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의 시어와 이미지

조회 수 310 추천 수 0 2019.11.11 08:02:38

현대시조의 시어와 이미지

-『구룡폭포』와 『별안간』을 중심으로

 

이솔희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언어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는 문학작품을 창조하기 위한 필수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언어가 문학작품에 사용되기 위해서는 의미의 함축이 필요하다. 즉, 언어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될 때, 일반어와는 느껴지는 감정의 색깔이 달라지는데 이러한 언어를 ‘시어’라고 하며 이 시어에 의해 구체적인 이미지가 형성되게 된다. ‘이미지의 실현은 시인이 수많은 시어들을 취사선택해 시적으로 형상화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를 연구함에 있어 이미지를 분석하다는 것은 곧 시어를 분석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서정호, 「백석의 시에 형상화된 시어의 이미지즘적 특성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1.)

시조가 악곡의 가사로 불렸던 ‘부르는 시조(고시조)’에서 이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조에서 악곡이 떨어져 나가고 ‘읽는 시조(현대시조)’로 변모하면서 시조에 있어 이미지는 매우 중요해 졌다. 1920년대 최남선, 이광수, 이병기, 이은상 등 국민문학파는 카프문학에 맞서기 위해 시조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가운데 가람 이병기는 시조혁신론을 주창하였는데 ‘부르는 시조’를 ‘읽는 시조’로 변모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서구의 이미지즘 이론을 도입했다.

 

 

가람은 「문장」지를 대표하는 문인답게 서구적 모더니티를 훌륭히 실천한 시인이었다고 규정하게 된다. 그것은 전기 시조의 감각적 언어미학이 창출한 회화적 이미지의 자연공간을 통해 모더니즘의 표응구조를 실험하고, 후기 시조에 와서는 현실적 어둠과 문명사적 질곡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므로써 황폐와 불모성을 진단하는 도시공간의 현실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오승희, 「가람 이병기 시조의 공간 연구」, 『비평문학』제4호, 1990.)

 

 

오승희는 「가람 이병기 시조의 공간 연구」에서 가람 이병기를 ‘서구적 모더니티를 훌륭히 실천한 시인’이라고 서술했는데 여기서 ‘서구적 모더니티’란 1920년데 한국에 도입된 ‘이미지즘’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람 이병기는 시조혁신론 6개항 가운데 제 1항 ‘실감실정’을 주장하는 부분에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작가 자신의 실생활에서 얻은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실제 느끼고 체험한 사실을 절실한 감정이나 색채가 가득한 감각적 광경을 표현함에 자기의 주관으로써 하는 서정과, 객관적으로써 하는 서경, 어느 것이든지 다 쓸 수 있다.(이병기, 『가람문선』, 신구문화사, 1966, 320쪽)

 

 

제 1항 ‘실감실정’에서 ‘실제 느끼고 체험한 사실을 절실한 감정이나 색채가 가득한 감각적 광경을 표현’한다는 것은 실감실정을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이미지(image)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심상(心像) 혹은 영상(映像)이라는 뜻이므로, 이미지즘(imagism)은 우리말로 사상주의(寫像主義)라고 번역한다. 이병기의 저작 중에서 사생(사상)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조운의 시조를 평한 다음 문장이다.

 

 

물은 파란 빛이 언덕은 초록 빛이/그건너 모랫벌은 안개와 한빛인데/그 속에 검붉은 무지개는 철교이라 하더라//(조운, 『한강소경』)

이것은 곧 그림이다. 사생이다. 고시조에서는 이런 예를 얻어 보기가 어렵다. 작자는 이것을 그리기 위하여 첫새벽에 한강까지 나가보았다 한다.(이병기, 「시조란 무엇인가?」, 『시조연구논총』(이태극 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람 이병기는 1920년대 시조혁신론 제1항 ‘실감실정’에서 이미지의 중요성을 피력했으며 조운의 시조를 평하는 글에서 이미지(사생)이라는 말을 썼다. 그렇다면 가람 이병기의 이론이 바탕이 된 현대시조의 초기작품에서 이미지는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1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는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현대시조의 초장기 작품으로는 조운의 시조를, 오늘날의 현대시조로는 이정환의 시조를 대상으로 선택된 시어와 형상화된 이미지를 비교하는 가운데 그동안 변모양상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조운 시인은 1900년 전남 영광 출생으로 1921년 동아일보에 시 <불살러 주오>를 발표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했으며, 1922년 시조 동호회인 추인회를 창립하였다. 자유시로 문단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무렵에 가람 이병기를 만나 시조 부흥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시조혁신론을 적용하여 현대시조를 정착시키는 데 일조를 하였다. 1937년 항일민족자각 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었으며 그 후 영광민립중학교의 설립진기구인 정주연학회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1947년 『조운시조집』을 간행하였으며 1949년 가족과 함께 월북했다.

