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 속에 나타난 상상 세계

조회 수 266 추천 수 0 2019.11.11 09:06:59

 

현대시조 속에 나타난 상상 세계 / 이솔희  내가 읽은 시조집-이솔희 / 시조21 특집   

2014. 3. 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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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조 속에 나타난 상상 세계
-『세월이 무엇입니까』와 『어쩌면 이것들은』을 중심으로

 

             이솔희


 

 해리포터의 작가 롤링이 미국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상상력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상상력은 모든 발명과 혁신의 원천이기도 하면서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경험에도 공감할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세상을 바꾸는데 마법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내면에 이미 그 힘은 존재합니다. 우리에겐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강조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상상력은 시조 창작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상상력은 사물이나 형상을 재구성하여 알지 못하는 사물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기능을 한다. 셰익스피어는 『한여름밤의 꿈』에서 상상력의 기능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시인은 이글이글 타는 눈알을 굴리며
하늘 위 땅 밑을 굽어보고 쳐다보아
알지 못하는 상상의?사물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시인의 붓은 그에 따라 공허한 것에 육체를 주고
장소와 이름을 정해 준다.

 

 이처럼 시인은 상상력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태까지 가시적인 형상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데 이때 시인은 형상을 관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조 작품의 형상화에 있어 중요한 세 요소는 비유, 상상력, 이미지이다. 이 가운데 앞에서 살펴본 상상력은 비유와 이미지가 일어나도록 하는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상상력이 없다면 비유와 이미지는 존재할 수 없다. 이미지란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이나 장면이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지각 대상으로 화하여 그림처럼 떠오르는 정신작용이다.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구체적인 상을 뜻하기도 하지만 어떤 인물이나 사물, 집단체 등에 대한 추상적 인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의 현상과 관련 여러 가지 관념이 함께 연상될 수도 있다. 참신한 비유는 신선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비유의 기능은 두 사물을 비교하는 가운데 의미의 확장을 가져오는 것인데 새로운 의미 창출, 독창성, 정서적 충격, 시적 대상의 선명성 등의 효과가 있다.
   정완영 시인의 『세월이 무엇입니까』와 이우걸 시인의 『어쩌면 이것들은』에서도 시인의 독창적인 상상력에 의해 세월을 노래하고 세상을 진단하여 풍자하고 있다. 이러한 상상력은 참신한 이미지로 또는 풍자적인 비유로 형상화되어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정완영 시인은 1919년 경북 금릉 출생으로 1960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해바라기>로,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조국>으로 당선되었다. 시조집으로 『채춘보』, 『묵로도』, 『오동잎 그늘에 서서』 등을 펴냈다. 시선집으로는?『산이 나를 따라와서』, 회갑기념 시조집 『백수 시선』, 『세월이 무엇입니까』가 있으며 동시조집으로 『꽃가지를 흔들듯이』, 『엄마 목소리』가 있으며, 시조 이론서로는?『시조창작법』『고시조 감상』등이 있다.  <조국>, <부자상>, <분이네 살구나무> 등이 초ㆍ중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이우걸 시인은 1946년 경북 금릉군 봉산면에서 출생했다.?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였으며?동인지 『현대율』창립 멤버로 활약했다. 시조집으로  『지금은 누군가 와서』, 『빈 배에 앉아』, 『나를 운반해온 시간의 발자국이여』, 『주민등록증』, 『이우걸 시조전집』등 다수가 있으며 시조 평론집으로『현대시조의 쟁점』, 『젊은 시조문학 개성읽기』 등이 있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 두 시인은 현대시조의 전범이 되고 있다.
   문학에 상당한 식견을 겸비하고 있는 전문가 가운데서도 현대시조의 정체성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 결과, 시조라면 고시조 형식인 ‘우의의 세계’를 수용해야 하며 무모한 시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오류는 고시조와 구별되는 현대시조의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근대기, 고시조에서 곡조가 떨어져 나가면서 현대시조는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가람이병기는 시조혁신론에서 이미 ‘주제와 소재 선택의 자유와 실감실정을 통한 이미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표현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표현내용의 제약이 있을 수 없다. 즉, 3장 6구 12음보 안에서 표현 못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정완영의 『세월이 무엇입니까』와 이우걸의 『어쩌면 이것들은』을 고찰해 봄으로써 이 두 시인이 가지는 작품의 특수성은 물론 현대시조가 가지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이러한 상상의 세계를 작품으로 형상화시키는 데 있어 현대시조만이 가지는 정체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정체성은 곧 자유시와 구별되는 현대시조의 특징이 될 것이다.

