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의 형식

조회 수 1534 추천 수 0 2019.11.11 09:00:04

현대시조의 형식

- 김상옥의 『초적(草笛)』과 이승은의 『넬라 판타지아』의 비교

 

이솔희

 

 

시조의 형식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3장 6구 12음보이며 종장 첫 음보의 자수가 3자라는 점이다. 그리고 단시조와 연시조의 형식으로 가장 많은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시조에서 근대시조를 거쳐 현대시조로 이어오는 동안 6구설, 8구설, 12구설 등으로 분분하였으나 현재는 6구설로 의견이 일치하는 듯하다. “12구설이 주로 시조의 율격을 중심으로 주장되는 이론이라고 하면 8구설은 종장에 전환과 결말을 갖는 의미 중심의 이론으로 보이는 점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음악과 결부된 시조에서 벗어났다는 점과 3장을 고수했다는 점, 그리고 종장 첫 음보 3자 주장과 연작시조 창작에 관심이라 할 것이다.”(김금남, 「근대시조의 특성 연구」)

시조의 형식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章)과 구(句)는 비단 시조에만 국한되어 쓰인 것은 아니다.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의 평론가인 유협의 『문심조룡』<장구(章句)>편에 보면, 사상과 감정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일을 가리켜 장을 이룬다고 하였고, 언어를 안배하는 일을 가리켜 구를 만든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구와 장이 모여서 하나의 문학 작품, 즉 편을 이루는 것으로 보고 있다. 흔히 자유시에서 행과 연을 나눌 때 행은 의미단위, 이미지 단위로 나누며 연은 소주제 단위로 나누어 여러 개의 연이 모여서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하고 또는 하나의 연이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시 말하면 장은 연이 되는 것이며 구는 행이 된다고 할 수 있으며 3장이 모여서 한 편의 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근대기를 거치면서 시조에서 악곡이 떨어져 나가고 음악 장르에서 문학 장르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가람 이병기는 영미 이미지즘의 이론을 접목하여 시조혁신론을 주창하였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조혁신론에서 가람 이병기는 “종래의 시조에는 한 수(首)가 한 편(篇)이 되게 하여 완전히 한 독립한 생각을 표현하였다. 물론 이렇게 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생활상은 예전보다도 퍽 복잡하여지고 새 자극을 많이 받게 됨에 따라, 또한 작자의 성공(成功)도 가지가지로 많을 것이다. 그것을 겨우 한 수만으로 표현한다면, 아무리 그 선(線)을 굵게 하여 하더라도 될 수 없으며, 된 대야 부자연하게 되고 말 것이니, 자연 그 표현방법을 전개시킬 수밖에 없다. 워낙 시조형 그것부터가 얼마라도 전개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이병기, 『가람문선』)라고 하여 연시조를 지을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연시조를 짓되 자유시가 시도하는 연의 개념과는 다르다. “한 제목에 대하여 그 시간이나 위치는 같든 다르든, 다만 그 감정의 통일만 되게 하는 것이다. (중략) 혹은 그 다섯 수가 각각 독립성은 잃더라도 전편으로 통일만 되고 보면 좋을 것 아니냐고 할 이도 있겠으나 이건 또한 문제가 되는 게 시조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시조가 아니고 다른 것이 되고 만다.”(이병기, 『가람문선』)라고 하여 연시조를 쓰되 각 연에 해당하는 단시조로써 가지는 초장, 중장, 종장의 역할을 다 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즉 각각의 장은 통사ㆍ의미 마디로써 완결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현대시조의 형식을 놓고 많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오늘날 쓰이는 시조들은 자유시와 시조의 경계에 서 있는 것들이 많다. 이를 시대적 흐름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어쩔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조라는 이름을 빌리는 그 순간부터는 적어도 시조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을 바에야 굳이 시조라는 양식에 기댈 것이 아니라 자유시의 영역으로 나아가면 그만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조가 갖는 정형성의 테두리로 들어오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김성문, 「시조의 문체 연구」) ”라고 하고 있으며 또한 한 편에서는 “시조 형식을 정의하는 요점은 '정형성'이라는 말에 있다. 정형은 일정한 기준에 의한 규범적 형식이 조건적으로 주어져 있다는 의미이고 이 점을 간과하면 정형의 약속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비록 거기에 다소간의 융통성이 주어져 있다고는 해도 정형의 정의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이희춘, 「시조 형식의 현대성 재고」)라고 하여 한결같이 정형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학자들과 창작자들 간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기준점의 모색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 김학성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시조는 결코 열린 형식이라 할 만큼 자유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시조는 어떠한 경우에도 3장으로 완결해야 하는 닫힌 형식이며, 각 장도 4음보로 혹은 4개의 통사ㆍ의미마디로 구성해야 하며, 종장은 첫째와 둘째 음보에서 시상의 전환을 이룰만한 변화를 보여야 하는, 정형률의 까다로움을 준수해야 하는 닫힌 형식인 것이다. 아니 그만큼 안정된 형식이다.”(김학성, 「시조의 정체성과 현대적 계승 」)라고 하여 3장 6구 12음보를 지키되 자수만 맞추어서는 될 것이 아니라 의미 구조의 완결성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가람 이병기가 문학 장르로서 시조를 정착시킨 1930년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유기체인 시조는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현 시점에서 그 변화의 길을 가늠해 보는 것은 현대시조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가람 이병기의 추천을 받은 근대기의 시조 시인인 초정 김상옥 시인의 시조집 『초적(草笛)』과 현대 시조 시인인 이승은의 시조집 『넬라 판타지아』를 비교해 봄으로써 현대시조의 형식 변화를 가늠해 보기로 하겠다. 비교 대상은 평시조인 단시조와 연시조를 대상으로 하겠다.