이정환 시인은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아침 반감』, 『원에 관하여』, 『분홍 물갈퀴』, 『비가, 디르사에게』등 다수가 있으며 동시조집으로 『어쩌면 저기 저 나무에만 둥지를 틀었을까』등 다수의 동시집이 있다. 연구서로 『현대시조교육론』, 『시와 교육』등 다수가 있어 창작과 더불어 현대시조 연구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시조작품상, 대구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한국시조시인협회부이사장, 대구시조시인협회장등을 역임하고 있다.

우리 국문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부분의 전통인문학이 수입인문학과 상생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인데 전통인문학의 홀대가 그 이유이다. 자유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현대시조를 대상으로 한 학술논문 부족을 단적인 예로 들 수 있다. 1920년대 서구에서 들어온 이미지즘은 가람 이병기에 의해 주창된 시조혁신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작품 형상화에 그대로 적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 것은 전통인문학의 홀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현대시조의 초기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조운의 『구룡폭포』와 이정환의 『별안간』에 나타난 시어와 이미지를 분석하는 가운데 현대시조에 형상화된 이미지의 형태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100년 가까운 시간의 간극을 두고 있는 조운의 『구룡폭포』와 이정환의 『별안간』이 가지는 이미지 형태의 변별성과 시조 형식의 변별성도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러한 작업은 현대시조의 위상을 높임은 물론 앞으로 나아가야 할 현대시조의 길을 모색하는 데도 작은 도움이 될 것이다.

 

1. 조운의 『구룡폭포』

 

 

조운 시인의 『구룡폭포』에 나타난 시조의 수는 모두 99수이다. 단시조가 63수이고 연시조가 35수이며 사설시조가 1수이다. 연시조 가운데는 10연, 12연, 21연 등의 시조가 있어 매우 긴 장시조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형식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이한 사항은 「영호청조(暎湖淸調)」에서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음보별로 단어를 묶어놓은 점이다. 이러한 몇 가지 점으로 보아 가람 이병기의 시조혁신론을 그대로 따른 것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 형식적인 실험을 여러 방면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앞의 인용글 <한강소경>에서 가람 이병기가 말했듯이 조운의 시조에는 생생한 이미지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효과는 일상적인 언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사람이 몇 생(生)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劫)이나 전화(轉化)해

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 수렴 진주담과 만폭동

다 고만 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 함께 흘러

 

 

구룡연 천척절애(千尺絶涯)에 한번 굴러 보느냐.

<구룡폭포> 전문

 

 

<구룡폭포>는 조운의 시조 가운데 유일한 사설시조이면서 시집 제목이 말해주듯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인정되고 있음을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단순히 물을 예찬하고 있지는 않다. ‘샘’, ‘강’, ‘바다’, ‘옥류’, ‘수렴’, ‘진주담’, ‘만폭동’ 등도 같은 물이지만 시적 화자가 닮고 싶은 물은 아니다. 그렇다면 ‘구룡폭포’의 어떤 면을 그토록 시적화자(시인)는 닮고 싶어 했을까? 느리게 흐르거나 고요하게 머무는 물이 아니라 깎아지른 벼랑을 굴러보는 폭포가 되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폭포는 일상적인 언어인 ‘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거센 물줄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함축적 의미를 담은 시어가 되면서 ‘구룡폭포’는 세상을 향해 올곧게 펼쳐지는 정신 내지는 사상을 이미지를 표출하는 것이다. 조운이 살던 시기는 일제강점기였다. 그러나 조운은 시대의 불운에 침잠하지 않고 떨치고 일어서는 상승 이미지를 구룡폭포를 통해 구사하고 있다.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석류> 전문

 

 

<석류>이미지가 상징하는 것은 가슴에 담은 뜻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고 언어의 한계에 부딪친 시적 화자의 답답한 마음이다. 인간은 가끔 언어의 틀에 갇힐 때가 있다. 그러할 때 비유를 통해 그 한계를 벗어난다. 어눌한 나의 입술로 알알이 영근 붉은 뜻을 전달할 수가 없다. 시인은 답답한 마음을 알맹이가 부풀어 쪼개진 석류를 통해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다.

 

 

펴이어도

펴이어도 다 못 펴고

남은 뜻은

 

고국이 그리워서냐

노상 맘은 감기이고

 

바듯이 펴인 잎은

갈갈이 이내 찢어만지고

<파초> 전문

 

 

 

조운은 1919년 3ㆍ1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시위를 벌인 후 일경의 추적을 피해 만주로 망명하여 1921년에 귀향하게 된다. 그 동안 타향을 떠돌면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파초’의 속성이 그려내는 이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린잎일 때 잎이 말려있는 속성을 시인은 자나 깨나 떨칠 수 없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감겨있다고 비유했다. 자라면서 잎이 펼쳐지긴 하지만 이내 찢어지고 마는 속성은 고향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조운 시인은 언어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자연물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끌어와 시적 언어로 대체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서산낙조(西山落照)

 

해광이 늘실늘실 하늘에 닿았는데

먼 곳은 금빛이오 가까운곳 도화로다

낙하(落霞)에 갈매기 펄펄 어갸뒤야…….

