 세우는 것은 대개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제한 구역을 벗어났을 때
다른 하나는 군함의 장병 부식이 필요할 때
그러나 간혹 생선을 받고 금액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은 때도 있었으리라
갑판에 쌓이는 생선 궤짝에는 싱싱한 은빛 광채가 출렁거린다
ㅡ 생선값은 다 줘야겠지? ᅳ
ㅡ 당연하지, 바다에 방패로써. 그렇지 않으면 바다에 깡패,
아니, 해적의 후예가 될 테니까 ㅡ
얼마후 작업이 끝나고 어부들이 밧줄을 잡아당기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둥글둥글 힘이 뭉친 어깨들, 표정이 밝다
생선값이 문제가 되진 않았나 보다
-바다에 살고 지고(1)
파란 하늘 솜사탕 흰 구름이 반갑게 다가올 때 배의 물결은 흰 구름을 일순간에 일그러트린다 거센 파도가 쿵쿵 부딪는 바윗덩이 마냥 들이친다
조금 전까지 갑판 위 배구경기의 드높던 함성은 수면 아래로 스며들고, 배 안은 폭풍 전야인 듯 조용하다 그도 잠시, 종 소리 네 번 깨질 듯 울리고
ㅡ 외부 침입자 격퇴요원, 후갑판에 집합!ㅡ
격양된 소리 고막을 파고든다 이제 긴장감이 돌고 갑판을 내딛는 말발굽 소리, 우르르 튀어나오는 장병들, 현장에 도착 한 모두는 움찔, 당황스럽다. 긴부리돌고래 두 마리가 갑판 위에 튀어 오르며 생난리다
-밀어버려!, 밀어버려!ㅡ
큰소리 외쳐대기만 할 뿐, 무엇으로 어떻게 밀어내야 할지….
그래 봐야 청소도구 정도인데 다리를 움찔거리던 박 상병이 재빨리 배구 코트 기둥을 뽑아들자 바로 이거다 싶게 몰려 들어 밀어내기 시작한다 엎치락뒤치락 와중에 고래는 타의 반 자의 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대열을 이탈한 돌고래가 이렇게 후끈 달게 해놓고 냉큼 사라진 거다
ㅡ뜨거운 갑판에 계란 후라이보다 돌고래 후라이가 훨씬 좋은데… ㅡ
박 수병이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한다
슬며시 주저앉는 그의 발목을 잡으니 좀 불편한 기색이다
피식 웃으며 왼발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 올리는데 정강이 한복판이 움푹 함몰된 거무스레한 자국이 드러난다
아아 이건 어떤 사고의 흔적이 아닐까 생각이 스친다
검은 상처를 쓰다듬으며 병정놀이가 힘든 건, 수평선에 눈을 얹혀 두고 그냥 얼버무린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을 끝는다
ㅡ 우리는 구타의 전성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ㅡ
-바다에 살고지고(2), 전문
화자가 해군으로 3년간 전투 구축함을 타고 대한민국 해역을 지킬 때를 시적 산문으로 쓰고 있다. <바다에 살고지고 1,2>는 화자의 객관적 체험을 바탕으로 과거시절을 회상한다. 해상에서 생활하며 가끔 어선을 통제할 때가 있다. 제한 구역을 벗어났을 때나 군함의 장병 부실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간혹 생선을 받고 고깃값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던 경우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또 하나는 같은 수병들과 갑판에서 배구를 즐기던 중 긴부리돌고래 두 마리가 갑판 위에 튀어 오르며 일어난 생소한 일을 리얼하게 표현한다.
모든 작가는 인간의 감정이나 경험을 작가의 주관에 비친 대로 표현하건, 그 주관을 다시 객관적 방법에 의해 그려내건, 결국은 개성의 심상(心象)에 비친 사실들이 전신의 프리즘을 통해 나타나는 재창조이다. 이렇게 자신의 객관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를 재발견한다.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들뵈즈(Gilles Deleuze)는 “유한한 것을 재창조해서 무한한 우주의 실체를 사유하는 예술”이라 했다. 그렇다면 오늘의 작가란 누구인가? 평자는 오늘 화자의 늪 속에서 함께 유영하고 있다. 이렇듯 문학과 관련해 공존의 문학과의 길을 같이 가는 것이다.
3.결론
작가의 21세기 문화는 장르의 파괴나 해체가 시작된 지 오래고, 분야 간의 상호작용이 가속화되어 문화예술은 또 다른 차원에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할진대 문학논쟁의 시발이 되게 하는 시문학은 인간과의 떠다박지르고 비비대고 낀다거나 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들, 이를테면 자연을 통해 인생의 산보가(散步家)이기에 늘 생존경쟁에서 밀려나 있는 듯하나, 변해 버린 생활환경과 이국적 환경에서 아무리 오랫동안 삶을 이어간다 해도 작가적 연조는 작품으로 생산하는 시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각자 고향이 있고, 그곳에는 지성과 결합된 세계가 존재하며, 존재와 문제에 대한 발단은 언제나 고향과 그리움이라는 서정적 결핍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진리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만수의 정신세계의 발화점은 어디일까? 그 진수(眞髓)의 발화점 역시 항상 머릿속에 잠재된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으로부터 촉발된다. 세상에서 고아가 되었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그렇고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두보(杜甫)와 톨스토이가 그러했다. 이렇게 다들 인생을 통찰하고 나이가 익어감으로써 서정의 감미로움을 씹기도 하고, 지성이 섬광처럼 번득인다. 그렇기에 시는 담수(淡水)와 같은 심정으로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의 시의 언어도 문학적 낯설게 하기보다 은유의 세계 서정을 주제로 한 진입을 보여 줄 것이다.
화자의 시적 언어는 문학적 낯설게 하기보다는 서정적 은유의 세계를 주제로의 진입을 망설임 없을 것이고, 오늘도 화자는 연필로 데생하며 새로운 시작(詩作)에 몰두할 것이다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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