 

 

1. 김상옥의 『초적(草笛)』: 1947년 발간

 

 

김상옥 시인이 시를 본격적으로 쓰게 된 계기는 1934년 충무에서 발행되던 『금융 조합 연합회 신문』에서 동요 공모전에 당선되면서부터였다. 그때 그의 나이 15세였는데, 동요 공모전에 당선됨으로써 김상옥의 시가 처음 활자화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 것은 김용호, 함윤수 등과 함께 시지 『맥』의 동인(同人)으로 작품을 발표했던 1937년 그의 나이 18세 때였다. 바로 그 다음해에 문예지 『문장』과 『동아일보』에 시, 시조, 동요가 연이어 당선되거나 추천됐다.

김상옥이 등단 후, 처음 발표한 시조집인 『초적』(김상옥, 『초적』, 1947)은 자연스럽게 엄격한 음수율을 고수하게 되었으며 연시조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게 되었다. 시조의 형식으로 구분해 보면 단시조 6편, 2수 연시조 20편 3수 연시조 11편, 4수 연시조 2편, 5수 연시조 1편 등 총 40수가 실려 있다.

 

 

눈을 가만 감으면 굽이 잦은 풀밭길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백양 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 노을처럼 山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 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오

- <사향(思鄕)> 전문

 

 

<사향>은 김상옥의 초기 시조집인 『초적』에 실린 작품이다. 형식을 살펴보면 단시조 3수가 연이어 이루어진 연시조 작품이다. 각 연은 4음보 12구로 이루어져 있다. <사향> 전문을 통해 시적 화자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잘 나타나 있다. 1연은 원경(遠境)에서 바라본 고향의 모습이며 2연은 근경(近境)에서 바라본 고향의 풍경이다. 3연은 시적 화자가 느끼는 고향에 대한 이미지가 잘 나타나 있다. 고향 사람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마음은 풍요롭다. 그래서 비록 가진 것이라고는 산천에서 나는 푸성귀에 불과하지만 서로 아낌없이 나누고 산다.

그러한 의미를 김상옥 시인은 3연에 나누어 담아내고 있지만 각 연은 그 나름대로 완결성을 이루고 있어 각각으로 떼어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각 연이 모여서 3연으로 구성되면서도 그 짜임새는 조화를 잘 이루어내고 있다. 마치 카메라의 렌즈가 움직이듯이 처음에는 먼 거리에서 바라본 고향을 비추다가 점점 가까워져 지척에서 고향의 전경을 비추고 있다. 그러다가 마지막 3연에서는 이 시조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가난하지만 정이 넘치는 그리운 고향 사람들의 고운 마음씨를 드러내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절정을 이루게 된다.

‘눈을 감으면/굽이 잦은 풀밭길’, ‘송아지 몰고 오며/바라보던 진달래’, ‘어질고 고운 그들/멧남새도 캐어 오리’ 등 각 구도 의미ㆍ통사 구조를 잘 이루고 있다. ‘눈을 감으면’이라는 초구는 하나의 의미ㆍ통사 구조를 이루면서 후구인 ‘굽이 잦은 풀밭길’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각 연의 초장, 중장, 종장에 배치된 초구와 후구의 연결도 같은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음보 차원에서도 각 장은 4음보로 이루어져 있다. 각 음보는 ‘2:2조’, ‘3조’, ‘4조’, ‘2:1조’, ‘3:2조’, ‘2조’, ‘3:3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시조의 정형에 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보고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누나

