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무대, 꿈꾸는 배우
- 김준호의 시세계 -
임 오 솔 (시인, 문학평론가)
김준호 시인이 세 번째 시집을 세상에 내놓는다. 전에도 그랬듯이 이번 시집에서 보여주는 그의 시도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아직도 여전히 낯설고 특이하고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차근차근 그의 시의 암호를 해독해 보기로 하자.
시집 제목이 [늦게 피는 꽃나무의 神話] 이다. ‘늦게 피는 꽃나무’는 비유적인 표현일 터인데 이 시집의 주인공 즉 시적 화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神話’이니 신에 관한 이야기, 신을 중심에 두고 펼치는 시일 것인데, ‘밝은 어둠의 노래’라는 역설적인 부제목을 달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김준호 시인의 세계와 역사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인식이 어둠의 세계관에 입각해 있다는 것을 유추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은 ‘어둠의 탄생’, 작은 종이배’, ‘게으른 꿈쟁이’, ‘산중턱의 함성’ 이렇게 4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별도로 한 부로 묶지는 않았지만 한 작품 <밝음의 탄생>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장구하고 거대한 드라마와 시인이 이 세상에서 겪어내고 있는 실존적 드라마를 서로 섞어 날줄과 씨줄로 교직하여 엮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어둠의 무대에 펼쳐지는 드라마를 차근차근 살펴보기로 하자.
1. ‘어둠’의 탄생
어둠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시적 화자는 태어나자마자 어둡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나온 세상은 불 꺼진 무대였고, 커튼도 내려져 있었고 객석도 깜깜했다. 극장 건물 전체가 어둠이었다. ‘무대와 객석의 까만 단절’, ‘깜깜한 극장에서의 연극 공연’ 시적 화자는 태어나자마자 ‘까만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객석에는 어둠의 여신이 앉아 있었다.
믿을 만한 神話에 의하면
나는 태어나자마자
‘어둡다’라고 말했다고
내가 세상에 나온 곳은
불 꺼진 무대였다고
무대 커튼도 내려져 있었고
관객석도 깜깜
극장 건물 전체가 불이 없었으니
갓 태어난 아기의 눈에도
세상은 어두웠으리라
깜깜한 극장에서 연극 공연?
그래서인지
무대와 객석의 까만 단절하에
나는 태어나자마자 춤을 추기
시작했다고
아무도 보지 못하는
나도 보지 못하는
까만 댄스를..
저 女人은
아마도 女神일 것이다
- ⌜어둠의 탄생⌟ 부분
이 세상은 거리의 구석에 숨어 섹스를 파는 여자가 있고, 싸구려 환락을 찾는 남자가 있는 곳이다. 지하실 방처럼 깜깜한 세계에서 시인은 살고 있다.
내 성스러운 세계에 숨어
人間들의 눈길을 구한다
거리의 어두운 구석에 숨어
섹스를 파는 女子처럼
숙女여 나오세요!
당신이 거기 있는 거 알아요
사람들은 아는가
내가 지하에 사는 것을
싸구려 환락을 찾는 신사같이
그들은 나를 부를 것인가?
컴컴한 거리의 구석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수줍은 창女같이
나는 깜깜한 세계에서
보여지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 ⌜어둠의 노래⌟ 전문
<아저씨 같이 놀아요!> 같은 시에서 보면, 시인이 있는 곳엔 ‘항상 어둠이 내려 둥지가’ 되고, 시인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되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눈이 하나인 어른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그의 둥지는 ‘어둠의 둥지’이고, 십자가에 달렸으니 얼마나 깜깜한 어둠이며, 로댕의 고뇌하는 생각은 얼마나 깊은 어둠이겠는가. 눈이 둘이어도 밝히 보기 힘들겠거늘 하물며 눈이 하나인 사람이야 얼마나 어둡겠는가.
시 <까만 고양이>에서도, 장례미사에 까맣게 참석한 내가 제단을 보듯이, 까만 옷을 입은 고양이가 어딘가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 까만 옷, 장례미사 등은 모두 어둠의 이미지이다.