<법운포 12경> 일부

 

 

장경렬이 시집『구룡폭포』 해설에서 <법운포 12경>, <영호청조>등은 이율곡의 「고산구곡가」나 윤선도의 「오우가」, 「어부사시사」등의 시작 태도를 연상케 한다고 서술하고 있는 바와 같이 고시조와의 변별성이 모호하다고 할 수 있으나 형식면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 종장 끝구의 마지막 음보가 말줄임표(……)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 현대시조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점으로 조운 시조만이 가지는 특수성이라 할 수 있다.

 

2. 이정환의 『별안간』

 

 

이정환의 『별안간』에 나타난 시조의 수는 모두 80수이다. 이 가운데 단시조가 47수이고 사설시조가 1수이며 연시조가 32수이다. 80수에 쓰인 시어는 대부분 자연물이다. 강물, 산, 늪, 단풍, 섬, 나뭇잎, 억새, 꽃, 바다, 소나무, 시간 등의 시어가 나타내는 자연 이미지를 통해 시인은 자신의 꿈과 사랑과 기쁨과 절망을 노래하고 있으며 ‘너’로 표상된 절대자의 존재를 지상 곳곳에서 거듭거듭 확인하고 있다.

 

지금 내 어깨 위에 내리퍼붓는 함박눈

네가 보낸 것임을 이제 나는 알겠다

 

 

두 팔이 설해목처럼 뚝뚝, 떨어져 내리는 밤

 

<설해목처럼> 전문

 

 

이정환 시인은 시집 말미의 ‘시인의 산문 <설해목처럼>’에서 ‘나는 설해목이다. 찾도록 찾는 이 앞에 꿇어 엎드린 어둠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산문에 나타난 ‘찾도록 찾는 이’나 시조작품 <설해목처럼>에 나타난 ‘네’는 모두 절대자 즉 시인이 경배하는 하나님임을 알 수 있다. 시인 자신은 ‘꿇어 엎드린 어둠’이며 하나님은 그 어둠을 밝히는 빛이다. 그리고 어깨위에 포근하게 덮이는 함박눈이다. 시적 화자는 함박눈에 힘입어 자신의 모순을 스스로 떨쳐낸다. 여기서 함박눈은 ‘붙드심’으로 표상된 하나님의 손길이기도 하다. 시인은 ‘절망 끝에 고꾸라지다가도 강렬하게 붙드시는’ 하나님에 의해 ‘홀연히 떨치고 일어나서 다시금 시와 영원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는 작품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붙드심의 노래> 12편의 연작 전편이나 <주상절리>, <피오르드> 연작에서도 하나님의 존재가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그 외 <삼강나루>, <청량산>, <깊고 푸른 밤>, <공은 늘 멀리 달아난다>, <완도수목원>, <귓밥을 만지는 동안>, <그 바다> 등에서도 절대자는 불안한 시적 화자를 안심시키는 존재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절대자에 대한 든든한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나타나는 ‘흔들림’을 시적 화자는 어쩌지 못한다.

 

흔들리는 것이 사뭇

밥이고 그리움이고

 

얼굴이고 춤이고

노래이고 외침이다

 

말없이 흔들리는 것

은빛 마침표이다

 

하늘 온통 휘젓다가

울컥 내려앉은 가을

 

가만 흔들리는 것

눈물이고 결별이다

 

억새여, 네 이부자리

별빛 먼 무덤자리

<명성산 억새> 전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 가운데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러나 약한 것이 여자뿐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 모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배고픔을 느끼고 그리움과 고독을 느끼는, 어쩔 수 없는 속성이 인간을 약하게 만든다. 이정환 시인은 인간의 그 약함을 잘 알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다.

<명성산 억새>에서 억새는 ‘흔들림’이고 ‘밥’이고 ‘그리움’이다. 그리고 ‘눈물’이고 ‘결별’이다. 또한 ‘춤’이고 ‘노래’이고 ‘외침’이기도 하다. 이정환 시인은 시어의 환치를 통해 다양한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미지의 총합은 끝없이 흔들리는 인간존재의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명성산 억새>를 면밀히 분석해 보면 이정환 시인은 시어 선택에 있어 주로 명사형을 선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명사형의 시어 선택은 이미지를 보다 명료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상상의 공간을 넓혀 주는 역할을 한다. ‘밥’에서 배고픔을 연상할 수 있으며, ‘눈물’과 ‘결별’에서 ‘이별의 아픔’을 연상할 수 있다. 명료성과 견고함은 이미지즘과 시조혁신론이 가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시조혁신론 이후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명료성과 견고함은 시조 작법에서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이미지의 명료성과 견고함은 자유시와 변별되는 현대시조의 정체성임을 알 수 있다.