- <봉선화> 전문

 

 

<봉선화>도 역시 김상옥의 초기 시조집인 『초적』에 실린 작품이다. 형식을 살펴보면 <사향>과 마찬가지로 단시조 3수가 연이어 이루어진 연시조 작품이다. 각 연은 4음보 12구로 이루어져 있다. <봉선화>는 전문을 통해 시적 화자의 누님에 대한 그리움이 잘 나타나 있다. 1연은 장독간에 핀 봉선화를 바라보며 시집간 누님을 떠올리는 모습이며 2연은 시적 화자가 보낸 편지를 보고 반응하는 누님의 모습을 상상하는 정경이다. 3연은 역시 <사향>과 마찬가지로 이 시조의 주제를 나타내는 연으로 과거에는 손톱에 꽃물을 들였지만 누님이 없는 현재에는 꽃물을 들일 수 없는 아쉬움을 누님을 그리는 절실한 마음으로 대체되고 있다. 즉 ‘그리움’이라는 어휘가 쓰이지 않았지만 시적 화자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독자가 느끼는 그리움의 의미는 더욱 더 절실해 지는 것이다.

각 연은 다른 공간과 시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1연에서는 ‘만개한 봉선화를 바라보는 장독대’가 되며 2연은 ‘그러한 정경을 담아 누님에게로 편지를 보낸 후 상상하는 공간’이 되며 3연은 과거에는 연붉은 손톱이었으나 현재는 그럴 수 없음에 애 타는 마음이 힘줄로 서는 시ㆍ공간이 된다. 연이 거듭될수록 감정은 점점 고조되어 3연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세세한 사연을 적어/누님께로 보내자’, ‘손톱에 꽃물 들이던/그날 생각하시리’, ‘지금은 꿈속에 본 듯/힘줄만이 서누나’ 등 각 구도 의미ㆍ통사 구조를 잘 이루고 있다. ‘세세한 사연을 적어’라는 초구는 하나의 의미ㆍ통사 구조를 잘 이루면서 후구인 ‘누님께로 보내자’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각 연의 초장, 중장, 종장에 배치된 초구와 후구의 연결도 같은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음보 차원에서도 각 장은 4음보로 이루어져 있다. 각 음보는 ‘1:2조’, ‘3조’, ‘4조’, ‘2:2조’, ‘3:2조’, ‘2:3조’, ‘1:3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봉선화>도 시조의 정형에 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종장인 ‘시상의 전환’ 부분에서도 비교적 그 역할이 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1연에서 장독대에 핀 봉선화를 보며 누님을 그리워하다고 불현듯 편지를 쓰기로 한 점이나 3연에서 하얀 손톱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힘줄이 선 손톱을 형상화함으로써 시상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늙으신 어무님은 나만 보고 언정하고

안해는 그 사정을 내게 와 속삭이다

어쩌누 그는 남으로 나를 따라 살거니

 

 

외로신 어무님은 글안해도 서럽거늘

안해를 가진 맘이 금갈까 삼가로워

이 밤을 어서 새우고 그를 가서 뵈리라.

- <가정(家庭)> 전문

 

 

<가정>은 아내와 어머니의 불협화음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적 화자의 심상이 잘 나타나 있다. 1연은 아내의 입장이 이해가 가는 마음이고 2연은 어머니의 입장에 이해가 가는 심정이다. 두 사람 다 이해가 가지만 어느 한 편을 두둔할 수 없어 더욱 더 곤욕스럽다. 아내와 어머니가 이루어내는 불협화음을 시인은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묶어내고 있다. 고부간이 화평하면 가정은 일단 평화롭다고 봐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고부간의 관계는 예로부터 어려운 관계이다.

<가정>은 1연 아내의 입장과 2연 어머니의 입장을 대비했기 때문에 시적 효과가 한층 살아났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각 각 제목을 달리하여 다른 작품으로 형상화했다면 시의 느낌은 생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협의 『문심조룡』<여사(麗辭)>편에 대우(對偶)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데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는 언대(言對)로 두 개의 구를 병렬하되 사례를 인용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사대(事對)로 인사(人事)와 관련된 두 가지의 사례(전고)를 들어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고, 셋째는 반대(反對)로 이치가 서로 상반되는 주제를 동일한 취지로 결합한 것이고, 넷째, 정대(正對)는 사실 그 자체는 동일하지 않으나 거기에 담긴 내용은 동일한 것을 함께 결합해서 드러내는 것을 일컫는다.” 김상옥의 <가정>은 셋째의 형식은 반대(反對)로 의미가 구조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2.이승은의 『넬라 판타지아)』: 2014년 발간

 

 

이승은 시인은 1979년 KBS 문공부 주최 전국민족시대회 장원으로 문단에 나와 한국시조작품상, 이영도문학상, 중앙일보시조대상, 오늘의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내가 그린 풍경』을 시작으로 7번째 시집으로 2014년 『넬리 판타지아』를 발간했다.

