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창살 통풍구' 등 일부시설 확인…70년간 '도심흉물'로 방치
거주민 "무서워 들어가 보지도 못해"…中 '재평가 작업' 시사
'청포도의 시인' 이육사(1904∼1944) 열사가 모진 고문으로 순국한 곳으로 추정되는 베이징(北京)의 '일제지하감옥' 시설이 지금도 70년 전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고증 작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 시설물은 재개발 등으로 조만간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 베이징시는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혀 앞으로 새로운 항일유적지로 보존·개발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2일 베이징지역의 문화유산 보호전문가와 국내 일부 역사학자에 따르면, 베이징 도심 왕푸징(王府井) 대로에 인접한 '둥창후퉁(東廠胡同) 28번지'에는 일본 헌병대가 1937년부터 패망 직전까지 감옥시설로 사용했던 일제식 2층 건물이 남아있다.
연합뉴스가 지난 5∼7월 두 차례에 걸쳐 이 시설물의 실태를 자세히 살펴본 결과, 지하감옥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지하공간과 지상감옥 시설의 일부로 보이는 오래된 쇠창살 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현재는 민가로 쓰이는 이 건물의 크기는 대략 가로 25m, 세로 8m다.
10대 때부터 줄곧 40여 년을 이곳에서 살았다는 주민 자오쥔(趙軍) 씨는 "지하에서 지상 2층까지 건물 전체가 감옥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하실은 중범죄자 고문·감금 등 사용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건물의 외벽 바닥 부분에서 굵은 쇠창살이 박힌 길이 50㎝의 환기구멍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하감옥 전체에 1m 깊이의 작은 구덩이가 파여 있다", "전체가 큰 물감옥(水獄)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이 지하실의 구체적인 모습은 일제 패망 7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실상 '미확인' 상태다.
-이육사 순국한 일본 지하감옥, 베이징에 여전히 존재
자오 씨 역시 "감히 지하실에 들어가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하로 통하는 입구는 이미 오래 전에 주민들에 의해 봉쇄된 상태였다.
이육사는 1943년 서울에서 체포돼 베이징으로 이송됐다. 국내 일부 역사학자와 이육사 후손들은 일제 헌병들의 시신 인계장소 등을 고려할 때 바로 이곳에서 이육사가 모진 고문 끝에 숨을 거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지상 1∼2층 내부공간은 수십년 간에 걸친 걸친 증·개축으로 옛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이 일제시설물은 중국의 많은 항일지사들이 고초를 겪은 현장이라는 점에서 중국내 역사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일찍부터 보존 필요성이 제기돼왔지만, 베이징시는 "구체적인 사료를 확보하지 못했다"며 줄곧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탐사보도 언론가이자 중국문물학회 회원인 쩡이즈(曾一智) 씨는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2011년에 베이징시에 이 시설물에 대한 보호조치 필요성을 요청한 바 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평가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인민의 항일전쟁 승전 70주년'(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계기로 중국 내에서 미확인 항일유적지 보존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면서 베이징시도 이 일제 시설물에 차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베이징시 둥청(東城)구 문화위원회는 최근 연합뉴스의 관련 서면질의에 대한 답변서에서 "예전에 실시한 전문가 조사에서는 이 시설물이 일제감옥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면서도 "추가조사를 통해 충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료를 확보한 뒤 (보존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