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을 줍다
- 투명한 언어와 맑은 정신이 갖는 천진성
백 원 기
동방대학원대학교 교수
1. 그리움은 밥상이다.
박목월의 시〈산이 날 에워싸고〉에 감동을 받아 시를 쓰게 되었다는 나태주의 시 세계의 특징은 인간과 자연에 깊은 사랑과 생명의식의 천착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그의 시는 투명한 언어와 맑은 정신, 사물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어우러져 천진성과 반 인위적 서정성으로 나타난다. “그리움은 삶의 밥이다”라는 시인의 말에서 보듯이, 그리움은 우리를 숨 쉬게 하고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따라서 그의 초기 작품들은 유년의 추억, 소년의 열정, 그리고 청년의 그리움과 사랑 등이 주조를 이룬다. 그 대표적인 시가 가을날 대숲에서의 상념과 깨달음을 담고 있는 〈대숲 아래서〉이다.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득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대숲 아래서〉부분
시인의 등단 작품이다. 대숲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공간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는 그리운 임을 떠올리며 슬픔에 젖기도 하지만, 자연적 세계 속에서 모두가 내 것일 수도 내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닫고 있다. “대숲을 몰고/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고 함으로써, 시인은 인간적 아픔을 자연을 통해서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밤 소나기 소리와 밤바람 소리 등 자연의 매개물을 통한 위로와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모두가 내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이 자족적인 공간은 꾸밈없이 살고(무위), 욕심이 없는(무욕) 조화와 순응의 세계로서, 동양적 세계관을 잘 보여 준다.
불이 켜지고 있었다
장독대 곁에 과꽃이며 분꽃
두어 송이 던져놓고
부르지 않았음에도
방안까지 들어와 흐느끼는
풀벌레 울음
창밖에 서성대는 빗방울 두어 날
우산 씌워 세워놓고
불이 켜지고 있었다
그리고 사기 밥그릇에
숟가락 부딪는 소리
드문드문 흩어졌다.
-<저녁 일경> 전문
‘장독대 곁에 과꽃이며 분꽃 / 두어 송이 던져놓고’ 방으로 달려들어온 풀벌레 소리가 저녁의 한가로운 풍경이 그려진다. 나태주의 시는 이처럼 눈앞에 실경으로 보여지고 있는 것을 따뜻하게 그리는 특징을 지닌다.
2. 시인은 마음의 보석을 줍는 사람
짧고 쉬운 시를 쓰기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짧은 글에 강한 메시지를 함축할 수 있는 문학적 내공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음 속에 생각의 보석을 지니고 있다. 다만 캐내지 않아 잠들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태주는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이 시이고, 그것을 줍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정의한다.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
-〈시〉전문
그의 시가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도 짧은 시 속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면서 내가 아닌, 너이면서 너에게서 끝나지 않는 특수성과 보편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재발견해내는 사람,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 시인임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파블로 피카소는 구순이 가까운 나이에 그림 그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처럼 그림 그리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늙었다”고 말했다 한다. 나태주 역시 피카소처럼 아이의 감성으로, 아이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시를 쓰고자 한다. 어린이와 같은 호기심, 어린이와 같은 순진성, 어린이와 같은 감수성이 남아있을 때 자연의 사물을 새롭게 보고 그 의미를 인간의 측면과 관련지을 수 있다. 따라서 어린이적 천진성에 대한 전심은 나태주의 시창작의 중요한 원리라 할 수 있다. 광화문 교보빌딩 글판에 내걸렸던 <풀꽃>은 시인의 풀 한 포기, 꽃잎 하나에도 깊은 감성을 부여하고, 무한한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잉태된 아름다운 동심의 시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풀꽃>
작은 것 하나도 가볍게 지나치지 않는, 풀꽃을 보는 시인의 여리고 맑은 마음의 결이 보인다. 풀꽃은 작디작고 이름 없는 꽃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더없이 예쁘고, 오래 바라보면 더없이 사랑스럽다. 모든 사물을 자세히 보면 느끼게 되고 알게 되고 듣게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오래 보아야 한다는 것은 그것에 몰입하고 집중하라는 의미이다. 그래야만 그 대상의 내면에 감춰진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랑의 실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보잘 것 없는 풀꽃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애정이 이 땅의 민초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고, 전 국민의 애송시가 되고 있다.
3. 저녁 때 돌아갈 집 있으면 행복
행복이란 거창한 것도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아주 사소한 것이고,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그 무엇’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시인은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고,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면 행복하다고 한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행복 〉전문
“저녁때 /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나의 행복의 근본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사실을 아는 것도 하나의 깨달음이다. 저녁 때 돌아가 몸을 쉴 수 있고,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고,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각성과 인정은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엔돌핀을 생성하기도 한다. 또한 시인은 사랑의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가까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 전형적인 시가 시간에 대한 안타까운 성찰과 가족에 대한 따뜻한 감정을 담아낸 〈가족〉이다.
펄렁!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면서 말했다
잘 있어, 나 먼저 가
펄렁!
나뭇잎 하나가 또 떨어지면서
말을 받았다
같이 가, 나도 지금 갈 거야
지나는 바람이 귀 기울였다
땅바닥이 부드러운 품을 열어
안아주고
햇빛은 또 쓸쓸한 이불을 꺼내어
그들을 덮어주었다.