 

1. 정완영의 『세월이 무엇입니까』
 
 

 정완영 시인의 『세월이 무엇입니까』에 나타난 시조의 수는 모두 73수이다. 모두가 3연 형식의 연시조이다. 그는 서시에서, 지난해에서는 단수집을 올해는 연수집을 엮었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정완영 시인의 작품 가운데 연수작만 다루게 된 셈이다. 그의 작품은 상상력을 통해 행간의 의미를 넓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조의 소재는 자연, 조국, 고향, 가족, 친척, 유적지 등이다. 이 가운데 자연을 대상으로 한 소재가 가장 많다. 정완영 시인은 자연을 대상으로 풍부한 상상력을 불어넣은 다음 참신한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소재를 통해 한국의 아름다움과 한국인의 순수한 정서를 신선하게 표출하고 있으며 때로는 여유로운 풍자를 선보이기도 한다.

 

1
입동 철 어머님은 흰옷만도 추웠는데
윗 냇물 냇물에 앉아 씻어 올린 그 배춧잎
흡사 그 배춧잎 같은 손이 시린 고향 하늘.
 

2
미루나무 노오란 가지, 노오란 잎이 달려 있고
돌담 위에 깨진 옹기, 깨진 시름 얹혀 있고
햇빛도 고향 햇빛은 이내 지고 말더라. 

3
정이 이리 미욱하여 다시 뜨는 순이 생각
홀로 사는 처마 밑이 그 얼마나 끌었을까
내가 준 손톱자국이 초승달로 걸렸다.
<귀고(歸故)> 전문
 
 

 <귀고(歸故)>는 현실의 세계가 아닌 상상의 세계이다. 시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세계이다. 정완영 시인은 그가 기억하고 있는 상상 속 고향의 모습을 비유를 통해 이미지화하고 있다. 각 연에 1, 2, 3의 번호를 매김으로써 각 연이 독립체임을 나타내고 있다. 1연에서는  어머니를, 2연에서는 고향의 풍경인 미루나무,  깨진 옹기, 그 위에 쏟아지고 있는 햇빛을 노래하고 있으며 3연에서는 그리운 순이를 노래하고 있다. 1, 2, 3연의 중심소재는 각각 독립체로 유지되고 있지만 각 연의 소재 모두가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받치고 있다. 즉 주제가 형성하는 하나의 줄에 각 연의 소재가 꿰여 있는 것이다.
   각 연은 어휘의 반복으로 율동을 자아내고 있다. 1연에서 ‘윗 냇물, 냇물’, ‘씻어 올린 그 배춧잎, 흡사 그 배춧잎’, ‘노오란 가지, 노오란 잎’, ‘깨진 옹기, 깨진 시름’, ‘햇빛도, 고향 햇빛은’ 등이 그것이다. 정완영 시인은 시조의 정형성이 가지는 기본적인 율격 외에 어휘의 반복을 통해서도 율격을 생성시키고 있다.
   정완영 시인은 그의 작품에서 공감각적 이미지 구사를 많이 하고 있다. ‘흡사 그 배춧잎 같은 손이 시린 고향 하늘’에서 시각적 이미지(배춧잎)는 촉각적 이미지(손이 시린)로 전이되면서 ‘고향 하늘’의 의미는 단순한 겨울 하늘이 아닌 ‘싱싱한, 푸른, 차가운, 시린’ 등의 의미가 복합적으로 담긴 입체적인 하늘을 형상화한다. 이러한 점이 정완영 시 작품의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 구사는 그가 가지는 풍부한 상상력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공감각적 이미지의 형성은 ‘뻐꾸기 울음소리가 세숫물에 떨어진다.’<뻐꾸기 우는 마을> 1연, ‘천지에 귓속 이야기 저자라도 섰나부다.’<추청> 3연, ‘산과 들 적시며 오는 핏빛 노을 다 마시고’<감> 2연,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조국> 2연, ‘따끈히 끓여 준 차가 단풍만큼 곱고 밝다.’<산이 나를 따라와서> 1연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아무래도 태양의 권속은 아니다
두메산골 긴긴 밤을 달이 가다 머문 자리
그 둘레 달빛이 실려 꿈으로나 익은 거다.

