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음식, 맛있는 스페인 카탈루냐
유럽에서 이탈리아, 프랑스와 함께 맛도락을 즐기고픈 곳이 있다면 바로 스페인이다. 그중 북동부를 차지하고 있는 카탈루냐로 향했다. 풍요로운 자연, 호쾌하고 정열적인 사람들이 만든 다채로운 식탁, 뜨거운 태양을 그대로 담은 훌륭한 와인이 있었다.
무려 3억 병의 카바가 보관되어 있다는 코도르뉴 지하 와인 저장고. 국가 지정 문화재다.
“바모스 데 피에스타Vamos de fiesta!” 생애 처음 배운 스페인어 한마디는 바로 “파티에 가자!”였다. 내 친구 후안, 옥타비오, 다니엘, 실비아는 피 끓던 20대 초, 영어를 배워 보겠다는 공통 목표 아래 아일랜드의 한 대학교 기숙사에 모인 스패니시들이다. 거짓말이 아니라, 나는 이들을 통해 굉장히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전형적 범생이였던 내게 이들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알려줬다. ‘세계에서 가장 낙천적인 언어는 스페인어’라고 밝힌 미국 버몬트 대학교의 연구 결과에 적극 공감 한다. 친구들이 항상 내뱉는 “물론이지”, “좋아”, “괜찮아”, “아무렴 어때”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때부터였다. 늘 조심스럽고 나보다 주변을 살피며 완벽히 준비된 일상을 살았던 내가 변화를 시도했다. 그 첫번째 발걸음이 ‘여행'이었다.
코도르뉴에서의 와인 테이스팅과 타파스 런치. 카바는 식전주로는 물론 식사 중 음식에 곁들여도 좋다.
예이다 주에 위치한 라이마트의 수석 와인 메이커 엘리자베스.
코도르뉴 와이너리를 찾아가는 길에 만난 몬세라트 산.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걸작 중 하나인 카사 바트요.
아일랜드에 머물렀던 9개월간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났는데 그중 꼭 다시 찾기로 단단히 결심한 곳은 스페인의 대표 도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였다. 그해 여름, ‘내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두 도시로 향했다. 각각 3일씩 머무르며 친구와 친구의 친구, 친구의 가족들의 에스코트를 받아 유명 관광지부터 로컬들의 아지트까지 구석구석 쏘다녔다. 솔직히 마드리드 왕궁이 어떻게 생겼는지, 프라도 미술관에서 어떤 작품을 보았는지,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건축물 중 기념 사진을 찍은 곳이 카사밀라인지 카사바트요인지는 금새 잊어버렸다. 하지만 첫 아침 식사로 먹었던 추로Churro, 마요르 광장에서 먹었던 오징어 튀김, 밤 10시에 친구 어머니가 차려준 스페인식 오믈렛과 파에야, 밤새 자리를 옮기며 맛본 리오하 와인과 갖가지 타파스! 그 맛, 이들을 맛본 장소며 당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달라고 하면 몇 시간이라도 떠들 수 있다.
스페인 음식에 열광하는 것은 내 먹성이 워낙 남달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여행자들을 매혹시키는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 천혜의 바다, 찬란한 문화가 음식에 모두 버무려져 있지 않나? 게다가 스페인 음식은 이국적이면서도 우리와 잘 맞는다.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것은 타파스Tapas. 본래 타파스는 식사 전 술과 곁들여 먹는 작은 전채다. 스페인어로 타파tapa는 ‘덮개’를 뜻하는데 과거 타파스를 낼 때 맥주잔이나 와인잔 위에 작은 접시를 얹고 음식을 올린 데서 유래했다. 우리에게 타파스는 훌륭한 식사가 된다. 서양 도시들을 여행할 때면 부담스러운 음식 양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가 많은데 스페인에는 타파스가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양한 메뉴를 주문해 함께 나눠 먹을 수 있으며 한 곳에서 배불리 먹지 않고 여러 곳을 찾아 서로 다른 타파스에 도전할 수 있다.
ABaC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 조르디 크루즈의 창조적 요리. 스페인에 페란 아드리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어딜 가나 환히 웃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바르셀로나 항구의 평온한 모습. 왼편으로 콜럼버스 기념탑이 보인다.
람블라스 거리에 위치한 보케리아 시장의 타파스 바. 간식 시간인 메리엔다를 즐기는 중.
이번 여행에서는 본격적으로 '스페인의 맛'을 만끽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당연히 마드리드 혹은 바르셀로나를 목적지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도를 들여다 보니 가을 바람결의 갈대처럼 마음이 정처없이 흔들렸다. 스페인은 한국의 5배 정도 되는 면적을 가진 나라다. 총 17개의 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아하니 각자 품고 있는 매력이 대단하다. 동쪽으로는 따스한 지중해가, 북서쪽과 남쪽으로는 거친 대서양이 둘러싸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험준한 피레네 산맥이 뻗어 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공식 언어가 4개나 된다는 점. 언어가 다른 만큼 독자적인 문화를 고집스레 지켜왔을 것이다. 이를 식탁 위에 자랑스레 펼쳐 보일테고. 하지만 이토록 넓은 스페인을 단번에 여행할 수 없으니 딱 한 지방만 욕심내기로 했다. 바로 스페인북동부를 차지하고 있는 카탈루냐다. 카탈루냐는 동쪽엔 지중해, 북쪽엔 피레네 산맥이 위치해 풍요로운 산과 들판, 바다를 지니고 있다. 훌륭한 자연이 빚은 풍성한 식재료뿐만 아니라 이를 감동적으로 요리하는 셰프들도 수두룩하다. 카탈루냐의 주도인 바르셀로나는 수도인 마드리드를 제치고 스페인 제1의 미식 도시로 통한다. 21세기 미식의 한 축을 담당한 분자 요리의 대가 페란 아드리아가 바르셀로나 출신이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미슐생 스타 셰프가 된 조르디 크루즈가 현재 미식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음식과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은 와인이다. 카탈루냐 지방은 세계적인 와인 산지로도 유명하다. 최근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스페인의 스파클링 와인 '카바cava'가 탄생한 곳이자 스페인을 통틀어 최고급 레드 와인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에서 차를 타고 1시간만 달려도 달콤한 포도 향으로 가득한 와이너리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우선 와이너리부터 방문하는 일정을 꾸렸다. 지도로만 보았던 카탈루냐의 다채로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3곳의 와이너리를 들러 바르셀로나에 이르기까지 더할 나위 없이 먹고 마셨다. 일주일 간의 여정 후, 결국 다음 휴가지마저 다시 스페인으로 정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