시집 『넬리 판타지아』는 앞에서 살펴본 김상옥의 시집 『초적』과 67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지니고 있다. 이 두 시집을 비교해 봄으로써 학계에서 제기하는 시조 형식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른 봄볕 촘촘하게 내려앉은 돌담 아래

섬동백 꽃송이가 멈칫 웃다 떨어진다

아침이 손님으로 와 하늘을 받쳐 든 곳

 

 

숨겨둔 푸른 날을 얼마나 뱉었기에

먼 바다 오지랖이 쪽빛 멍 자국인가

물거품 속내로구나. 빈말이 된 약속들

 

 

청보리 바람결에 물빛 더욱 짙은 바다

그 모든 푸름에는 눈물 맛이 배어 있다

바람도 그런 바람을 조천에 와서 본다

- <조천(朝天) 바다>전문

 

 

<조천>은 “제주도에 있는 바닷가. 시인이 이른 봄 제주 여행 중에 조천에 들러 이 시를 지었을 것이다.”(공광규, 「대모적 감성으로 품는 존재 실상과 환상의 발성」, 『넬리 판타지아』해설) <조천>의 1연에서는 근경(近境)을, 2연에서는 원경(遠境)을, 그리고 3연에서는 원경과 근경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데 시적 화자의 심상은 대체로 각 연의 중장과 종장에 배치되고 있다.

춘추 시대의 민요를 중심으로 하여 모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시집인『시경』에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사상과 감정이라고 하고, 언어와 문자를 사용해서 그것을 표현한 것을 시라고 한다.’(재심위지(在心爲志) 발언위시(發言爲詩))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정, 서사, 극으로 분류되는 원장르에서 서정은 시(詩)를 서사는 소설(小說)을 극은 연극(演劇)을 이르는 것으로 서정은 “주로 예술 작품에서, 자기의 감정이나 정서를 그려 냄”(네이버 어학사전)을 말한다. 따라서 시(詩)는 시인 개인의 심상을 드러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 심상을 드러냄에 있어 감정을 어느 정도 발산했느냐 아니면 억제했느냐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승은 시인은 ‘조천 바다’를 바라보며 느낀 심상을 3연에 나누어 담아내고 있으며 각 연은 그 나름대로 완결성을 이루고 있어 각각으로 떼어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각 연이 모여서 3연으로 구성되면서도 그 짜임새는 조화를 잘 이루어내고 있다. 김상옥의 <사향>에서와 유사한 구성으로 카메라의 렌즈가 움직이듯이, 처음에는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본 제주도의 돌담마을의 풍경을 비추다가 점점 멀어져 먼 바다의 전경을 비추고 있다. 그러다가 마지막 3연에서는 가까운 풍경과 먼 풍경을 동시에 바라보면서 시적 화자의 심상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아침이 손님으로 와/하늘을 받쳐 든 곳’, ‘물거품 속내로구나/빈말이 된 약속들’, ‘바람도 그런 바람을/조천에 와서 본다’ 등 각 구도 의미ㆍ통사 구조를 잘 이루고 있다. ‘아침이 손님으로 와’라는 초구는 하나의 의미ㆍ통사 구조를 잘 이루면서 후구인 ‘하늘을 받쳐 든 곳’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물거품 속내로구나/빈말이 된 약속들’는 도치법을 사용하여 빈말이 된 약속을 강조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각 연의 초장, 중장, 종장에 배치된 초구와 후구의 연결도 같은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음보 차원에서도 각 장은 4음보로 이루어져 있다. 각 음보는 '2:2조’, ‘4조’, ‘3조’, ‘4:1조’, ‘2:1:1조’, ‘1:2조’, ‘2:1조’, ‘3:1조’, ‘2:3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시조의 정형에 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다음에는 시집의 제목이 된 <넬라 판타지아>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승은 시인도 다른 작품에 비해 애정이 있었기에 시집의 제목으로 삼았을 것이다.