 

눈물로도 사랑으로도 다 못 달랠 회향의 길목
산과 들 적시며 오는 핏빛 노을 다 마시고
그 둘레 달빛이 실려 꿈으로나 익은 거다.

 

초가집 까만 지붕 위 까마귀 서리를 날리고
한 톨 감 외로이 타는 한국 천년의 시장기여
세월도 팔짱을 끼고 정으로나 가는 거다.
<감> 전문

 

  <감>을 읽어내려 가다보면 한국의 가을 풍경이 선연하게 떠오르고 한국인의 정서가 그대로 전달된다. ‘두메산골’, ‘회향’, ‘돌담’, ‘등불’, ‘초가집’, ‘서리’, ‘한 톨 감’, ‘한국 천년의 시장기’ 등 어휘 선택에 있어서도 한국적인 정서를 나타내기에 충분하다.
   정완영 시인의 상상력은 경이롭다. 감이 태양에 의해 익어가고 단물이 든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시인은 <감>에서 태양의 권속이 아닌 달빛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로 감이 지니고 있는 여러 요소에 태양보다는 달의 이미지가 더 많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감에서는 달의 기운이 풍기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비유하고자 하는 두 개의 대상 간에 가로놓인 거리가 아무리 멀다할지라도 정완영 시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풍부한 상상의 세계와 참신한 이미지 구사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정완영 시인은 이미지 적용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기억이나 장면 외에 무게, 호흡, 움직임, 감각, 마음 상태 등 미세한 감각까지도 이미지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마음 상태를 자주 이미지화하고 있다. <감>에서는 ‘한 톨 감 외로이 타는 한국 천년의 시장기여’가 해당된다. 곤궁한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이 늦가을 잎 떨어진 감나무에 달려있는 한 톨 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외에 ‘수심도 골이 깊으면 저 산만은 한 것인가’<뻐꾸기 우는 마을>2연, ‘그 옛날 고향마을은 고목나무에 걸려 있었네’<상실의 노래> 1연, ‘소슬 대문 그 한 채만 한 덩그런 정을 주랴’<가리개를 보내며> 1연, ‘아버님 내 할아버님 시를 싣고 둥실 가더라’<가리개를 보내며> 3연, ‘못물에 아버님 옛 모습 일렁이기 때문이다.’<용배 못물> 1연, ‘어스름 앉는 황혼도 허전한 정 좋아라’<산이 나를 따라와서> 2연, ‘차라리 춘한을 덮고 도로 한잠 잘랬더니’<서울의 버들가지> 3연 등은 감각이나 마음 상태 등을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이다.
  정완영 시인의 작품에는 풍부한 상상력과 참신한 이미지로 형상화된 비유가 있다. 그는 이러한 시적 기법을 통해 한국의 아름다움과 한국인의 순수한 정서를 노래하고 있으며 많은 양은 아니지만 풍자의 세계를 열어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풍자의 세계는 강요가 아닌,  감동을 이끌어내 독자 스스로 행동하고 실천하게 한다. 시조의 형식에 있어 의미 음보를 추구하고 있어 자수의 융통성이 있으며 음보 배행, 구별 배행, 장별 배행 등을 구사하여 격조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장식적 수사를 지양하여 명료성과 간결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적 추구와 명료성과 간결성의 추구는 자유시와 구별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2. 이우걸의 『어쩌면 이것들은』

 

 이우걸의 『어쩌면 이것들은』에 나타난 시조의 수는 모두 60수이다. 이 가운데 단시조가 17수이고 연시조가 43수이다. 소재는 일상용품, 자연, 상황, 인관관계 등 가시적인 것에서부터 비가시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주제는 풍자와 비판이 대부분이다.