시 <벌레 씹기>에서 화자는 코흘리개 꼬맹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서 박수소리가 들릴 때 허접한 무대에서 내려 왔어야 했다고 자조 섞인 말을 한다. 어두운 관중석의 수군거림이 자신을 향한 찬사라는 착각을 즐기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어두운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런가 하면 <自己모멸의 방법>같은 시를 보면, 자기를 모멸하는 방법은 비칠거리며 걸어온 길을 보면 된다고 말한다. 길에서 버리지 않고 끌고 온 쓰레기와 모멸의 악취를 얼마나 견딜 수 있을 지를 묻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가장 좋은 모멸의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짙은 어둠에 쌓여 있다. 이런 어둠의 이미지는 <삼고초려> 같은 시에도 여실히 드러나 있다.
2. 어두운 무대, 삼류 드라마
세상은 삼류 드라마가 펼쳐지는 어두운 무대이다. 드라마는 빤한 주제의 허접한 이야기다. 책 읽는 듯한 대사, 너절한 연기, 작대기 같은 성형 배우, 모두 다 삼류다. 어차피 내 삶은 삼류 드라마다. 주제 없는 그저 그런 이야기다. 세상 참 어둡다.
허접한 이야기
빤한 주제
우연의 연속
허우대만 멀쩡한 꽃미남의
너절한 연기
작대기 같은 성형 미녀의
책 읽는 듯한 대사
삼류야 삼류!
그래도 재미있는 것을 어쩌나
하기는 내 삶은
저 드라마보다 더 후질지도
그래도 작가는 재미있게 보겠지
못하는 연기지만 열심히 해
혹시 각본에 없는
적당히 살찐 성형 안 한 美女 나타날지
어차피 내 삶은 삼류 드라마
주제 없는 그저 그런 이야기
- ⌜삼류 드라마⌟ 부분
이런 어두운 무대 삼류 드라마에서, 나는 무슨 역할을 맡아 어떤 연기를 할까?
시인은 주인공도 아니고, 중요한 조연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연이나 단역도 아닌 무대장치나 소품 역할을 하겠다는 꿈을 꾼다.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을 내가 고릅니까?
말해봐
내 머리는 힘차게 돌아간다
주인공이면 관객들의 주목을 받으면 좋겠지만
너무 힘들어 잘못하면 욕만 먹고
중요한 조연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조연이나 단역은
관객들에게 별로 보이지도 않으니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할 것 같다
무대 장치나 小品 역할을 하겠습니다
감독은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약은 놈
힘든 일 안 하고 주목만 받겠다고
하지만 무대 장치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느냐?
小品은 생각이 없이 감독이 있으라고 곳에
꼼작 않고 있어야 한다
무대 장치는 나무와 같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山을 지키는 나무
그러나 나는 움직이는 나무가 될지도…
배우들을 쫓아내고 무대를 장악할지도…
연극을 초토화할지도…
차라리 주연 배우가 되는 것이 나을지도…
감독이 나를 깨운다
수고했다 넌 타고난 小品이다
- ⌜나는 무대 장치가 되겠소⌟ 부분
인간들이 이 땅에서 하는 일이 높은 탑을 쌓는 일이었다.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함으로써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이 보시기에 그러한 탑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이었겠는가. 탑이 높으면 얼만 높겠으며, 인간이 위대하면 얼마나 위대하겠는가.
탑으로 상징되는 지상에서 계획되고 행해지는 인간의 모든 일들이 이처럼 가소롭고 초라하고 패역한 일이었다. 하느님은 이러한 인간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드셨고, 소통이 단절된 인간은 분열될 수밖에 없었다. 바벨탑은 무너졌다.
이것도 탑이라고 세웠나
내가 봐도 초라한 바벨탑에서
내 이름은 바로 탑 밑에 나뒹굴어지고
하느님의 진노를 빌릴 것도 없이
나 스스로 대화를 단절시킨다
이렇게 나는 분열되었다
또 하나의 돌을 올리려는 나는
무덤을 파는 나를 경멸하고
저 땅 밑에 숨으려는 나는
저 높은 곳을 향하는 나를
긍휼히 여기나
탑이 높아 봐야 얼마나 높으랴
무덤이 깊어 봐야 얼마나 깊으랴
작은 모래 탑 만들어 놓고
깔깔거리고 노는 어린아이를 닮음이 어떨지....