‘강렬한 붙드심’에 힘입어 ‘흔들림’을 잠재우고 다시금 힘을 얻지만 이 지상에 ‘붙들어 매어두지 못할’ 것이 있으나 곧 ‘시간’이다.

 

귓밥을

만지는 동안

 

다시금

퍼붓는 눈발

 

모든 것은

별안간의 일

 

 

별안간의

눈밭이다

 

붙들어

매어두지 못할

 

첫 시간의

파편들

<귓밥을 만지는 동안> 전문

 

 

사람들은 흔히 우리 인간의 한계성을 ‘한 치 앞의 내다볼 수 없는 인생’에서 확인하곤 한다. 모든 일을 주관하는 절대자인 하나님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더욱 더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에 따라 별안간 복을 주시기도 하고 별안간 벌을 주시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러한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게다가 인간의 능력으로는 시간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다. 거저 흐르는 시간에 따라 소멸해갈 뿐이다.

배행에 있어 이정환은 장별 배행, 구별 배행, 음보별 배행을 시도하고 있다. 의미별로 행이 나누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 나누기에 있어서도 의미 단위로 연을 나누고 있다. <설해목처럼>은 단시조인데 2개의 연으로 나누어져 있다. 초장과 중장이 합쳐져 하나의 연이 되어있으며 종장은 따로 독립되어 한 연을 형성하고 있다. <명성산 억새>는 연시조인데 한 장이 한 연을 이루어 6연으로 나뉘어져 있다. <귓밥 만지는 동안>도 역시 단시조인데 한 구가 한 연을 이루어 6연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행과 연 나누기는 고시조와는 변별되는 부분으로 현대시조가 가지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가람 이병기는 악곡과 분리된 시조의 격조 변화를 위해 ‘이미지즘 6개 강령’의 하나인 ‘새로운 리듬의 창조’에서 도입하여 접목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조운 시인의 『구룡폭포』와 이정환 시인의 『별안간』을 통해 현대시조 속에 나타나 있는 시어와 이미지를 살펴보았으며 100년 가까운 세월의 간극을 두고 있는 조운 시조와 이정환 시조를 비교 고찰해봄으로써 그동안의 변모 양상을 추론해 볼 수 있었다.

먼저 내용 면에서 살펴보면 조운 시조의 내용이 역동적인 것이 비해 이정환 시조는 정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조운 시조가 지니는 시적 화자의 시선이 외부에 머물러 있음에 비해 이정환 시조가 지니는 시적 화자의 시선은 내면에 머물러 있어 끝없이 성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운 시조의 정신적 지주는 자아(自我)이며 이정환 시인의 정신적 지주는 조물주인 하나님이란 점이 그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표현 면에서 이 두 시인은 자신의 주제의식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함축적 시어와 이미지를 구사하고 있어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 구사는 이미지즘의 영향이며 시조혁신론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미지 자체만을 따진다면 한시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현대시조의 이미지 구사는 함축적 의미를 부여한 일상언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변별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형식 면에서 조운 시인과 이정환 시인은 행과 연 구분 방법은 같다. 의미 단위를 기준으로 하여 행과 연 구분을 하고 있으며 행 구분의 경우, 장별 배행, 구별 배행, 음보별 배행을 추구하여 격조의 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어휘의 간결성과 명료성을 추구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차이점이라면 조운 시조의 경우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음보별로 단어를 묶어놓은 점이다. 그리고 말줄임표(……)를 한 음보로 사용하고 있음도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몇 가지 점은 가람 이병기의 시조혁신론이나 가람의 시조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점으로 조운 시조의 특수성이라 할 수 있다. 조운 시조의 특수성이 이정환 시조에서는 나타나고 있지 않는 점으로 보아 조운 시조에서만 사용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1920년대 조운 시조에서 2010년대 이정환의 시조에 이르기까지 현대시조는 끊임없이 변화발전을 거듭해 왔다. 100년 가까운 세월 속에서도 변화되지 않고 여전히 적용되고 있는 것은 가람이 주창했던 선명한 이미지가 가져오는 명료성이며 다양한 배행 시도를 통한 격조의 변화이다. 물론 고시조부터 이어져 오는 시조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삼장의 형식이나 삼장 첫구 첫음보에 고정된 3음보 역시 변화되지 않고 여전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정체성은 시조가 시조답기 위한 필수요소이기에 앞으로도 지켜가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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