 

아직도 내 사랑의

 

주거래 은행이다

 

목마르면 대출받고 정신 들면 갚으려 하고

 

갚다가

 

대출받다가

 

대출받다가

갚다가…

<어머니> 전문

 

  세상은 모순 덩어리이다. 시인은 그 모순 덩어리에 비판의 시선을 보낸다. 시적 화자 또한 이러한 시선에서 예외일 수 없다. 시인이 시도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비판은 다른 작품에서 시도하고 있는 비판의 칼날을 더욱 더 예리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그 칼날의 방향이 자신을 비켜갔더라면 그 설득력은 훨씬 약화되었을 것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어머니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어머니를 떠올리면 목이 뻑뻑해 온다. 슬픔이 함께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 슬픔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움일까? 단순한 그리움은 아닐 것이다. 그리움과 함께 뭉쳐져 그 형체를 잘 구분할 수 없는 죄의식일 것이다. 부모님을 떠올리면 잘 해 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함께 밀려온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부모님에게 부채를 지고 있는 셈이다.
   ‘부채’와 ‘대출’은 경제학이나 경영학에 나오는 용어이며 주로 금융기관에서 자주 쓰는 어휘이다. 그런데 어머니와 자식 관계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어휘이다. 부모님은 자식에게 대출을 하지만 이것은 상환이 없는 대출이다. 따라서 자식은 부모에게 영원한 채무자가 되는 것이다. 유능한 시인은 적절한 어휘를 잘 구사해야 한다. 특히 유사어가 많은 우리말 환경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유사어는 그 뜻이 비슷할 뿐 그 뉘앙스는 다 다르기 때문이다.
   적절한 어휘 찾기 역시 상상력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풍부한 상상력 가운데서 원관념과 보조관념은 이질적이든, 동질적이든 연결 고리를 맺게 되고 비유나 이미지의 옷을 입고 독자 앞에 의미가 확장된 모습으로 가시화되는 것이다.
   단수를 장별 배행, 구별 배행, 음보별 배행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배열하여 의미의 확산을 꾀하는 동시에 격조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현대시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러한 배행 형태를 놓고 자유시를 모방하고 있느니, 자유시와 구분이 없다느니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읽어보면 자유시와는 달리 율동이 일어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이 자유시가 모방할 수 없는 현대시조가 가지는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배행 방법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930년대 가람 이병기의 ‘시조 혁신론’ 이후 계속 유지 발전되어 온 부분이다.

 

횡선과 종선은 우연히 만났지만
그 순간 어쩔 수 없이 각도가 생겼다.
각도는 원치 않았던
그들 내면의 상처였다.

 

그저 달무리처럼 둥글고 싶었을 뿐
빗금이 되어서라도 부딪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각도가 생겼다.

 

눈감으면 각도는 칼날처럼 떠올랐다
그 칼날은 밤새도록 어둠을 물어뜯으며
아침이 닿을 때까지
파도치며 울곤 했다.
<관계> 전문

 

 <관계>는 현대인의 아픔이 고스란히 나타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적 화자는 원만한 관계를 맺고 싶지만, 그래서 ‘빗금이 되어서라도’ 불편한 관계인 각을 피하고 싶지만 만남 안에 어쩔 수 없는 각을 내포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숙명적인 관계를 도형의 성질을 이용해 시인은 잘 묘사하고 있다.
   운문은 간결과 압축의 미를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말들을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우걸 시인은 시어의 간결과 압축에 뛰어난 시인이다. 많은 말을 동원하여 우왕좌왕하다 보면 독자와 시인 간의 소통에 실패하고 더불어 독자를 감동시키는데도 실패하게 된다.
   이 시조의 겉면에는 선과 선이 만나서 각이 생기고 도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내면에는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이해관계로 인한 불편한 대립이 형성되고 그 대립은 시적 화자의 내면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함을 알레고리 기법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알레고리 기법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이 없다면 ‘인간관계’와 ‘도형의 성질’ 사이에 연결고리를 형성시켜 이미지화하지 못할 것이다.
   <관계>는 3장 연시조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각 장은 장별 배행과 구별 배행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작품의 의미를 확장하기 위함이다. 옛날 고시조가 의미로 전달할 수 없는 부분을 곡조로 전달했듯이 현대시조에서도 내용의 미진함을 격조의 변화를 통해 시도하고 있다. 

 

이 비누를 마지막 쓰고 김 씨는 오늘 죽었다.
헐벗은 노동의 하늘을 보살피던
영혼의 거울과 같은
조그마한 비누 하나.