- ⌜초라한 바벨탑⌟ 전문-
그런가 하면 인간이 처한 현실은 앞이 꽉 막혀 길을 찾을 수 없는 아마존의 정글 같은 절망과 좌절의 땅이고(시<정글>), 시인의 인생은 ‘시시한 人生’(시<시시한 人生>)이다. 고급 외제 승용차들이 즐비한 주차장에 낡고 시시한 차를 몰고 들어갈 때 타인들의 경멸의 표정과 시선을 견디며 항변한다. 내 지성과 지혜와 영성은 결코 낡거나 시시하지 않다고! 그러면서 고급 승용차를 타고 와서 당당하게 문을 열고 내리는 꿈을 꾸는 시인은 모순적인 존재다.(시 <시시한 人生>)
이러한 절망과 좌절의 어둠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시인은 묻고 있다. 뒤를 돌아보니 길이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한데,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자기는 없는 길을 만들어 왔노라고 말한다. 막막한 길 앞에서, 내가 나의 길잡이가 되어 왼쪽 길로 들어서 볼까, 아니면 오른쪽 길로 가볼까, 하고 고민하면서 길잡이가 될 조언자를 찾는 꿈을 꾸기도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내가 그걸 어찌 알겠소?
내가 무슨 人生 상담가라도 된단 말이오?
당신이 걸어온 길을 보니
당신은 人生 전문가 임이 분명합니다
한마디 가르침을 주시지요
뒤를 돌아보니
길이 있는 듯 없는 듯
없는 길을 만들어 왔단 말인가
모델의 다리 같은 쭉 뻗은 고속도로를
스포츠카로 달려온 줄 알았는데
어찌 저런 길도 없는 정글을
나 같은 人間이 맨발로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네
다행이다 꿈이었으니
꿈에서나마 내 길을 보았으니
내가 나의 길잡이가 되어
왼쪽 길로 들어서 볼까
누가 나에게 길을 물으면
오른쪽으로 가라고 해야지
다행이다 나에게 길을 묻는 사람이 없으니
- ⌜길잡이⌟ 전문
이렇게 고민하면서, 조언자와 길잡이를 간절히 원한다. 작은 종이배가 세상 강물에 떠간다.
이제 빨리빨리 달려온 나그넷길을 끝내고
따끈따끈한 추억만 기억에 담은 채
슬금슬금 바다에 안기는 우람한 강물
가지에 단 하나 남은 애처로운 단풍잎처럼
달랑달랑 붙어가는 작은 종이배
저 뒤뚱뒤뚱 종이배는 어디서 왔을까요
처음부터 강물과 함께 미적미적 있었다네요
그럴 리가 그럴 리가 믿어지지 않는군요
저 강물은 멀고 먼 길을 헐레벌떡 달려왔을 텐데요
저 종이배는 뭣도 모르고 헉헉헉헉 따라왔겠지요
잘은 모르지만 이렇게 살그머니 시작되었겠지요
작은 물방울들 똑똑똑똑 떨어져
작은 돌 위에 떼굴떼굴 구르며 놀고 있을 때
작은 종이배 하나가 어디선가 하늘하늘 떨어져
지척지척 물방울을 타고 왔겠지요
물방울은 어디서 왔나요? 글쎄요
작은 종이배는 누가 만들었나요? 글쎄요
- ⌜그냥 작은 종이배⌟ 부분
뒤뚱뒤뚱 흘러가는 종이배, 강물은 멀고 종이배는 아무것도 모르고 헉헉거리며 따라간다. 작은 종이배는 누가 만들었을까? 작은 종이배는 어디서 왔을까? 이 작은 종이배가 흘러가는 물길은 사실은 밝음을 찾아가는 여정, 구원을 향해 가는 험난한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 ‘저 밝은 곳을 향하여’, ‘ 저 높은 곳 빈자리를 향하여’ 나아간다고 고백하고 있다.