 

 

사북 혹은 태백 근처 가을이 지나간다

 

 

해는 아직 중천인데 반나마 접힌 낮달

 

 

시커먼 폐광의 산턱을 오래도록 핥는다

 

 

핥다가 힐끔 보는, 그 눈길에 거뭇해진

 

 

사뭇 까치발로 따라나선 산 그림자

 

 

부르면 애절히 들어줄 그리운 귀 있는 듯이

- <넬라 판타지아> 전문

 

 

“시집의 표제작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는 ‘환상 속에서’로 번역되며 1986년 발표된 영화 <The Mission>의 주제곡인 ‘가브리엘 오보에’에 이탈리아 가사를 붙여서 부른 노래이다. 위키백과에 번안한 가사가 보이는데… (중략)… 노래의 가사를 유추해보면 시인이 폐광촌 이야기를 하면서 시의 제목으로 ‘넬라 판타지아’를 붙임으로써 침잠되어 있는 현실도 언젠가는 자유와 평화 속에 따스한 인간애로 환해질 것”(공광규, 「대모적 감성으로 품는 존재 실상과 환상의 발성」, 『넬리 판타지아』해설)이라는 시인의 염원을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2수로 된 연시조를 풀어서 한 장이 한 연으로 구성되도록 하여 모두 6연의 시가 되었다. 이승은 시인뿐만 아니라 현대시조를 쓰는 많은 시인들이 이러한 구성법을 따르고 있다. 한 장을 한 연으로 배치하는 구성법은 현대시조에서 일반화되어 있다. 한 장을 한 연으로 배치하되 한 연을 구분하여 음보별 배행 또는 구별 배행 형태로 나누어 배치하기도 한다.

 

 

비행기를 헌납하고 요직에 앉았다는 친일의 은전으로

거머쥔 저 땅덩이 육십 년 광복절 아침에 배가 자꾸 불러

오고.

-<낡은 놋주발> 1연

 

 

<낡은 놋주발>은 풍자시라고 할 수 있다. 친일파의 자손은 현대사회에서 행세를 하는 반면 나라를 위해 전부를 받친 의병장의 자손은 굶주리고 있음을 1, 2연을 서로 대비하여 노래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객관적 입장에서 평가를 하지 않으며 담담히 현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게끔 하고 있다. 그런데 시조의 형식을 살펴보면 장 구분이 없이 초장, 중장, 종장이 모두 연달아 서술되어 있다.

이러한 배행 형태는 학계에서 주장하는 3장 6구 12음보의 시조의 형식으로는 해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물론 가람 이병기는 시조 혁신론의 ‘쓰는 법 읽는 법’에서 “고시조에는 ‘한 줄로 죽 내려 쓴 것도 있고’, ‘초장 중장은 연결하여 쓰고 종장만 행을 달리하여 쓴 것도 있고’, ‘초ㆍ중ㆍ종장을 세 마디로 띄어 쓰는 것도 있고’, ‘초장을 초구와 후구로 나누어 두 마디로 띄어 쓰고 중장은 연달아 한 마디로 그리고 종장은 초구 첫 음보와 그 나머지 음보를 나누어서 두 마디로 쓴 것도 있다. 이건 다만 오장식(五章式)으로 부르는 노래에 맞추기 위하여 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옛날 것같이 쓸 건 아니다. 시조는 제 가락 곧 작가의 제 가락에 맞게시리 써야 하겠다.”(이병기, 『가람문선』)라고 서술하고 있어 새로운 가락의 창조를 위해 배행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몇 가지 예를 들고 있으나 연시조 두 수를 풀어서 각 장을 한 연으로 배치하는 예는 없으며 초장, 중장, 종장을 연결하여 쓰는 예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초정 김상옥 시인의 후기 시조 『느티나무의 말』에서 이러한 형태의 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서 시조의 정체성은 어디까지로 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고시조에 이어 근대시조에서 주장했던 3장 6구 12음보에서 장(章)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하는 부분이 문제로 제기된다. 이러한 부분이 명백히 해명되지 않는다면 학계에서 끊임없이 제기하는 “현대시조는 자유시와 다를 바 없으며 엄격히 말해 현대시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신경림이 “나는 시조를 많이 읽는 편이다. 잘 읽혀서 일 것이다. 요즘 시들, 너무 안 읽힌다. 너무 난삽하고 현란해서, 그리고 너무 말이 많아서 읽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이에 비하여 일정한 형식과 리듬의 속박을 받는 시조는 훨씬 수월하게 읽힌다.…(중략)…물론 시조가 우리 것이란 사실에 대한 막연한 경도도 있을 터이다.”(윤금초 편,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 창작과 비평사, 1999의 해설문 참조.)라고 고백하고 있다. 신 경림 시인의 말에서 현대시조의 나아갈 바가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즉 끊임없는 형식 실험이 능사인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형식을 어느 정도 지키면서 현대화, 세계화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약력

-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수상

- 경북대학교 출강

- 시조집 : 겨울 청령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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