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1일 오전 전남 신안군 흑산면 매물도의 염소 두 마리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관용선 ‘국립공원 302호’에서 쏜 총소리를 듣고선 절벽 위로 도망치고 있다. 1970년대 중반 주민이 풀어놓은 가축이 야생화되었다.
▶ 전남 신안군 흑산면의 매물도는 염소가 지배합니다. 1970년대 한 주민이 풀어놓은 염소가 개체수를 불렸고 무인도를 망가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국립공원에 편입된 뒤 올해부터 생태계 복원을 위한 제거 작업이 시작됐는데, 인간과 염소의 싸움이 호각지세입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포수를 동원했고, 지난 4월21~22일 섬에는 탕, 탕, 탕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야생화됐지만 야생동물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상한 존재 ‘매물도 염소’의 기원과 소멸을 추적했습니다.
하루 두 배의 속도로 연못을 덮고 있는 수련이 있다고 하자. 30일째 연못이 수련에 완전히 뒤덮인다고 가정할 때, 연못의 절반이 덮일 때는 언제일까. 29일째다. 민간 환경 싱크탱크인 지구정책연구소의 레스터 브라운 소장은 이 비유를 들며 최후의 순간까지 지구환경의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를 경고한다.
전남 신안군 흑산면 매물도(교맥도). 이 섬에서 풀을 뜯던 염소도 종국에는 자신의 운명을 천길 낭떠러지로 몰고 가고 있음을 몰랐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우이도에서 40분, 흑산도에서 1시간 반, 지나가는 고깃배조차 눈길을 주지 않는 망망대해의 무인도다. 제주 마라도(30만㎡)의 절반도 안 되는 이 작은 섬(13만3884㎡)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염소 수십 마리다.
“흑염소입니다. 그러니까 매물도에 들어온 게 1970년대 중반쯤이에요. 우리가 조사를 해봤더니 흑산도 옆 장도 주민이 풀어놓고 갔더라고요.”
지난 4월21일 오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22t급 관용선 ‘국립공원 302호’가 매물도를 향해 망망대해를 건너고 있었다. 배 안에서 다도해공원 서부사무소의 송도진 자연자원과장이 ‘매물도 염소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맨 처음 암수 두쌍이 무인도에 상륙했다. 염소 몇 마리 방목해서 나중에 염소탕이나 해 먹을 요량이었던 주인은 점차 이들의 존재를 잊어갔다. 그사이 최상위 포식자 염소는 개체수를 불려나갔다. 올해 초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추정치로는 20여마리. 매물도는 염소의 천국이 되었다.
국립공원의 ‘에일리언’
미국 알래스카의 디날리국립공원에서였다. 칼처럼 이어진 능선, 흘러내린 낭떠러지 앞에서 관광객들은 게임 ‘월리를 찾아라’에 빠진 것처럼 ‘산양을 찾아라’를 하고 있었다. 산양 한두 마리가 관찰되면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국립공원 302호의 승객들도 월리를, 아니 흑염소를 찾고 있었다. 배가 엔진을 죽이고 매물도를 천천히 한바퀴 돌았다. 사람들은 성곽처럼 우뚝 솟은 섬 구석구석을 훑었다. 매우 유사한 광경이었다. 다른 것은 알래스카의 산양이 야생의 ‘귀하신 몸’ 멸종위기종이라면, 매물도의 흑염소는 영양탕집에서 파는 흔한 ‘가축’이라는 사실뿐.
그때 염소 두 마리가 섬 북쪽 낭떠러지를 횡단했다. 포수 세명이 번갈아 총구를 겨눴다. 탕, 탕, 탕. 검은 물체가 잠깐 비틀거렸고, 흙바람이 일었고, 돌이 굴러떨어졌다. 탕, 탕, 탕. 바위 뒤로 숨었다. 한 포수가 농담을 던졌다.
“너무 멀어요. 염소가 (총알을) 훌훌 털고 가버린당께요.”
매물도는 2011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편입됐다. 우리나라에 국립공원이 생긴 건 1967년(지리산)이 처음이고, 세계에서는 미국 옐로스톤이 1782년 처음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세계적으로 국립공원은 ‘야생 보전’이라는 이념을 지켜왔다. 국립공원에서 인간은 야생에 개입해선 안 되고 자연은 순수 그대로 존재해야 한다. 염소는 야생동물이 아니라 가축이다. 국립공원의 ‘에일리언’이다. 생태계 일원으로 승인되지 않은, 추방되어야 할 대상이다.
환경부는 2011년 연구를 통해 염소가 수용한계 이상으로 증식하면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을 내리고 염소를 ‘생태계 위해성 2급 종’으로 분류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2000년 외래종 전문가 그룹(ISSG)에 연구 용역을 줬고, 연구 결과 ‘100대 악성 외래종’에 염소가 포함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00년대 중반부터 해상국립공원에서 염소 포획 작업을 벌여왔다. 다도해와 한려해상 국립공원 17개 섬에 모두 775마리의 염소가 사는 것으로 공단은 추정한다. 대부분 인근 주민들이 국립공원 구역 안에 무단 방목한 염소들이다. 그래도 염소의 소유권은 주민에게 있으니, 공단은 먼저 소유자를 찾은 뒤 포획 작업을 시작한다. 염소 주인이 여럿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송도진 과장은 “염소는 여섯 마리인데, 염소 주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넷이나 나타난 적도 있었다. 합의 보라고 한 뒤 넘겨줬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2612마리의 염소를 포획했다. 염소 포획은 ‘생포’가 원칙이다. 섬 여기저기 그물을 친 뒤 몰아서 잡은 산 염소를 소유주에게 전달한다. 매물도에서 포수를 동원한 건 인간과 염소의 싸움이 호각지세가 되면서 끝이 날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도진 과장이 말했다.
“염소가 사람을 알아봅니다. 국립공원 배가 매물도에 접근하면, 섬 정상에 염소 한두 마리가 딱 서 있는데, 사람 오는 줄 알고 나머지 염소들이랑 싹 피해서 섬 북쪽 절벽으로 도망칩니다. 거긴 우리가 접근 못 하는 데예요.”
인간을 본 염소는 절벽으로 몸을 숨긴다. 염소의 목숨도 경각에 달렸지만(생포되더라도 흑염소집에 갈 게 확실하므로), 사람의 목숨도 경각에 달렸다. 2009년에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염소몰이를 하던 공단 직원이 숨졌다. 매물도에서는 지난 3월부터 세 번의 그물몰이 작업을 통해 염소 18마리를 ‘생포’했고, 이제 섬에는 5~7마리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었다. 송도진 과장 등은 더이상 그물몰이 방식의 생포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