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서 최근 한국문학 추세 비판…"소설의 기본은 서사"
소설가 황석영(72)씨가 "오늘날 한국문학이 '이 꼴'이 된 것은 문예창작학과 때문"이라며 최근 한국문학 추세에 날 선 비판을 가했다.
10일 밤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열린 '교보 인문학석강'에 강연자로 나선 황씨는 "문예창작학과에서는 글 쓰는 '기술'을 가르치는데, 그래서인지 최근 작가들은 서사와 세계관이 모자라 작품에 철학이 빠져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느냐는 청중의 질문에 답한 것이었다.
황씨는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한 작가가 워낙 많아 문학상 본선에 올라오는 작품이 모두 무난하고, 문장과 구성이 좋지만 작품들이 다 똑같다"면서 "이 때문에 신춘문예 심사를 하지 않은 지 1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흐의 그림은 그림으로서 잘 그렸나 못 그렸나보다 자기 인생과 세계관을 투여했기 때문에 감동이 있다. 소설 쓰는 일도 자신의 세계관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며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주변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탐구하고 그 이야기를 자기화하고 필터링(여과)해 내놓는 것이 소설의 기본인 '서사'"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1970년대 전국을 떠돌아다닐 때의 경험과 공장에 위장취업한 기억 등을 털어놓은 작가는 "최근 젊은 작가들의 약점은 체험의 강도와 서사가 약한데다 작품에 작가가 이전에 본 텍스트(글)의 그림자가 다 보인다는 점"이라며 "작가는 이전에 본 텍스트를 자기 체험의 용광로에 녹여서 다시 내놓아야 하고,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황씨는 "1990년대에 독일에 망명했을 때 '아시아 예술가는 학위를 중시하더라'는 말을 들었다"며 "저는 예술 교육을 믿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작가는 최근 한국 소설이 작품 전체 서사의 탄탄함보다 '문장'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도 비판했다.
그는 "소설은 첫 제목부터 맨 마지막 문장의 구두점을 찍을 때까지, 전체의 컴포지션(구성) 안에 미학이 총체적으로 들어 있는 것"이라며 "이야기 자체가 아름다움인데, 최근에 왜 그렇게 세세한 문장 표현에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문학이 지금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말에 황씨는 "문학은 우리를 돌아보는 시선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씨는 "한동안 작가가 현실과 결부된 글을 쓰면 촌스러운 것처럼, 낡은 것처럼 말하기도 했지만, 문학은 당대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 같은 사건이 생겼을 때야말로 사회가 스스로 돌아보는 시선이 필요한데, 문학이 그런 것을 응원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의 미래에 대해서는 "사람이 살아있는 한 아날로그적인 이야기는 죽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이야기를 어디에 담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이야기는 영원하지만, 그것을 담는 출판이 현재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씨의 강연은 '나는 왜 여기 서 있나?'를 대주제로 모두 3회에 걸쳐 마련됐다. 이날 황씨는 독자 약 1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자신의 소설집 '객지'와 대하소설 '장길산' 등을 바탕으로 '개발 독재와 근대화'를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