터널의 어두움에 익숙해져
삶이 별로 불편하지 않다
아무의 눈에도 뜨이지 않는
자기 모멸 자기 비하가
일용할 양식이 되고
회한과 한탄이 영성이 되었지만
어둠 속에서 혼자 추는
춤에 지친 듯도 하다
저 멀리 작은 불빛으로 가면
밝은 곳이 나온다고 하는데
나는 그곳에 이르면 그냥
소멸하지 않을까
어둠이 내가 태어난 곳이고
삶의 터전이긴 하나
양지바른 곳에
나의 흔적이 뿌려지는 것도 좋을 듯
그래서 달린다
어두운 생각은 떨쳐버리고
저 밝은 곳을 향하여
- ⌜저 밝은 곳을 향하여⌟ 전문
이 낮은 곳에서 그저 눈높이로 바라보며
이 낮은 곳의 욕심 없는 나는
저 높은 곳의 보이지 않는 경멸을 나에게 돌리고
이 낮은 곳이 게으른 자의 무덤이 아닐까 자문해 보며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다리 한 번 뻗어 보니 혹시 닿을 것도 같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나
이 낮은 곳에서
저 높은 곳으로 가는 길이 없어
이 낮은 곳이 편함을 세상에 선포하고
저 높은 곳에서는 떨어지기 쉽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이 낮은 곳에서
저 높은 곳의 빈자리로 수직상승함을 꿈꾼다
- ⌜저 높은 곳 빈자리를 향하여 ⌟ 부분
예수님은 태어나서 30년을 세상에 잠복하고 있다가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천지를 진동시키셨고, 모세는 무려 80년의 잠복기를 보냈다. 이처럼 시인도 지금 잠복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며, 늦었지만 이제 곧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보자고 마음을 달랜다.
예수는 요란하게 태어나서
30년을 세상에 잠복하고 있다가
짧은 기간에 천지를 진동시켰다
모세는 무려 80년을 잠복했었다
나는 얼마나 큰일을 하려고
어둠 속에서 태어나
아직도 잠복하고 있는지....
졸고 있는 건 아닌지...
하기는 이런 조는 모습을 보고
잠복으로 착각한 女子도 있었으니까....
그녀가 맞을지도 몰라
세상이 너무 좁아
잠복한 모습 이 대로
지구를 탈출하여 저 우주로
하지만
잠깐 모습을 드러내어
世上을 뒤흔들고 가도… 좋지 않을까?
- ⌜잠복기⌟ 전문
궁금해
왜 저 나무는
수십 년이 지나도
꽃을 피우지 못할까
좀 더 기다려야 하나
한 송이도 피우지 못하고
망각 속으로 시드는 것을 봐야 하나
갈릴래아의 예수처럼
이 世上이 나무에게 너무 작은가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을
부활로 장식하고
神話를 완성했는데
나도 이 앙상한 나무 몸통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새겨 넣고
생명을 불어넣어 줄까
잠깐…
조금만 더 기다려 봐…
- ⌜늦게 피는 꽃 ⌟ 전문
3. 어둠 속에서 꿈을 꾸다
성경에 보면 모세는 참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을 살았다.
애굽의 압제를 받는 히브리 민족의 사내아이로 태어나서, 애굽 왕의 명령에 의하여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버려지고, 죽을 고비에서 애굽 공주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진다. 왕궁에 들어가 공주의 아들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자기 민족이 당하는 고난과 압제를 보고 의분을 터뜨림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피신하여 광야로 숨어든다.
거기서 40년을 살다가 80세가 된 늙은 모세가 하느님의 부름을 받는다. 불이 붙은 떨기나무가 타지 않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기며 다가갔을 때, 불꽃 가운데 임하신 하느님을 만나고, 새로운 사명을 받아 민족 구원이라는 큰 꿈을 꾸게 된다. 모세에 의하여 히브리 민족의 새로운 역사가 씌여지게 되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은 하나하나 차근차근 진행되게 된다.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
- 탈출기 3,3
80년을 살아온 모세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하니
불타는 떨기나무가 보이다
꿈이 이루어짐에 충격받은 모세
도망가려 하나
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굴복하니
슬며시 미소짓는
모세의 꿈
꽤 오래 산 나에게
불타는 떨기나무는
어젯밤 꿈에 본 그녀?
더 살아야 할 듯…
- ⌜모세의 꿈⌟ 전문
어찌 새로운 역사를 펼쳐가고자 하는 꿈을 모세만 꾸겠는가. 시인도 ‘사그라지지 않는 꿈’을 꾼다.