 

도시는 원인 모를 후두염에 걸려 있고
김 씨가 쫓기며 걷던 자산동 언덕길 위엔
쓰다 둔 그 비누만 한
달이 하나 떠 있다.
<비누> 전문

 

 <비누>에서 시인은 이 시대의 부조리를 풍자하고 있다. ‘헐벗은 노동에 시달리던’ 김씨는 죽었지만 ‘원인 모를 후두염에 걸린 도시’는 아무런 말이 없다. 후두염에 걸렸으니 김씨의 억울함을 고발할 수 없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시에 나오는 비누는 달랐다. 김 씨가 죽기 전에는 노동으로 인해 얼룩진 오물을 깨끗이 지워주었으며 김 씨가 죽은 이후에는 달이 되어 김 씨가 쫓기며 걷던 자산동 언덕길을 밝히고 있다. 시적 화자는 부조리와 표면적으로 맞서 싸우지는 않더라도 그 부조리에 동조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고난을 씻어주는 비누로 또는 어두운 구석을 밝히는 달이 되어 억울하고 핍박받는 대상들을 조명함으로써 이 시대의 부조리에 항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기법은 <소금>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비누’는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순수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이 순수한 마음을 비누와 연결고리를 맺어주었으며 ‘순수한 마음’인 비가시적인 대상은 ‘비누’라는 가시적인 대상과 연결고리를 맺음으로써 시각적인 이미지로 형상화될 수 있었다. 이러한 작업은 자칫 흐려질 수 있는 시적 의미를 명료하게 구체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시조 작품 <비누>는 2연으로 구성된 연시조이다. 2연 모두 초장과 중장에서는 장별 배행을 하고 있으며 종장에서는 구별 배행을 하고 있다. 이러한 배행 방법은 의미 확장을 위한 것이다. 초장, 중장에 비해 종장은 구별 배행을 함으로써 좀 더 의미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우걸 시조 작품에는 대부분 풍자가 있다. 이 풍자의 대상은 시적 화자에서 시작하여 세상의 부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시인의 이러한 시작 태도는 평소 생활과도 맞물려 있을 것이다. 즉 시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일을 반복하여 인생의 브레이크를 끊임없이 밟는다고 볼 수 있으며 세상의 부조리에도 편안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자세가 시인 자신에게는 괴로운 일이 될지라도 미래의 발전과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소금과 같은 역할이 된다. 
   시인 한 사람이 ‘소금’과 같은 또는 ‘비누’와 같은 역할을 꾸준히 한다면 그의 시조를 읽는 독자들은 점차적으로 ‘소금’이나 ‘비누’와 같은 사람으로 하나, 둘 변모해 갈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이 세상에 문학작품이 존재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정완영 시인의 『세월이 무엇입니까』와 이우걸 시인의 『어쩌면 이것들은』을 통해 현대시조 속에 나타난 상상 세계를 살펴보았다. 더불어 상상의 세계가 작품에 비유의 옷을 입히고 이미지로 형상화되는 과정도 살펴보았다. 이 두 시인은 공통적으로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작품 속에 용해시키고 있지만 적용되는 세계에는 변별성이 있었다. 정완영 시인은 대부분 한국의 자연과 접목시켜 한국적인 미와 한국인의 정서를 노래함으로써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세계 속에서 우리 문학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에 비해 이우걸 시인은 자아와 세계에 끊임없이 비판과 풍자의 잣대를 들이대어 오류를 청산하고자 하고 있다. 이 두 시인의 역할은 좁게는 현대시조의 존재이유가 되며 넓게는 문학의 존재이유가 된다. 내용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반면 형식면에서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장별 배행, 구별 배행, 음보별 배행을 추구하여 격조의 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어휘의 간결성과 명료성을 추구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 외 반복법을 사용하여 의미를 강조하는 동시에 율동을 살리고자 하는 부분도 두 시인이 가지는 공통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통점은 현대시조가 가지는 정체성이라 할 수 있겠다.
   현대시조의 역할은 시조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다. 시조의 율격을 살리는 것이 시조성이며 풍부한 상상의 세계로 다양한 내용을 담는 것이 현대성이다. 따라서 풍부한 상상력을 살려 시조작품을 쓰는 시인들 각 개인이 독자적인 개성을 지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조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고시조의 형식을 무조건 따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곡조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격조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시대변화에 대처하는 현대시조인의 능동적인 자세라 할 수 있다.

 

 

 

 

 

약력
-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수상
- 경북대학교 출강
- 작품집 : 겨울 청령포


 


오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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