-〈가족〉전문
간결하고 표현은 낮되 그 속에 내용과 울림은 크고, 깊으며 멀수록 좋다고 말하는 시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면서도 질긴 가족애에 깊은 초점을 둔다. 사랑은 부서질 듯 부서질 듯하면서도 끝끝내 끊어지기를 거부하는 애틋한 마음의 거미줄이다. 그 사랑의 밀도와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는 시간과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의 비례를 시인은 이렇게 묘출한다.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부탁〉전문
사랑이 멀리 도망갈까 노심초사하는 시인은 그 마음의 길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라’ 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목소리 들리는 곳은 어디인가? 바로 우리가 숨 쉬고 사는 현실 세계이다. 아울러 보이는 곳은 어디인가? 내 시선이 머물 수 있는 지금, 여기다. 사랑은 먼 곳을 생각지 않고, 사랑은 먼 미래를 약속하지 않으며, 과거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네 목소리가 들리고 네 체취가 스며있는 그곳에서 조용히 미소짓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화자는 지금 걱정이다. 멀리 갔다 돌아오는 길 잊을까 봐, 혹시라도 나의 언약을 다 망각해버릴까 봐 ‘부탁’하는 것이다. 부탁한다고 해서 사랑이 이루어질 것인가? 그러나 시인은 순수하게도 모든 걸 다 믿어버린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멀리서 빈다〉전문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는 시인이다. 그러니 힘든 세상 절망하거나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아가길 희원하는 시인의 심사가 도드라져 보인다.
4. 삶과 죽음이 접경에서 피워 올린 무지개
2007년 기적적으로 살아난 시인은 생명에 대한 뿌리 깊은 감사와 축복과 외경을 잊지 않는다. 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작은 실천이 담백한 질감 속에 녹아 자연 친화의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삶의 성찰과 애잔한 사랑의 깊이를 더하고 있는 〈눈부신 속살〉에 한결 잘 묘사되고 있다. 가을볕에 새하얗게 드러난 호박고지를 소재로 하여 생명의 신비와 감사와 내밀한 기쁨을 담아내고 있다.
담장 위에 호박고지 가을 볕 좋다
짜랑짜랑 소리 날듯 가을볕 좋다
주인 잠시 집 비우고 외출한 사이
집 지키는 호박고지 새하얀 속살
눈부신 그 속살에
축복 있으라.
-〈눈부신 속살〉전문
병마와 같은 삶의 예기치 못한 순간들을 치열하게 살아온 시인의 회한과 깨달음의 시선이 따뜻하며, 향기롭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빈 몸을 유감없이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속살의 눈부심이, 서둘러 살아온 생의 고투와, 멈춰서 뒤돌아보는 회한과, 기대할 것도 남아 있지 않은 미완의 삶을, 관조와 달관으로 따뜻하게 응시한다.
나태주는 참된 명시는 시인의 영혼이 스며들어 있는 시이고 자기 생각과 감정을 언어와 일치하여 이들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이 참된 시인의 작업이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병고를 극복한 시인은 자신 시의 마지막 귀착점을 영혼의 세계, 그 보이지 않는, 현상 이전이거나 그 초월의 세계를 담아내는 것에 두고자 한다. 생사의 문턱을 넘나든 적이 있는 시인은 고요히 말라가는 웅덩이 물속에 죽어가는 송사리를 통해 삶과 죽음, 황홀과 고통의 접경에서 느낀 감회를 송사리 엷은 비늘에서 스쳐본 무지개를 세우던 햇빛으로 묘사한다.
시시각각 물이 말라 졸아붙는 웅덩이를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오직 웅덩이를 천국으로 알고 살아가던
송사리 몇 마리
파닥파닥 튀어 오르다가 뒤채다가
끝내는 잠잠해지는 몸짓
송사리 엷은 비늘에 어리어 파랗게
무지개를 세우던 햇빛, 그 황홀
-〈황홀〉전문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의 그늘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송사리 몇 마리에는 화자의 감정이입이 있다. 웅덩이에 물이 늘 공급되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오직 웅덩이를 천국으로 알고 살아가던’ 송사리는 물이 말라가는 상황이면 목을 조여 오는 죽음의 덫에 온몸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파닥파닥 뛰어 오르’고 ‘뒤채’기도 한다. 송사리는 우연한 죽음에서는 ‘끝내는 잠잠해’ 질 것이지만, 그 생명은 온몸을 통해 ‘무지개’를 반사한다. 그 가장 황홀한 순간이 곧 ‘무지개를 세우던 햇빛’이 겹쳐지는 순간이다. 미물에 불가한 송사리일지라도 죽음에 대해서는 이처럼 격렬하다.
시인은 ‘그 황홀’이라는 표현을 통해, 무지개의 이상향적인 숭고미가 관통한 송사리의 죽음이 ‘죽음’이라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에 저항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죽음은 분명 나 자신의 일부이다. 그러나 나는 끝내 죽음을 알 수 없다. 죽음은 존재의 완전한 부재이다. 바로 그 송사리가 그토록 아름다운 최후를 삶의 내부에서 내뿜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 다른 방식의 부재가 있다.
요컨대 나태주는 전통적인 서정성을 바탕으로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력과 사색, 천진하고 참신한 사유로 일상을 노래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외롭고 지친 사람들에게 보내는 따스한 눈빛이자, 포근히 감싸주는 위로와 격려의 손길과도 같다. 무엇보다도 반 기교적이고 맑고 투명한 그의 시 세계는 우리들로 하여금 세상을 맑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런 점에서 나태주의 시세계는 현대인들의 혼탁한 정신을 정화시켜주고, 세상에 대한 갱신의 눈을 새롭게 눈뜨게 해준다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약력:
나태주(1945-)는 충남 서천 출생으로 1963년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부터 교직에 종사해 2007년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대숲아래서》《막동리 소묘》《황홀극치》《산촌엽서》《눈부신 속살》등이 있다. 흙의 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했고, 충남문인협회장, 충남시인협회장, 한국시인협회 심사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공주문화원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