마음이 맷돌을 매달고
저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을 때
등을 슬금슬금 기어오르는
꿈이 있다 쪽팔려
저 어두운 구석으로 몰아냈던
꿈 무덤 속의 시신같이
다 분해되어 몇 조각의 뼈만
남아 있을 줄 알았던
꿈
꿈이란 꿈 다 바수어지고
매우 오래된 무덤 속의 관같이
삭고 도 삭아
꿈 꾼 기억조차 찾아볼 수 없을 때
숨어 있던 이
꿈은 영원히 살려는 듯
사그라지지 않는다
- ⌜사그라지지 않는 꿈⌟ 부분
그 꿈은 ‘선구자의 꿈’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꿈밖에 없지만, 선구자가 되어 자그마한 낫 하나 손에 들고 길 없는 정글 앞에 선다. 대낮에도 깜깜하여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는 정글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치지 않는 선구자가 되는 꿈을 꾼다.
자그마한 낫 하나 손에 들고
길 없는 정글 앞에 섰다
가진 것이라고는
꿈밖에 없는 선구자
수많은 크고 작은 길을 가지 아니하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길을 만들겠다는
꿈꾸는 선구자
대낮에도 깜깜한
낫이 없이는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는 정글에서
포기하지 않는 지치지 않는
꿈쟁이 선구자
- ⌜선구자의 꿈⌟ 부분
이런 과정에서 날개를 달고 한번 날아보고 싶은 꿈도 꾸고 ( 시 <날개>), 꼴찌가 첫째 되는 백일몽도 꾼다. (시 <백일몽>) 이 꿈은 마태오 복음서 20장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들의 비유’와 오버랩 된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마태오 20,16
이름 아침부터 장터를 어슬렁거리던 나는
뭘 하고 있나? 물론, 白日夢…
한 사람이 다가와
“제 포도원에 와서 일하시오. 보수는 섭하지 않게 주겠소.”
꿈꾸느라고 바쁜 나는 그 제의를 말없이 거절
그 사람은 그 후에도 여러 번 와서 같은 제의를 했으나 모두 거절
내 달콤한 白日夢을 포기할 수 없었으니
하루가 끝날 즈음 그 사람은 다시 와서
“이번이 마지막이오. 포도원에 와서 일하시오. 보수는 제대로 주겠소.”
온종일 白日夢에 지친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햇빛이 따가워 눈을 뜨니 아직 한 낮이다
내가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꿈 치고는 괜찮은 꿈인데
혹시 정말 포도원 주인이 다시 오려나 기다려 본다
이왕이면 늦게 늦게 오기를 바라며
다시 白日夢으로…
- ⌜白日夢 ⌟ 부분
이 외에도 꿈쟁이의 ‘꿈’은 <터널>, <사막의 판타지>, <山불>, <오늘의 언어>, <오래된 날개>, <또>, <날개 달린 호랑이>, <대박>, <고래의 꿈> 같은 시에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4. ‘밝음’의 탄생
하느님의 놀랍고 끈질기고 지독한 사랑의 실현인 인간구원의 대하드라마는 지구라는 무대에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등장함으로써(재림하심으로써) 완성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이시다. 어둠 속에 도래할 진정한 ‘밝음’이다.
객석에 어둠이 내리고
무대에 찬란한 햇빛이
소나기같이 쏟아진다
고장 난 비행기
게으른 새
우울한 댄서
너는 어느 쪽?
어깨가 근질거리면
무대에 올라와
밝은 곳에서 춤을 추어보렴
어두운 객석이 좋다면
소멸의 길을 걷는 것
무대에 오르지 않으면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
사느냐 죽느냐
단지 햄릿의 문제만이 아닌
또한 나의 문제
- ⌜밝음의 탄생⌟ 부분 -
우리는 이 무대에 올라가 밝은 곳에서 춤을 추어야 한다. 어두운 객석에 앉아 있는 것은 소멸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밝음의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면 그것이 죽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가 어찌 햄릿만의 문제이겠는가. 그것은 나의 문제, 모든 인간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날에, 어둠의 땅에 밝음이 찬란하게 비췰 것이다. 빛줄기가 소나기 같이 쏟아질 것이다. 죽음의 땅에 영원한 참 생명이 꽃 필 것이다. 시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늦게 피는 꽃나무다. 그래서, 시인이 부르는 노래는 어둠의 노래이지만, 그것은 ‘밝은’ 어둠의 노래인 것이다.
약력:
시인,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1949년 충남 당진 출생
1983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짓기 위하여’, ‘가평에서는 모두 손을 흔든다’
연구서: ‘한국 현대 문학과 전통’, ‘한국현대시와 설화’, ‘한용운 시 은유의 특질’
현 재: 짚신문학회 수석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